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인한 코로나-19, 덕분에 따뜻한 기억
세상이 흉흉하고 잔인하니 작은애가 방학이 끝나고도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고 집에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고 있었다.
아이와 보내는 이 시간이 나에게는 빼앗긴 들에 핀 봄꽃이다.
아이가 집에 있다는 거....
고등학교 4학년을(재수) 마치고 집을 떠난 후, 한집에서 이렇게 오랜 시간을 보낸 적이 없으니 눈만 뜨면 시시덕거리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남편은 함께 카페를 가거나, 서점을 기웃거리는 스타일이 아니니 밖에 나 혼자 하던 일들 즉, 소문난 까페도 가고, 맛있다고 소문난 맛집을 찾아다녔다. 밤이 되면 전원일기처럼 아주 오래된 드라마를 같이 보면서조차 시시덕거리는 걸 보면서 예전에는 왜 이렇게 지내지 못했나를 생각해 본다.
그때는 애가 공부하고 있지 않는 시간은 내가 불안해했던 것 같다. 어쩌면 보이지 않는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아이와 나누는 시간을 방해하고 있지나 않았을까? ‘저 애가 나중에 대학도 못 가면 어쩌나?’,‘저 애가 지 밥벌이도 못하고 있음 어쩌나?’ 하는 나의 두려움이 한순간도 애가 편히 쉬는 꼴을 못 봐 내게 하지 않았나 반성한다. 이제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에서 저 스스로 많이 자유로워졌다. 전적으로 아이의 공(公)이다. 지 스스로 자기가 갈 길을 찾으려 애쓰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내 맘은 그 보다 훨씬 더 넓어지고, 느긋해지니 아이에게 닦달할 일이 점점 없어진 탓이다.
학교로 돌아가지 못하는 애는 진주 집에서 강아지랑 잘 지내다가 가끔 할머니를 뵈러 갔다. 우리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아버지와 함께 지내시던 아파트에서 혼자 지내시는 엄마 집에는 늘 서너 분의 친구분들께서 와 낮 시간을 같이 보내신다.
무료할 시간을 함께 해 주시는 엄마의 친구분들이 어머니께도, 나에게도 지금은 참 소중한 분들이시다.
3월 언제쯤 아이가 할머니 댁에 간 날.
그날도 예외 없이 엄마 친구분들이 댁에 와 계셨다. 아이는 할머니 드릴 마카롱을 몇 개 사 갔는데 그걸 할머니들끼리 ‘맛있다,’, ‘쪼메한 게 요량도 없이 비싸더라.’ 하시며 하나씩 나눠 드시고는 애를 가운데 앉혀 놓으시고는 ‘애인은 있나?’, ‘취직은 했나?’ 등등 약간의 취조(?)를 하시더란다. 그러다 이야깃거리도 동이 나자 티브이에서 나오는 전국노래자랑을 보고 있었단다.
그때 나온 초대 가수가 좀 많이 헐벗고 나왔나 보다. 애 말로는 바지라고 입었는데 한쪽은 핫팬츠고, 한 가랑이는 나팔바지 모양으로 길게 늘어지는 게 우리 애가 봐도 좀 이상하다 싶었단다.
그 가수를 보자마자 바로 할머니들이 혀를 차고 ‘저 가스나는 애미 애비도 분명히 없을 거’라는 둥, ‘치마가 빤스가 다 보이게 입고다니는 것들은 다 문제가 있는 애들이라’는 둥 단체로 성토를 시작하시는데 여름만 되면 짧은 바지를 입고는 온 동네를 돌아다니는 우리 딸이 스스로 민망해져 실실 웃고 있었단다.
걔가 고등학교 땐가 언제 엄청 짧은 원피스를 입고 외출을 하는데, 남편이 뭐라 하지도 못하고 뒤통수만 보고 있다가 애가 나가고 나서 바로 나한테 전화해 애가 바지 안 입고 나갔으니 잡아오라고 했던 적이 있을 정도니 지도 막 찔린 거지.
그러다 할머니들이 그 가수에게서 우리 애 쪽으로 관심을 다시 돌려서는 저런 가스들처럼 되면 안 된다. 그리고 남자를 만나려면 먼저 엄마, 아빠 있는지 물어보고 사귀어라, 할머니까지 있다고 하면 더 좋다고 하셨다네. 뜬금없는 소리고, 맥락 없는 추론이니 아이는 그게 무슨 상관이냐 싶었지만 4대 1의 열세에 아무 말도 못 하고 그 자리에서는 방실방실 웃고 ‘예. 예’하고는 집에 와서 죽겠다고 웃는다. 누가 남자 소개해 주면 먼저 ‘걔 엄마, 아빠 살아계시나?, 할머니도 계시나?’ 이렇게 물어보고 만나야 하는 거냐고? 그리고 사람을 어떻게 엄마 아빠 살아 계시냐를 가지고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이다 나쁜 사람이다라는 편견을 가질 수 있냐고 항변 아닌 항변을 한다. 아니 내가 그랬냐고??
내가 너네 할머니한테 가서 따지시라고 했다.
어머니와 어머니 친구분들이 살아오신 세월을 생각하면 그분들이 가지고 있는 편견을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고, 또 그 평균치를 살아온 분들의 지혜로움이 그 속에 있음도 안다. 그러나 시절은 바뀌었고, 세상에 얼마나 많은 아이들이 편모, 편부 슬하에서 애를 쓰면서 자기의 삶을 개척하고 있는데 싸잡아 그네들의 노고를 폄하하는 것 같아서 나는 그 말씀에 동의할 수는 없다.
아이와는 할머니 세대를 이해하자고 결론을 냈다.
며칠 전 30살이 훌쩍 넘긴 후배에게 남자를 소개해주기로 하고 퇴근하면서 아이랑 그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이젠 나이가 있다 보니 얼마 전에 딸이 시집가는 걸 못 보시고 아버지께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했더니 우리 애가 대뜸
“아이고 아버지가 안 계셔서 큰일이네...,” 이런다. 그러다 “할머니 계시나?” 이런다.
“어 할머니는 계시다 하네.....,”했더니
“그럼 됐네, 할머니가 계신 게 한 급 더 위라고 하시더라. 괜찮다. ” 이런다.
할머니께서 손녀딸한테 충고해 주신 내용을 지 맘껏 비틀어 하는 말이다. 아마도 우리 애는 두고두고 엄마 아빠 살아계시는 집 남자 만나라는 말로 지 할머니를 놀릴 것이고, 그 놀림에 할머니는 또 행복해하실 것이다. 또한 그리 길게 남지 않을 시간이라 싶어 조금 슬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