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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Oct 23. 2024

영원한 내 편 삼순 여사님

그리운 내 할머니

우리 할머니 하삼순 여사님!

 


150센티미터가 채 되지 않아 내가 중학생이 된 이후로 항상 나보다 작고, 약했던 우리 할머니. 비녀를 꽂은 쪽 찐 머리, 천으로 된 허리끈으로 질끈 맨 긴 월남치마, 가슴팍에 똑딱단추를 달아서 여며 입은 털 스웨터, 뒤로 돌러 잡은 손에 들려 있던 대나무 회초리까지 세트로 할머니께 장착된 아이템이다. 손에 잡고 있던 회초리로 떼를 쓰고 있는 나를 헛매질로 때려잡거나, 마루에 올라오려고 호시탐탐 노리는 닭을 쫓거나, 제 똥을 밟고 껑충거리는 개를 잡을 때도 그 회초리를 사용하셨다.      


우리 동네는 지리산 아래 시골 중 시골이라 도시나 장터 애들만큼 영악한 구석은 없는데 제 맘대로 자란 구석이 있어 욕을 제법 잘했다. 그런 머슴애들이 우리 할머니 앞에서 쌍욕이라도 하다 들키는 날에는 육두문자를 써가며 욕을 바가지로 뒤집어써야 했다. 그래도 애들도, 그 아이들의 부모들도 유순해서 그 누구도 ‘할매가 더 욕을 많이하네예.’하며 덤빈 사람은 없었다.      


가끔 고향마을에 가면 우리 할머니 하삼순 여사님을 기억하는 분들을 만날 때가 있었다. 참 경우 반듯한 할머니, 이웃이 양식이 떨어져 줄줄이 딸린 자식들과 굶고 있을 때 밥을 한 바구니 들고 와서 밥솥에 부어 놓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가버린 속정 깊은 분으로 기억하신다. 뭐 요새 말로는 츤데레쯤이 될까?

할머니께서 밥을 한 솥 그득하게 할 때 뭐 하러 그렇게 밥을 많이 하냐고 물으면 

‘니 보고 다 무라 소리 안 한다.’ 그걸로 끝이었단다. 그런 날이면 이웃에 그 집에 벌써 한 바가지 갖다 놓고 오는 날이다. 

그러고는 “니가 씬 밥 안 묵는다캐서 갖다 줬다.” 그걸로 끝이었단다.      



하여사의 에피소드 1.#      

우리 엄마는 걸음걸이가 느리다. 할머니는 키가 150센티미터고, 우리 엄마는 그 시절 사람치고는 키가 큰 편에 속한다. 지금처럼 허리가 굽어지기 전에는 저보다도 키가 크셨으니 우리 엄마랑 할머니가 걸어가는 모습을 보면 한 분은 조작조작하시고, 한 사람은 겅중겅중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할머니는 걸음이 빠르시고, 엄마는 좀 천천히 걸으셨다. 그럼 앞장서서 가시던 할머니께서 뒤에 따라오는 엄마를 홱 돌아보시면서 

 “그 얘편네 사타리 새 밤시를 찡갔나! 뭐하고 있노?” 하시고는 또 앞질러 서둘러 가셨단다.  

아무리 그래도 며느리더러 사타구니 사이에 밤송이를 끼웠냐니? 너무 무지막지하지 않나? 그래도 우리 할머니께는 전혀 악의가 없었으니, 지금도 우리 엄마는 그때 이야기를 하심서 우스워 자지러지시겠지.      



 하 여사의 에피소드 2#


 할머니는 마흔에 우리 아버지 장가를 보내셨다. 워낙에 위가 안 좋아 줄 담배를 피우시며 그 쓰린 속을 삭이셨으니 곧 돌아가실 줄 알았단다. 그래서 시어머니 돌아가시기 전 큰아들 장가를 보내, 집에 안주인을 새로 들인 것이다. 그런데 다행스럽게 할머니께서는 그럭저럭 약하시긴 했지만 장수를 하신 편이시다. 73세까지 건강한 모습으로 지내다 돌아가셨으니 말이다. 대신 건강 하시던 할아버지께서 내가 태어나던 해에 병을 얻으셨다. 4번째 태어난 딸이 안 그래도 반갑잖은데 내가 태어나고 나서 할아버지 당신께서 병으로 몸져누우셨으니, 할아버지는 내 울음소리조차 듣기 싫어하셨단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우리 할머니는 항상 내 편이었으니까

 어쨌든 할아버지는 병에 몸이 잡혀 사랑방에 누워 계시고, 할머니는 안채에서 손녀딸들을 끼고 지내셨는데 우리 할아버지 성질도 대단하셨고, 우리 할머니는 솔직히 더 대단하셨다. 병석에 누운 할아버지는 나긋나긋한 아내의 간호를 받고 싶으신데 뻣뻣하기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집쟁이 우리 할머니가 그리 만만하게 영감 비위를 어디 맞춰 주겠는가.


사랑방에서 할아버지가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면 우리 할머니 아무 말씀 안 하시고 사랑방 샛문을 열고 물을 한 바가지 퍼부어 버리고는 그 샛문을 꽝 닫아 버리셨단다. 몸도 못 움직이는 할배가 누워서 그 물벼락을 다 맞았다는…. 하 

 물론 그 뒷감당은 우리 엄마 몫이었다. 그래도 나는 괜찮다. 우리 할아버지는 나를 별로 안 좋아했으니까. 우리 할머니 패기, 나는 너무 좋다.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 마지막 소원은 그 하삼순 여사님과 이혼하고 돌아가시는 거였다는데….

