루이의 시간 (3)
내가 그 아이를 만난 건, 2012년 늦봄 장미꽃이 만발해 있던 때였다.
경기도 양주시의 한 동물보호소에서, 관리직원의 품에 안겨 나오며 나를 발견한 그 아이가 어찌나 꼬리를 세차게 흔들어대던지. 마치 영혼의 단짝을 만난 듯 온몸으로 기쁨을 표현하는 녀석을 내려놓으며 관리직원은 이렇게 말했다.
얘네들이 이래요.
자기 살리러 온 사람은 기가 막히게 알아봐요.
사실 나는 반려견을 집에 들일 마음이 전혀 없었다.
마치 유전자에 각인된 운명처럼, 인간만 바라보며 따르는 개라는 종에게 인간은 우주이자 전부이다. 그런데 그런 개를 이따금씩 혼자 집에 내버려 두는 것은 큰 죄를 짓는 것만 같아서. 나는 아직 그런 막중한 책임을 질 여건이 안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그냥 '일단 살리기만 하자. 안락사만 피하게 하자.'라는 생각뿐이었다.
유기동물보호소에서는 보통 유기동물 안내 공고 후 20일이 지나면 안락사 처분한다. 제한된 공간에 밀려드는 유기동물들을 모두 수용할 수 없으니, 적당한 입양자나 나타나지 않으면 오래된 순서대로 보낸다고 알려져 있다. 어리거나, 작고 예쁜 품종견들은 제법 새 가족을 만나기도 한다. 그런데 인간이 선호하는 외양을 갖추지 못했거나 아프기라도 하면 그 안에서 3주 남짓의 생을 마치게 된다.
그런 상황이 가슴 아프고 화나지만 어떤 실천도 막상 행할 용기가 없었던 내게, 얼굴도 모르던 온라인 동호회 스텝이 쪽지로 부탁을 했다. '안락사 하루 앞둔 아이가 있는데, 사람들이 좋아하는 외모가 아니라서 입양 안될 것 같아요. 임시보호 명목으로 보호소에서 데리고 나와주시면 안 될까요?'
2012년 4월 23일 구조. 4세 추정. 구조당시 몸무게 4.7kg.
사람을 잘 따르고 온순함. 수컷. 중성화. 성기 돌출. 슬개골 탈구.
그날 밤, 동물구조협회 공고문에 올라온 아이의 사진을 보며 복잡한 마음에 잠을 못 잤다.
그리고 안락사 예정일 아침 동물보호구조협회 근무 시작 시간에 맞춰 전화로 알렸다.
내가 일단 데려가서 임시보호 하겠다고. 내가 책임지고 좋은 입양처 찾아 보내겠다고.
그래서 나는 이 아이에게 깊은 정을 주지 않으려 애썼다.
폐렴, 알레르기, 성기 돌출만 완벽히 치료해서 좋은 가족을 찾아 보낼 생각이었다. 새로운 가족을 만나게 되더라도 다시 버림받는 일이 없도록, 예절 바른 멍멍이로 훈련해 좋은 곳에 보낼 심산이었다.
우리 집처럼 단출한 맞벌이 부부보다는 이왕이면 식구가 북적북적 많은 곳으로 보내서 홀로 외로울 틈이 없었으면 했다. 나처럼 집안일 내팽개치고 나돌아 다니는 이기적인 엄마보다는 종일 곁에서 예뻐해 주는 더 자상한 엄마가 있는 가정에 보내고 싶었다. 부잣집 귀한 막내 도련님처럼 사랑 듬뿍 받으며 오래오래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 '김수한무 거북이와 두루미..'처럼 긴 이름을 지어주었다.
쟝-루이 프랑수아 르 블랑(Jean-Louis François Le Blanc)
'120423-012'로 통칭되던 한 유기견의 이름은 그렇게 '루이'가 되었다.
그렇지만 인생은 언제나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다.
깊은 정 주지 않으려 굳세게 마음먹었건만, 나는 그 아이를 '루이~!'라고 부르다가 '우리 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어느새 '아이고 이쁜 우리 아기', '우리 이쁜 루이는 그동안 어디 있다가 이제야 나타난 거야?'라는 말을 저절로 내뱉게 될 때쯤 깨달았다. 나는 여전히 못나고 부족하지만, 이미 루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엄마가 되어버렸다는 것을.
고백하자면, 처음 만났을 때 루이의 눈을 들여다본 순간 어느 정도 직감할 수 있었다.
'이 아이는 나를 사랑하려고 작정했구나! 어쩌면 우리는 떨어질 수 없는 가족이 될 수도 있겠다.'
보호소에서 나온 그날 이후 루이의 시간은, 덤으로 주어진 삶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나는 '죽을뻔한 한 생명을 구제했다'라든가 '갈 곳 없는 유기견을 거두었다'는 생각을 별로 해본 적이 없다. 내가 루이에게 해준 것보다, 루이로 인해 얻는 기쁨이 더 컸기 때문이다.
루이를 품에 안으면 바깥에서 겪은 속 시끄러운 일들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멀게 느껴졌다. 아침에 눈 뜰 때마다 반갑다고 얼굴에 침을 묻혀대며 사랑을 표현하는 루이 때문에 나와 남편은 늘 웃었다. 밤만 되면 잠투정하며 엄마 아빠 모두 침대에 얼른 누우라고 떼쓰던 루이 덕분에 우리 셋은 사이좋게 머리 맞대고 잠들었다. 아빠 출근 할 때마다 현관까지 따라나서서 뽀뽀해 달라고 얼굴 내밀고 배웅하는 루이의 재롱으로 우리는 제법 완전한 가정 같았다. 어제를 후회하거나 내일을 걱정하지 않으며, 오롯이 현재를 만끽하는 루이를 보며 '산다는 건 제법 근사한 일이지!'라고 낙천적인 생각을 하게 되었다.
우리가 가족으로 함께했던 지난 11년의 시간은 나에게도 큰 선물이었다.
'루이야 고마워. 엄마는 루이를 만나서 너무 행복했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