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 &카파도키아 여행기
터키는 특별한 나라다. 아시아와 유럽이 문화가 동시에 존재하는 지구 상의 유일한 나라이며, 그리스, 로마, 비잔틴을 비롯한 수많은 문명이 이곳에서 나타나고 사라졌다. 그러나 수많은 세월이 흐른 지금 터키는 끊임없는 외세의 공격으로 인해 주목받지 못한 채 남아있으며 오늘날 터키는 동양의 정신에 유럽의 옷을 살짝 걸친 어정쩡한 모습으로 서 있다.
터키 국민의 98%는 이슬람교이다. 그러나 여행 내내 이슬람이 국교인 다른 나라를 방문했을 때와는 판이한 느낌을 받았다. 터키인들은 신앙심을 가지고 있되 굳이 드러내려 하지 않는다. 덕분에 이슬람이 아닌 이들에게도 거부감이 없다.
또한 터키는 우리와 많이 닮았다. 서로 아시아 대륙의 끝과 끝에 위치할 정도로 멀리 떨어져 있지만, 문화적 배경과 심성은 우리나라와 비슷하다. 사람들은 정이 많고 환대 적이다. 아주 먼 옛날 중앙아시아에서 함께한 역사가 있으며 한국전에 참여하였던 역사도 있다. 우리에게 터키는 멀지만 가까운 나라인 셈이다.
2020년 1월 터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11시간 남짓 지났을까 착륙 직전 이슬람사원이 눈에 들어왔다. 그렇게 8일간의 터키 여행이 시작되었다. 8일간의 일정동안 11개의 도시를 들렸고 그 중 이스탄불, 카파도키아, 파묵칼레에 대한 여행기를 써보고자 한다.
5000년의 역사가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는 유적 도시 이자, 보스포러스 해협을 경계로 양쪽으로 나뉘어 있는 유럽 이스탄불과 아시아 이스탄불의 문화도 한 번에 살펴볼 수 있다. 지정학적인 위치 때문에 육상 실크로드의 끝이자 시작인 셈이다. 덕분에 유럽에서 온 많은 것들이 아시아 상인들에게 건네 졌다. 그리고 긴 세월을 지나 다양한 인종과 다양한 문화 정신이 한데 섞여 공존하며 지금의 이스탄불을 만들어 냈다.
첫 방문지는 그랜드 바자르 시장이다. 들어가기에 앞서 유로를 리라로 환전하는 과정을 거쳤다. 유럽에 속해있어 유로를 자유롭게 쓸 수 있을 줄 알았지만, 유로를 받아주는 곳도 많으나 영세 가게나 화장실 이용료는 리라만 취급한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실제로 리라를 사용할 곳이 꽤 많았다.
동화작가인 안데르센은 이스탄불에 가면 바자르를 꼭 들러 봐야 한다고 말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스탄불의 최대 규모의 재래시장이며 세계 각국에서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돔 형태의 지붕에 길에 뻗은 길 외에도 골목골목 많은 가게가 즐비해 있다. 지나가는 관광객에게 노래를 불러주기도 하고 시식을 권하기도 한다. 관광객의 입장에서 본 그들은 판매의 목적보다 그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 같았다. 다만 너무 깊숙한 골목으로 가는 것은 위험하니 조심하는 게 좋다.
이스탄불 중심에 있는 성소피아 성당에 갔다. 성 소피아 성당은 360년에 동로마 제국 시기에 콘스탄티누스 2세에 의해 건립되었으나 대부분 소실되었고 지금의 성 소피아 성당은 세 번째 재건한 건물로 532년경에 지은 것으로 전해진다.
성소피아 성당의 내부는 역사에 대한 지식이 있으면 더욱 풍부하게 보고 이해할 수 있다. 이슬람 국가에 사원도 아니고 무슨 성당이지?라고 생각했으나 그리스 정교회와 이슬람이 공존하며 내뿜는 분위기는 실로 놀라웠다.
성소피아 성당의 건너편에는 우리가 흔하게 부르는 ‘블루모스크’ 즉 ‘술탄 아흐마드’ 사원이 서 있다. 6개의 첨탑이 서있으며 기도시간이 되면 아잔의 소리가 크게 울려 퍼진다. 기도시간 피해서 들어가기 위해 꽤 오랜 시간을 기다렸다.
술탄 아흐마드 모스크는 17세기 초에 세워졌다. 번역상의 오류로 인해 황금 미나렛이 1개가 아닌 6개씩이나 세워졌다고 한다. (실수가 아니라 고의라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덕분에 6개의 미나렛을 가진 유일무이한 모스크가 되었다. 이스탄불에 착륙할 때 눈에 들어왔던 가장 큰 모스크가 바로 이 술탄 아흐마드 모르크였다. 멀리서도 굉장한 규모를 자랑한다. 내부는 차분했지만 어둡기도 했다.
고고학 박물관
술탄 아흐마드 사원을 살펴보고 나서 근처에 있는 궐하네 공원과 토프카프궁전 근처에 자리한 고고학 박물관에 들렀다. 백만 점의 유물이 전시된 이곳은 따로 뮤지엄 패스를 끊어서 들어가 봐야 하지만 꼭 들러보길 추천한다. 값비싼 유물이 많은 탓에 보안이 철저하며 사진 촬영도 금지되어있는 곳이 많다. 그리고 곳곳에서 개인적으로 읊는 기도 소리가 들리기도 한다.
꽤 오랜 시간을 달렸다. 그리고 신비로운 자연경관이 눈앞에 펼쳐졌다. 같은 모양이 하나도 없는 특이한 모양의 바위였다. 300만 년 전 화산 폭발로 만들어진 용암층은 바람이 부는 방향에 따라 제각각의 모양을 가지게 됐고 사람들은 응회암 바위를 깎고 들어가 삶의 터전을 만들었다. 교회와 학교도 만들고 마을도 만들어 살았다.
가까이 가서 살펴보니 단순히 바위를 파서 터전을 만든 게 아니라 환풍구와 계단, 침략에 대비한 비밀스러운 공간도 있을 정도로 꽤 과학적인 구조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벽과 천장마다 프레스코화가 그려져 있었으며 지금까지 색이 조금 바랬을 뿐 그 모양을 지금까지 유지해 오고 있다.
카파도키아는 자연경관이 다했다. 도시 전체가 인공적인 첨가물이 전혀 없어 마음이 편했다. 그렇게 자연 속의 카파도키아에서 며칠 쉬고 안탈리아로의 여정이 다시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