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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Apr 28. 2024

첫 출근의 기억

32년 전 오늘

 32년 전에도 오늘처럼 비가 내렸다. 


매년 4월 3일이 오면 제주에서는 4.3 항쟁 기념식을 하겠지만 나는 내 일생의 첫 출근날을 기념한다. 때론 역사적 사건보다 개인의 기억이 더 큰 힘을 가지기도 하고, 더 큰 의미를 가지기도 한다.  

내게 매년 돌아오는 4월 3일이 그렇다. 

    

 1992년 4월 3일

그때는 미니스커트라 할 것까지는 아니지만 치마 길이를 상당히 짧게 입었었다. 그날의 나는 검정 짧은 치마에 흰색 바탕에 옆구리 쪽으로 바둑판무늬가 덧대어져 허벅지 중간까지 내려오는(재킷이 치마 길이보다 길었다.) 재킷을 입고, 신발은 재킷 색에 맞춰 굽 높이가 7cm 정도 되는 힐을 신었다.  그리도 검정 핸드백을 맞춰 들고 첫 발령장을 받으러 갔었다.  첫 출근이라고 멋을 너무 냈다. 


    

텔레비전에서 본 건 있어서 정장을 잘 차려입은 새내기들 여럿이서 시장님께 발령장을 받고, 악수를 하고 등등의 그림이 펼쳐질 줄 알고 그렇게 차려입고 발령장을 받으러 갔으나, 일단 멋지게 차려입은 동기들이 아닌 머리가 살짝 벗겨지기 시작하는 아저씨 느낌이 풀풀 나는 남자 직원 한 명과 술 냄새가 안 나도 술에 취해 있는 듯 보이는 현장 작업자 한 분, 이렇게 셋이 함께 받았다(1차 망함). 그리고 근사한 회의실이 아닌 무슨 국장님 방에서, 시장님께서 발령장을 주시면서 어깨를 두드려 주고 등등이 아닌 국장님의 시답잖은 소리를 들으며 임용장을 받았다. (2차 폭망)      


내 직장에서의 출발은 내 마음가짐과 그날의 옷차림을 비교해 봤을 때 너무 허접했다. 

이후 직장에서의 예기치 않는 고난과 맞닥뜨릴 때, 승진의 기회조차 내게 오지 않거나, 이런저런 이유로 무릎이 꺾일 때마다 허접한 내 출발을 생각하게 했다. 첫출발부터 어쩐지 너무 허접했어….

     


하긴 나의 출발에 언제라고 환영받고 축복받은 순간이 있었던가?

출생부터 1남 4녀를 둔 경상도 시골집에서 내 위치는 4녀 담당이었으니 무슨 환영을 받았을 것이며, 성적 좋은 여자 직원보다 꼴찌 한 남자 직원을 보내달라고 했다는 내 선배들의 소망이 한치의 여과없이 내게 전달될 수 있었던 직장에서의 잔인한 출발 또한 다르지 않았다.

(잔인하다고 하는 건 속으로 남자직원이 왔으면 해도, 적어도 그걸 대놓고 그렇게 표현할 수 있었던 선배들과 또 당사자한테 그걸 대놓고 나한테 전했던 그들의 당당함이 잔인하다는 것이다. )

 


생각해 보면 나의 출발은 항상 환영받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의 귀함을 찾는다. 비록 출생이 환영받지 못했을지라도 나의 성장 과정에서 나를 지지하고, 나의 존재를 아껴 주셨던 부모님과 형제들과의 추억이 내가 딸로 태어남의 원초적 설움을 씻어냈고, 직장에서 셀프 위풍당당하여 어떤 때는 어깨를 너무 쫙 펴 살짝 뒤로 넘어가는 걸로 첫 발령의 허접함을 덮었다.

    

성경에 ‘그 시작은 미비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뭐 이런 말이 있다고 들었다. 나는 자주 ‘그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비하리라.’라는 말로 바꿔서 나의 끈기 없음을 고백한다. 요란하게 시작하여 끝을 흐리는 나에 대한 질책이다. 그렇지만 내 인생에 있어서는 ‘ 비록, 그 처음은 환영받지 못했으나, 끝내 귀해지리라.’라고 정해놓고 그걸 완성하기 위해 노력한다.

      

32년의 세월. 

참 길었고, 자주 즐거웠고, 가끔 불행했다. 

그 시간을 다 모아 가장 볼품없었던 날이 언제였나 생각해 보면 그 첫 발령장을 받는 날이 아닐까? 다행스럽게도 이후엔 단 한 번도 그런 발령장을 다시 받을 일은 없었다. 그리고 누구도 나 대신 남자 직원을 보내달라는 소리를 하지 않는다. (모르지.... 그 말을 하고 있는데 적어도 내게 전달은 되지 않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긴 하다) 시간이 갈수록 나는 단단해졌고, 나의 가치는 (첫날이 너무 허접하여) 그 첫날보다 분명히 높아졌다. 

다행이다.

     

앞으로 7년 남짓 후 나는 퇴직을 하게 될 것이다. 그때가 되면 나는 지금의 나보다 더 멋지고, 단단해져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어질 것임을 결코 의심하지 않는다. 1992년의 기억을 딛고, 오늘은 살아내는 나니까 나는 충분히 그러해질 것이니.....(이렇게 나는 나를 매일 위로하며 산다. )  

  

                                                                                                      2024. 4월 3일에  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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