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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Jun 14. 2024

나는 빽(?) 자랑하러 출근한다.

참을 수 없는 가방의 무거움….

 2024년 새해. 눈 뜨자마자 통장에서 빠져나가는 자동 이체를 정리했다. 


 모든 자동이체를 정리했다는 말은 아니고, 아이들에게 나가던 용돈, 생활비 보조, 핸드폰 사용료와 같은 몫을  정리했다. 누구처럼 20세가 넘은 아이들을 세렝게티에 던져두는 그런 대단한 결심은 아니었고, 아이들도 거의 서른을 바라보고 있고, 제 나름의 밥벌이를 하고 있어 가능한 일이었다. 다행스럽게 더 이상 나의 쥐꼬리만 한 경제적 도움이 그네들의 삶에 큰 도움이 되지 않다는 판단에 상호 합의로 끊긴 했지만, 왠지 8.15 광복을 맞는 듯한 의미가 부여되고 뿌듯했다.      


 그리고 올해 4월. 아이의 선물로 이집트 여행을 같이 다녀오는 기회가 있었다. 이렇게 행복할 수가….

 아이의 이집트 친구가 동행해 주는 바람에 이집트 현지 가이드를 대동하고 여행을 다닌 몇 안 되는 멋진 경험을 하게 되었고, 석 달 만에 만난 내 아이의 성장은 나를 뿌듯하게 했다. 소소한 다툼이야 더 큰 즐거움에 덮여 이미 기억에도 없다.      


 여행을 끝내고 아직 휴가가 남은 아이와 함께 귀국했다. 마침 우리가 이집트에서 출국하는  날이 라마단이 끝나 이드라는 이슬람 명절이라 택시조차 잡기가 어려운 날이었다. 즉 90% 이상의 이집트 사람들이 집으로, 고향으로 찾아들어 밖으로 돌아다니는 사람이 없다는 말이었다. 공항도 그 또한 같았다. 국제공항이라 하더마 카이로 공항조차 텅 비어 줄을 설 필요가 없었다. 비행기조차 널널하여 옆자리로 옮겨 앉아 누워 잘 공간이 생길 지경이니 말해 무엇할까? 

     

카이로 공항에서 한가한 면세점을 돌아다녀도 탐나는 물건이 없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막 던질 기념품 몇 개 담아 들고 이집트를 떠났다. 두바이 공항. 쇼핑하기 딱 좋게 만들어진 면세점을 돌며 아이는 자꾸 나더러 뭐라도 좋으니 갖고 싶은 걸 사라고 했다. 립스틱도 하나 샀고, 화장품도 많이는 아니지만 공항 가면 산다는 걸 나도 샀고, 작은 명함 지갑이 하나 있었으면 했지만, 막상 잡아 보니 머릿속에서 자동 환율계산이 되는 바람에 도로 제 자리에 놓고 나오는데 뒤따라오던 아이의 얼굴이 일그러져 있다.


사달이 났네. 났어.

      

 공항 의자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아이의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왜냐고 묻고 말고도 없다. 그 눈물의 포인트는 이미 몇 번의 고비를 넘기면서 있어 왔던 일이라 일단 사과부터 했다. 

 ‘미안하다. 엄마가 명품이나 백화점 물건에 아직 익숙하지 않다. 그렇게 좋은 것들에 눈 돌리며 살 여력도 없었고, 또 갖고 싶어 욕심 또한 내 본 적도 없으니 가슴 아플 일은 아니라고….’ 내 맘을 안다는 아이는 그것도 속상하다고 했다. 지가 돈을 벌어 이제 엄마한테 근사한 선물도 할 수 있는데 도대체가 필요 없다는 말만 하니 맥이 빠진다고 했다. 진심으로 미안했다. 그런데 돌이켜 나도 내 아이들에게 그네들이 원하는 것들을 다 해주지 못하고 키웠다. 내가 생각할 때는 15%쯤 부족했을 것이고, 아이들의 처지에서는 40%쯤 부족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그런데 인제 와서 아이들이 돈을 번다고 내 선물을 챙겨 받기는 염치없다는 생각이 들었고, 이젠 막 사회에 나서는 아이가 무슨 돈이 있다고 나도 망설여지는 지출을 할 것이냐는 생각이 앞서 아이를 막아선 것이다.      

 여차저차 아무것도 건진 게 없이 서로의 속 이야기만 주절주절하다가 한국으로 돌아왔다. 20여 일 일정인 휴가를 이집트에서 열흘 이상을 보냈으니 이게 겨우 10일 남은 시간으로 그동안 먹고 싶었던 음식 먹을 것이라 제법 바쁘게 보냈고, 비행기를 갈아타 가며 18시간이 걸려 제 직장으로 돌아갔다.      



 아이가 가고 서울에 있는 큰애가 주말에 진주까지 오겠다고 했다. 지난번 작은애 왔을 때 만났고, 또 조만간 내가 병원 진료가 있어 서울까지 갈 것인데 굳이 내려올 것 없다고 만류해도 일이 있어서 내려오는 것이니 신경을 쓰지 말라고 했다.      

 금요일. 근무를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니 진주 도착하면 거의 오밤중이라 강아지까지 대동하고 역으로 마중을 나설 준비를 했다. 아이들이 집에 오는 날이면 강아지들까지 대동하고 역으로, 터미널로 마중 나가는 게 우리 집 규칙(이게 규칙이나 한 일인지 모를 일이지만…. 남편 혼자 보냈다가 세상 시끄러운 일이 몇 번 있었던 지라) 아닌 규칙인데 그날따라 배가 고프니 나더러 떡국을 좀 끓여 달라고 했다. 남편한테 강아지를 딸려 내보내고 서둘러 찹쌀 부꾸미도 두 개 남짓 만들고, 떡국도 좋아하는 재료로 준비했다. 몇 번이나 전화를 걸어 어디쯤인지를 확인하고 떡국을 넣을 준비를 할 때쯤 아이가 허둥지둥 먼저 들어서는데 손에 무슨 텔레비전만 한 가방이 들려져 있다. 저래 큰 쇼핑백에 뭘 담아 오나 싶긴 했지만, 일단은 아이를 안아주고, 떡국 끓일 것이라 부엌으로 돌아서는 내게 아이는 쇼핑백을 내밀며 내용물부터 확인하라고 한다. 아이의 짐가방이 아니라 내게 주는 선물이었다.

      


그렇게 난생처음으로 나도 그 대단한 똥빽(?)이 생겼다. 

휴일을 지나고 출근길에 이걸 들고 나서야 하나 말아야 하나를 잠시 망설였고, 출근할 때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에코백이나, 쌕을 어깨에 메고 다닌다. 내가 만나는 사람 대부분이 명품백을 들고까지 만나야 할 사람이 없고, 가봐야 절이고, 산인데 그걸 들고….     

 화장품, 수첩과 책, 잡동사니를 넣은 가방은 무겁다. 빈 가방만 들어도 무거운데 이사하는 사람처럼 들고 다니는 나는 오죽할까. 그래도 나는 아침마다 그 가방을 들고 나선다. 내가 다니는 곳 중에 가장 많은 사람을 만나는 장소가 직장이니 가방 자랑을 하려면 이만한 장소가 없다. 자랑하기 딱 좋다. (그렇다고 화장실 가면서, 구내식당 갈 때조차 들고 다니지는 않는다.)      

오늘도 나는 가방 자랑하러 집을 나서며, ‘이왕 사줄 거면 좀 가벼운 걸로 사줄 것이지….’라고 생각만 한다. 그것도 혼자서만 한다. 말로 했다가는 애들이 오만 성질을 낼 것이 뻔하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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