항상 

 “내를 면사(면사무소) 앞까지만 데빌다 주모 저노무 할망구랑 이혼을 할낀데........,” 만 고래고래 질러 쌌다가 결국엔 이혼도 못 하고 돌아가셨다. 지금도 여전히 두 분은 부부이시다. 


         


 하여사의 에피소드 3#       

 하 여사님은 5남매를 두셨다. 아버지가 장남이시고, 그 아래 작은아버지, 고모, 그리고 막내 작은아버지, 막내 고모이시다.      

 이번엔 우리 막내 작은아버지 이야기다. 

 작은아버지께서 전문대학에 다니시다 해군에 입대하셨는데 휴가를 받아 고향 집에 오셨다. 뒷날 부대로 돌아가기 위해 부산인가 진해인가로 돌아가야 하는 날이었다. 군대 복귀를 하려면 군복을 단정하게 세탁해서 다림질 후 입고 가야 했겠지. 그때나 지금이나 해군은 하얀색 해군복을 입고 휴가를 나왔나 보다. 


우리 시골집에는 그때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으니 당연히 전기다리미도 없었다. 할머니와 엄마는 작은아버지 해군복을 잘 씻어 숯을 담은 옛날 다리미로 정성껏 다림질했다고 한다. 그런데 숯을 담아 다림질했으니 숯 검댕 한두 개 정도는 흰옷에 튀었겠지. 그걸 보고 작은아버지께서 막 성질을 냈다고 한다. 

 당연히 그럴 수 있지 않나? 하얀 군복에 검댕이 얼마나 눈에 잘 띄었겠어. 

 그런데 그 순간 우리 엄마가 뭘 말리고 자시고 할 틈도 없이 우리 하 여사님 그 옷을 돌돌 말더니 밭이 뿌리려고 모아둔 오줌 통에 바로 갖다 푹 담가 버리시더라고 한다. 사이다 하 여사님!!!

 그러고는 긴 대나무 작대기를 하나 잡아서는 키가 당신보다 20센티는 더 큰, 장성한 아들을 잡아 죽일 거라 쫓아가는데 우리 엄마는 정신이 하나도 없더라고 하셨다. 

  물론 그 뒷감당은 우리 엄마 몫이었겠지. 

  모르긴 해도 우리 작은아버지 다시는 할머니 앞에서 그런 투정은 엄두도 못 냈지 싶다. 자식 교육은 강단이 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하 여사의 에피소드 4#  


 나는 우리 큰 언니랑 13살이나 차이가 난다. 그러니 큰 언니는 나에게 언니라기보다는 나를 돌봐주는 보모, 아님. 엄마 정도였다. 그런데 언니는 그래도 언니라 엄마한테는 기가 팍 죽어도 언니한테는 끝까지 살아서 엉기는 게 동생들의 싸가지다. 내가 그랬다고….

 어릴 때 왜 형제들과의 싸움은 아침 밥상머리에서부터 시작이었을까? 아마도 그 전에 싸우고 있었는데 그 자리에서 표가 났겠지. 어쨌든 나는 큰언니한테 늘 성질이 났었고, 그럼 항상 숟가락을 집어 던지고 밥 안 먹을 거라는 걸 무기로 내 세웠다. 그런데 정말 단 한 번도 난 그 싸움에서 이겨본 적이 없다. 

 그게 다 우리 할머니 하 여사님 때문이다. 

 우리 하 여사님은 대놓고 큰언니 편이었고, 언니랑 싸우고는 씩씩거리는 나를 대하는 태도는 무지하게 무신경 그 자체였다. 화가 나서 씩씩거리는 나를 눈에도 안 띄는 그림자 취급을 하시고는 태연하게 식사하셨다. 그리하시고는 남아 있는 내 밥이랑 남은 반찬을 싹싹 거둬서는 돼지 먹이통에 고대로 갖다 탈탈 털어 부어 버리고 아무 일도 없는 듯 방에 와서 앉아 계셨다. 늘, 항상, 언제나 내가 밥숟가락을 던진 날 할머니는 그렇게 행동하셨다. 심지어 다른 날은 잘도 삶아 주시던 감자며, 고구마도 안 주셨다. 

 점심때쯤이면 성질이 좀 남아 스스로 밥상 앞에 다가가지 못하고 눈치만 보고 있는데 한번 권해 주면 좋겠는데 여전히 할머니는 쌀쌀하셨다.

 그렇게 저녁때가 되면 이젠 썽 난 건 하나도 없어지고 배고픔만 남게 되니, 밥 먹으란 말을 하나 안 하나 밥상 앞에 먼저 앉아 있었다.

 우리 하 여사님 그렇게 단호하게 나를 잡아 버릇을 들이셨다. 

 내가 숟가락 던진 날은 아무도 내 편을 들면 안 되는 게 불문율이었다. 내 편이라도 들었다간 아버지든, 엄마든, 그 누구든 할머니의 응징은 무서웠다.

 내가 아이를 키울 때 밥 안 먹을 거라고 떼를 쓸 때면 나도 우리 할머니처럼 그렇게 굶겨서 애 버릇을 고쳤다. 



 우리 하 여사님 너무 대단하셔서 나는 지금도 존경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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