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토피아를 눈앞에 두고 고뇌하다.
여기 누구나 한 번쯤은 꿈꿔봤을 법 한 유토피아가 있다. 오직 행복만이 존재하며 단 한 사람도 빠짐없이 자신의 삶이 행복하다고 느낀다. 부조리와 불평등, 그리고 불안을 느끼는 경우도 없으며 누구나 행복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세상이 있다.
“지금 당장 그 세상으로의 진입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면, 나는 기꺼이 발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덮은 후 스스로에게 던진 첫 질문이다. 꿈꿔왔던 세상이 눈앞에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렇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지 못하고 고민하게 되는 이유가 있다.
이 책을 통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된 내 생각이 그동안 사람들이 불합리하다고 생각해 맞서 싸우고 투쟁하면서 목소리를 높이려 했던 행동들, 지금도 이 시간에도 수없이 반복되는 각계각층의 의견 다툼들 이 어쩌면 진정한 사람으로서 사고하고 행동하며 살아있음을 느끼게 하고 자주적인 인간이 되기 위해 노력하는 참모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더 나아가 투쟁의 역사는 인간의 본질이자 날것 그대로의 인간의 모습이라는 생각과 함께 이 책에서는 끝없이 인간의 실존 문제에 관한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게 한다. 이 책을 읽고 나면 아마 나처럼 지금의 삶에 감사함을 느낄지도, 혹은 유토피아에 세상에 대한 갈망을 할 수도 있겠다.
2540년 영국, 문명사회라 부르는 우리의 세상이 있다. 어머니, 아버지, 가족, 출산이라는 개념은 없고 공장의 기계화처럼 아기를 부화해 내는 미래 세상이다. 부화가 되기 전부터 [α 알파 β 베타 γ 감마 δ 델타 ε 입실론]의 계층화가 확실히 굳어져 세뇌가 된 아기들은 성장하면서 자신의 계급에 맞는 직업을 가지며 생활환경을 받아들인다.
자신과 다른 계층의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지금의 ‘나의 계급’으로 태어나서 다행이야 라는 생각을 하며 살아간다. 델타 계급의 아이가 꽃과 책을 보고 기쁜 마음으로 달려갈 때면 전기 충격을 가해 욕망을 원천 봉쇄한다. 델타 이하의 계급에는 책과 꽃이 필요 없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지성은 필요 없으니 주어지지도 않는다. 그렇게 자신의 계급으로 만족하면서 성장한 사람들은 가끔 울적한 기분이 들 때면 소마라는 환각물질을 먹으면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금 행복해진다.
그러던 어느 날 알파 계급의 버나드라는 돌연변이가 탄생하게 된다. 버나드는 문명사회에 대해 비판과 의구심을 가지며 세상을 의심의 눈초리로 바라보는 인간으로 우연히 만난 베타 계급의 레니나 라는 여자와 접근금지 구역인 야만인 보호구역에 가게 된다.(버나드는 야만인 통제구역에 들어갈 수 있는 출입권한을 가진 직업을 가지고 있다.)
그곳에서 30년 전 통제관과 함께 문명사회에서 야만인 구역으로 놀러 오다 길을 잃게 된 린다를 만나게 되고 그녀의 아들 존과 함께 문명의 세계로 복귀하게 된다. 존은 수년간 린다에게서 들은 문명사회에 대한 설렘과 기대감을 안고 문명세계로 들어오게 되나 공동체, 통일성, 안정성과 같은 화려한 미사여구를 내세우며 인간의 기본적인 존엄성과 자유로움을 없애 인위적으로 만든 이 세상에 대한 회의감과 혼란을 느끼다가 결국 문명사회 통치관을 만나 대립각을 세우며 이야기를 한다.
그 후 어머니 린의 죽음을 겪고 존이 한 행동은 아직 책을 읽지 않은 독자를 위해 서술하지 않겠다.
올더스 헉슬리가 1932년에 발표한 작품인 ‘멋진 신세계는’ 미래 SF 소설로 조지 오웰의 1984와 더불어 전체주의, 디스토피아의 대표적인 소설이다. 책에서 서술한 문명사회와 야만 사회는 실제로 두 세계는 서로 뒤바뀐 모습임을 알 수 있으며, 세계 1차 대전 이후 산업의 기계화와 대량생산이 가속화됨에 따라 작가는 미래 세상의 인간 또한 기계문명과 같은 전철을 밟을 것이라 예상하며 글을 썼을 것이라 조심스럽게 예상해 볼 수 있다.
더욱이 놀라운 점은 DNA 유전법칙과 복제인간이라는 개념이 발견되고 도입되기 전에 쓰인 것으로 작가가 어느 정도 미래를 예견했다는 것이며, 그로부터 80년이 지난 지금 실제로 인간의 기술은 인간의 두뇌까지 변형시키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책에서 서술한 미래 사회의 모습이 600년 후가 아닌 그리 멀지 않은 시기에 도래할 수도 있는 셈이다.
그러나 미래를 꼭 부정적인 시각으로 볼 필요는 없다. 여전히 우리에겐 이성과 감성이 존재하며 선과 악을 구분해 낼 수 있는 눈이 있다. 복제인간이 이론적으로 가능하나 윤리적인 문제로 실현되지 못하는 것처럼 부정적인, 비판적인 것과 대립하여 인간은 항상 긍정적인 차선책과 대안을 내놓았던 역사가 있다. 하다못해 지구가 싫어진다면 화성 이주계획을 세우고 있는 일론 머스크와 같은 우주선을 타도되는 시대니까 말이다.
지금의 우리 시대는 과학이 발달하고 문명화되고 진보적이며 계몽된 시대라 인간의 본질 또한 시대상에 맞게 재창조되어야 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인간 본성은 과거에도 지금도 가장 기본적인 본능의 틀에 입각하여 사고하며 행동한다는 부분은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인간의 본성의 문제와 결부시켰을 때 무엇이 인간을 위한 길일지는 우리 모두가 생각해 봐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며 그런 의미에서 멋진 신세계는 정말 멋진 신세계인가?라는 질문을 다른 독자들에게 던지고 싶다.
또한, 이 책에서는 문명사회와 야만인 사회로 나누어 양극 사회를 풍자했지만, 이를 절충한 다른 세계의 가능성을 상상해 보면 어떨까, 그 세계는 어떠한 모습이면 좋을까 라는 질문도 앞선 질문과 함께 하며 글을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