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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feel Nov 20. 2024

밥이 보약

어머니랑 같이 살게 된 시간이 벌써 한 달이 되어간다.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지만 그냥저냥 괜찮은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우리 집에 있으나 어머니 집에 있으나 새벽같이 집을 나서 순천으로 출근하고, 해가 다 지고 난 이후에야 허둥지둥 집으로 숨어드는 건 별반 차이가 없다. 


어머니와 같이 생활하는 중에 언니는 세상을 떠나버렸고, 이젠 살아남은 어머니와 나는 또 우리가 살아야 할 이유들을 찾으며, 때로는 서로를 다독거리며 살아가고 있다.     

 어머니께서는 자주 넋을 놓고 앉아 계신다. 지난밤에는 한밤중에 잠에서 깨니 거실 불이 환했다. 내가 잠에서 깨기라도 할까 염려하여 거실에 나가 계신 듯 해 화장실에 가는 척 나가보니 앨범을 뒤적거리고 계셨다. 

그럴 수도 있는 일이다. 자식을 먼저 보낸 어미가 세상에 못 할 일이 무엇이 있을까?      

언니가 입원하고 얼마 못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어머니는 한동안 정신 줄을 놓은 사람처럼 지내셨다. 갑자기 흥분하시기도, 분노에 이를 갈기고 하셨다. 그러나 막상 언니가 가고 나니 끈이 떨어진 연처럼 아무 의욕이 없어 하셨다. 조카 하나 남겨놓지 않고 오롯이 형부와 둘이서만 살아온 언니의 부재는 우리 어머니의 가슴에 구멍으로만 그 흔적을 남기신 것 같았다.      


어느 날 밤이면 엄마의 흐느낌과 이미 당신 곁을 떠난 언니에게 하는 넋두리로 내 정신도 혼미하여 밤새 뒤척여야 했다.

 뭐~ 그럴 때도 있다. 그런 하룻밤을 보내고 나면 다음 날은 일찍부터 깊게 주무시니 낮에 대단한 노동을 하셔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냥 모른 척 넘어간다. 곁에서 위로한다고 있으면 나는 지치고, 당신은 내 위로의 끝에 매달려 더 깊은 슬픔으로 빠지시니 그것도 못 할 일이다. 그래서 요즘은 어머니께서 큰딸을 그리워한다 싶으면 일부러 자리를 피해드린다. 실컷 슬퍼하다 지쳐서라도 잠잠해지시라….     



 지난주부터는 이젠 정말 어머니와의 일상을 살기 시작했다. 이집 저집에서 어머니를 위로한답시고 가져온 음식들 말고, 그리고 김장 김치에 대충 먹는 거 말고, 시장을 봐서 새로운 반찬을 준비한다. 그리고 입에 맞는 간식을 준비하고, 저녁상을 물리고 과일을 깎아 나눠 먹기도 한다. 이번 주에는 월요일엔 강된장을 자작하게 끓여 열무 비빔밥을 만들어 먹었고, 화요일엔 카레밥을 주요리로 만들어 먹었다. 그리고 어제는 김밥을 만들어 먹었다. 


 일주일 분 음식 재료를 월요일 퇴근할 때 사다 두면 적당히 재료 손질을 어머니께서 해 놓으신다. 그럼 내가 퇴근 해 어머니랑 같이 부엌에서 음식을 조리하고 있다. 

(드라마를 할 시간에 내가 도착하는 바람에 어머니께서는 늘 조바심을 친다. 드라마도 보셔야 하고, 음식 만드는 것도 거드셔야 하니)


 어제는 김밥 재료 손질을 해 놓으셨는데 어묵이랑 대충 조리 음식들을 살짝 볶으시면서 단무지까지 졸여 놓으셨다. 김밥을 먹는데 단무지 특유의 향에 무 삶은 맛까지 더해져 약간 애매한 맛이 되었다. 왜 단무지를 볶았냐고 했더니 여름 음식이라 잘못 먹으면 배앓이할까, 봐 그러셨단다. 아이코…. 어른들의 건강염려증 때문에 음식도 이상해지곤 한다. 그래도 그럭저럭 먹을 만하니 괜찮았다. 

 오늘도 동네에 계시는 어머니 친구분 서넛이 낮에 어머니 집에 오실 것이다. 그분들이 오시면 밥솥에 가득해 놓은 밥과 냉장고에 넣어둔 재료를 꺼내 그 오묘한 김밥을 싸서 나눠 드실 것이라 짐작한다. 그렇게라도 끼니를 챙기시니 얼마 지나지 않아 맘도 추스를 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저는 밥의 힘을 격하게 믿는 사람이다. 


 오늘은 또 중간 식재료 장을 보는 날이다. 뭐가 드시고 싶냐고 물으면 아무거나 가 답인 우리 어머니 참 어렵긴 하지만 그래서 대부분 내가 좋아하는 걸로 준비한다. 내가 어머니의 딸이니 어머니나 나나 입맛이 비슷하지 않을까 싶어서이다. 오늘은 난이도가 높은 아귀찜이나, 미더덕찜을 한번 만들어 먹어 볼까싶다. 이러다 진심 잠금이 강림하시는 게 아닐지….     


 아침에 출근하는데 얇은 셔츠 속으로 가을바람이 사정없이 뚫고 들어온다. 얇샥한 카디건 하나 걸치면 딱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만 어머니 집에 가져다 둔 몇 가지 안 되는 옷 바구니에는 카디건은 고사하고 티셔츠 한 가지도 없어서 그냥 얇은 옷으로 견디고자 왔는데 낮이 되니 또 덥다.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입니다.

오늘 퇴근해서는 엄마의 가을옷을 좀 챙겨 내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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