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살던 고향은 관악산과 청계산의 너른 품 안에 고요히 자리 잡은 아늑한 곳이었다. 어느덧 늦가을, 겨울이 문턱에 다다른 10월의 고즈넉한 계절, 파랗게 펼쳐진 하늘 아래, 샛노란 은행잎들이 짙푸른 자전거길을 고요히 덮고 있었다. 간간이 사람들의 발길에 으깨진 은행 열매의 고약한 냄새가 코끝을 간질일 때면, 아빠가 6만 원에 사주신 회색 중고 자전거를 타고 나는 페달을 힘껏 밟으며 은행나무 길을 따라 내달렸다.
주말이면 어김없이 펼쳐지던 우리 집의 작은 의식, 아침 일찍 네 가족은 이마트로 향했다. 일주일 치 장을 보고,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온 후, 너구리 라면 5인분을 끓여 나눠 먹으며 포근한 주말의 온기를 나누었다. 라면 국물 속 탄수화물이 어린 나의 배와 볼을 통통하게 불렸고, 그렇게 노곤해진 오후 4시, EBS에서 방영하던 1985년판 빨간 머리 앤 드라마를 보며 앤과 길버트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에 흠뻑 빠져들었다.
해질 무렵이 되면 엄마와 나는 파마한 아주머니들로 가득 찬 동네 목욕탕에 가서 냉탕과 온탕을 여러 번 오가며 아주 작은 불순물조차 없애기 위해 힘껏 때를 밀었다. 물의 여신 테티스로 빙의하여 냉탕에서 가열차게 수영을 하다가 지치면 식혜를 조금씩 아껴 마셨다. 30년 남짓된 낡은 빨간 지붕의 주공아파트 단지에는 축구하는 아파트 단지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철물을 수거하는 하늘색 봉고차가 정겹게 오가고, 아빠는 약수터에 물을 길으러 나가셨다. 목욕을 마치고 나서 온몸이 느긋해진 나는, 엄마를 졸라 이마트에서 산 분홍색 새 내복을 입고 따뜻한 된장찌개 냄새가 감도는 집에서 먼 나라 이웃나라 프랑스 편을 재미있게 읽었다.
그 시절 어린이는 알았을까? 20년 후 파리로 건너가 마리 앙투아네트의 최후를 목격했던 바스티유 광장 근처에 살면서 주공아파트 철물점 아저씨의 확성기 소리를, 고약한 은행 냄새를, 약수터 옆 놀이터의 철봉을, 중앙난방으로 따뜻했던 방바닥을, 백설공주가 그려진 연분홍 내복을 입고 된장찌개 냄새를 기다리던 그 나른한 순간을 그리워하게 될 줄을. 어느덧 20년이 훌쩍 지나버린, 어린 시절 하루는 그렇게 느릿하게 흘러갔다.
그 시절의 된장찌개도, 따스하던 중앙난방의 온기도, "철물"을 외치던 철물점 아저씨의 목소리도, 김이 서리던 동성 목욕탕의 녹차탕도 이제는 모두 기억 속에 깃들어 있다. 그러나 먼 이국 땅에서 펼쳐지는 저녁 식탁 위에는 잡채, 불고기, 오징어젓갈이 곁들여지고, 그 곁에 와인이 놓인다.
낯선 땅, 낯선 거리 속에서 오래전 주공아파트의 풍경이 불현듯 떠오른다. 뛰놀던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와 잔잔히 내리쬐던 햇살, 겨울이면 따스하게 숨 쉬던 방바닥의 온기는 세월을 건너 낯선 곳에서도 아련히 되살아나, 그리움과 다정함으로 숨 쉬고 있다. 이제 나의 집은 9,000km의 거리를 두고 나뉘어, 고향과 타국을 하나의 지붕 아래 연결하고 있다. 시공간을 넘나드는 두 곳의 풍경과 따스함은 낯설고도 익숙한 삶 속에 다정히 공존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