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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u Nov 16. 2024

페이스 메이커 (1)

물리 천재 J




어려서부터 주변의 멋지고 존경스러운 친구들은 내게 늘 큰 영감을 주곤 했다. 그중에서도 어린 시절부터 깊은 영향을 끼친 인물을 꼽자면,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함께했던 친구 J가 있다. 초등학교 6학년 당시, 매달 시험 성적순으로 자리 배정을 하던 담임 선생님 덕분에 늘 짝꿍이었는데, 그로 인해 J의 놀라운 지식과 열정을 가까이서 접할 수 있었다. 물리에 대한 천재적인 소질뿐만 아니라 사회, 경제, 역사, 문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독서 습관은 내게도 많은 자극을 주었다. 이 덕분에 무솔리니와 파인만 같은 인물들을 일찍 알게 되었다.




중학교 시절, 3년 동안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도립 도서관에서 두꺼운 물리학 전공 서적들을 탐독하며 주도적으로 학문에 몰두했고, 전국 물리 올림피아드 금상까지 연이어 받았다. 어나더 레벨이라 질투도 나지 않고 경외심으로 다가왔다. 그 영향으로 평소 과학에 1도 관심이 없던 나조차 아침 과학 수업에 매년 참여하게 되는 일이 생기곤 했다. 그때 J가 종종 내게 "곧 전교 등수를 내가 앞지르겠어"라고 농담(?)을 하곤 했는데, 내 마음속에는 천재 J처럼 물리 올림피아드에서 금상은 못 받더라도 학교 내신에서는 질 수 없다는 각오로 열공하게 되었다. 덕분에 전교 등수가 매 학년 말, 3-2-1등으로 상승했다.




고등학교 진학 후, J는 과학고에서도 두각을 나타내며 국제 물리 올림피아드에서도 한국 최연소로 금메달을 거머쥐었고, 대한민국 인재상까지 수상했다. 이러한 소식을 우연히 온라인으로 접한 후 고등학교 3년 내내 그의 사진이 실린 기사를 기숙사 자습실 칸막이에 붙여놓고 동기부여하며 공부했었다. 




두 달 전 J가 오래간만에 잘 지내냐며, 자신이 포닥하고 있는 오스트리아 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모집하는데 관심 있으면 지원해 보라고 링크를 보내주었다. 오스트리아가 연구자를 잘 대해주는 것 같다면서. 지도교수님이 연구 주제에 대해서 세세한 부분까지 아주 잘 알고 계셔서 그로부터 최대한 열심히 배우려고 하고, 자신은 연구자로서 일하는 게 잘 맞는 것 같다고 하였다. 본인이 원하는 공부를 할 수 있고, 일하는 것들이 모두 자신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것들이고, 지금까지 아무도 하지 않은 새로운 일을 한다는 것도 매력이며, 천재적인 사람들과 함께 일할 수 있는 것도 장점이라고 했다.




J가 꾸준히 걸어온 길은 고독하고 막연한 순간의 연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그 오랜 시간 한 길을 우직하게 걸으며 자신만의 열정과 노력을 지켜왔다. 그런 모습은 꾸준함과 기본기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한다. 모든 것들이 빨리빨리 변하고 어떻게 해서든 자신을 PR 하기 바쁜 이 시대에 그의 이러한 태도는 큰 영감이 된다. 또한 현재, 그리고 앞으로의 내 인생 2막을 살아가는 데 있어 무엇이 중요한지 다시금 생각하게 만든다. 그래서 요즘 나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외부 상황에 구애받지 않고 매일의 노력과 기본기를 꾸준하게 다시 쌓고 있다. 어떻게 하면 남들이 좋게 봐줄까, 어떻게 하면 성공할까 와 같은 질문들을 많이 내려놓고, 내가 이미 갖고 있는, 또는 노력을 통해서 앞으로 얻을 수 있는 것들을 잘 엮어서 어떻게 사회에 기여할 수 있을까, 나를 자연스럽게 설레게 하는 게 무엇일까를 조심스레 읽고 따라가고 있다.




이런 태도는 지난 30년 동안 교육받아온 Top-Down 방식과는 거리가 멀다. 허겁지겁 달려오느라 놓친 기본기가 있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서 매일 쌓고 있고, 이 과정의 기록을 매일 다른 페이스 메이커 분들과 공유하며, 서로의 목표를 응원하고 있다. 이제는 알겠다. 어느 정도의 임계치를 넘길 만큼 Bottom-Up 방식으로 곳간을 채워나가다 보면 예상치도 못했던 루트로 기회는 매 순간 나타난다는 것을. 골인 지점을 내가 정하지 않고,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노력의 양만 꾸준히 채운 후 나머지는 흐름에 맡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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