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 전, 시어머니께 선물로 드린 난초(orchidée)가 놀랍게도 지금까지 죽지 않고 잘 자라고 있다. 매번 시어머니 댁에 갈 때마다 그 난초를 볼 때면 시들어 죽은 줄로만 알았는데. 왜 시어머니께서 죽은 난초를 치우지 않으시는지 궁금하기도 했는데, 알고 보니 겨우내 에너지를 비축하며 봄을 준비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죽은 가지 옆으로 새로이 연둣빛 가지가 자라나고 있었다. 난초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생명력을 응축하며 내년에 다시 한번 화려하게 꽃을 피우기 위한 힘을 기르고 있었다.
선물로 드린 3년 전 난초가 이렇게 오랫동안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시어머니의 세심한 보살핌 덕분이었다. 난초는 기본적으로 따뜻하고 습한 환경을 좋아하며, 적절한 빛과 환기가 오래도록 키우는 데 중요하다. 난초가 자라기에 적합한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물론, 매주 1회씩 적절한 물을 주고, 간접광이 비치는 따뜻한 곳에 두며, 습도 또한 잘 유지해 주셨다. 주기적으로 표피를 벗겨내어 공기 순환이 원활하도록 하며, 난초가 그 잠재력을 마음껏 펼칠 수 있도록 배려한 것이다. 시어머니의 손길 속에서 난초는 생명력을 이어갔고, 매해 그 아름다움을 더욱 빛낼 수 있었다.
난초의 생명력과 이를 지켜주는 시어머니의 손길을 지켜보며 그동안 지나온 시간을 되돌아보게 된다. 마치 고요히 겨울을 나는 난초처럼, 인생의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의 순환 속에서 스스로도 무언가를 비축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수잔 케인은 저서 <콰이어트>에서 이런 말을 했다. "삶의 비결은 적절한 조명이 비치는 곳으로 가는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브로드웨이의 스포트라이트가, 누군가에게는 등불을 켠 책상이 그런 장소일 것이다. 타고난 장점을 활용하여 자신이 사랑하고 중요하게 여기는 일을 하라." 그 어떠한 환경에서도 캔디처럼 잘 적응하여 잠재력을 만개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매우 소수이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성향이 장점으로 잘 발휘될 수 있는 적절한 환경에 있을 때 가장 능력을 펼칠 수 있다고 한다.
적절한 환경과 관리가 주어지면, 아무리 힘든 시기라도 다시 만개할 수 있다는 사실을 화장실 선반의 난초가 은은하게 보여주고 있었다. 어쩌면 난초의 성장 과정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알려주는지도 모른다. 그것은 단순한 보살핌이 아닌, 환경과 시간, 그리고 애정이 어우러져야만 비로소 가능하다는 교훈을 준다. 시어머니의 손끝에서 살아나는 난초를 보며, 우리 모두에게도 필요한 것은 바로 그런 관리와 관심이 아닐까.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그것이 결국 삶의 깊이를 더하고, 언젠가는 빛나는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힘이 될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