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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Nov 13. 2024

어머니의 기억

어머니의 기억이 사라질까 두렵다

 난감하다.      

 멀쩡한 모습으로 당신께서 80년을 넘게 잡고 살았던 가치를 뜬금없이 내려놓는 어머니의 모습을 옆에서 봐야 할 때면 모골 송연해진다.


 큰언니가 세상을 옮겨 갈 준비를 할 때 어머니의  마음은 얼마나 지옥이었을까? 나 또한 혼자서 감당할 수 없어 어머니 옆으로 와 붙어 산지가 벌써 4개월이 넘어간다. 그 동안 나도 어머니도 서로에게 위로도 하고 눈치도 보면서 각자의 슬픔을 견디고 있는 중이다.

      


 얼마 전부터 어머니가 이상하다.       

 어제는 퇴근길에 소고기국을 끓여 먹자고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께 당신께서 뭔가 준비를 하라는 뜻은 아니었고, 내가 준비를 해가니 다른 반찬 준비하느라 고생하지 말라는 뜻이었다. 어머니께서는 콩나물은 미리 사 둔게 있으니 살 필요도 없다고 하셔서 그걸 빼고 장을 봐서 갔다. 어머니께서는 압력밥솥에 밥만 해 놓으시고 강아지 두 녀석을 데리고 방에서 티비를 보고 계셨다.      


 평소 같으시면 늦게 온 딸이 부엌에서 바삐 서두는 게 싫다시며, 콩나물 다듬어 씻어놓고 다른 재료를 다 준비해 두셨을 우리 어머니께서는 집에 있다는 콩나물마저 검은색 봉지에 담긴 그대로 씽크대 안에 던져두고, 파나 마늘 등 아무것도 손대지 않은채 방에서 티비를 보고 계셨다. 내가 집에 도착한 시간이 이미 늦은 시간이라 서둘러 콩나물을 다듬고, 채소를 준비해 국을 앉혀놓고, 시장 볼 때 물이 좋아 사둔 고등어를 씻어 냉장고에 넣어둬야겠다 싶어 찾는데 보이질 않는다. 시커먼 봉지를 다 털어봐도 고등어가 없어 찾는데 잠깐 나온 어머니께서 뭘 찾냐고 물으셨다. 고등어가 없다고 했더니 당신께서 벌써 냉동실에 넣어 뒀다고 하셨다. 아니 그 비린 걸 씻지도 않고 세마리나 되는 걸 소분도 안하고 비닐봉지에 넣은 그대로 냉동고에 넣어 두신 것이다. 다시 꺼내 씻어서 물을 빼 놓고 그기까지는 ‘뭐~ 귀찮다 보면 그럴 수도 있지’ 하고 넘어갔다. 


그런데 저녁을 먹고 우리 집에 다녀와야 할 일이 있었다. 서둘러 밥을 먹으면서 내가 밥먹고 집에 다녀오겠노라고 했는데도 불구하고 설거지며, 저녁 먹은 뒷정리를 할 생각을 안 하시는 거다. 평소 같으면 딸 고생한다 설거지까지 당신께서 하시겠다 짜증을 낼 만큼 나서는 편인데 이게 살짝 기분이 이상해졌다. 


 설거지를 끝내고 서둘러 집을 나서면서 티비에 눈을 못 떼고 있는 어머니를 보는 순간 싸하게 머리를 때리는 것이, 어쩌면 우리 어머니는 지금 치매를 향해 가고 있는게 아닌가 싶어졌다. 큰딸이 말기암이라는데 엄마인 당신께서 아무것도 해 줄 게 없는 상황에서 어머니께서는 일부러라도 당신의 기억을 지우고 계시는게 아닐까?


 내가 순천서 진주까지 출·퇴근을 하고, 금요일이면 우리 집으로 짐을 싸서 가고, 월요일이면 다시 짐을 들고 엄마 집으로 옮기는 두 집 살림을 하는 상황을 예전의 어머니셨다면 한사코 만류하셨을 일이다. 그런데 요즘 우리 어머니는 너무도 당연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시고, 주말에 우리 집으로 가는 나를 향해 혼자 있기 싫으시다며 퍼떡 오라고 재촉까지 하신다. 

 그러고 보니 어제와 비슷한 상황이 지난주에도 있었다. 내가 아귀를 사다 놓고는 음식 준비를 하기 전에 샤워부터 했다. 그날따라 유난하게 더워 바로 부엌으로 들어갈 수가 없었다. 다 씻고 나오니 어머니께서 우두커니 싱크대 앞에 서 계셨다. 콩나물 대가리도 따야하고, 파도 다듬어야 하고, 아구도 씻어야 하는데 어머니께서는 뭘 해야 할 지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말씀을 하셨다. 작년까지만 해도 이맘때면 우리 어머니께서 끓여주신 아구탕을 먹었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일들에 당황스러워지는 나는 집으로 가는 길에 내 바로 위에 언니랑 통화를 하고 서로 일정을 맞춰 어머너 치매 검사를 받아보게 하자고 했다.      


 집으로 돌아와 엄마랑 나란히 누워서 세월 참 빠르다는 이야기를 나눴다. 젊어서는 점심으로 미숫가루 한 그릇 마시고도 하루 종일 밤 줍고, 논일까지 했었는데 지금은 다리도 말을 안 듣고, 시골집에 가도 밤 산까지 걸어서 가는 게 힘들다는 말씀을 하셨다. 맘은 뻔하나 몸은 한 걸음도 허락지 않으신 가 보다. 그러면서 귀가 살짝 들리지 않는 것만 빼면 아직은 정신 줄 하나는 탄탄하시다 장담을 하신다. 


 그렇게 장담할 때가 가장 위험할 때다. 제발 귀는 안 들려도 좋으니 정신줄을 좀 잡고 사셔야 하는데 걱정이다. 

 제발 나를 빤히 쳐다보심서 

 “아이고 아지매는 누구요?”하면 안되는데......     




ps : 이 글은 2016년에 쓴 글로 그해 가을에 내 큰 언니는 세상을 옮겨가셨고, 어머니께선 엄청난 홍역을 치르셨다. 지금은 이후로 더 이상 치매로 진행되지 않으셨지만 적당한 만큼의 정신줄은 놓으셨다. 그래도 아직은 안녕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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