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을 밟고 있는 나에게
글 대부분은 일기처럼 나 혼자 써서 보관하고, 그러다 가끔 주변과 나눈다.
주말에 사무실에 나왔다가 마침 나와 있는 후배한테 글을 한편 보냈다. 그걸 본 후배는 카톡으로 ‘모두 다 꽃이야’하는 노래를 보내왔다. 내 글을 읽으면서 6살 딸아이가 흥얼거리는 그 노래가 음성 지원되는 듯하여 보낸다고 했다.
노래가 훨씬 더 좋다.
30년을 넘는 시간 밥벌이하다 보니 이젠 내 아이들과 동갑이거나, 엄청스럽게도 그 아이들보다 더 어린아이들이 신입으로 들어오기 시작한다. 30년의 차이, 직장에서 동료가 된 그 아이들과 어떻게 잘 지내야 하는지 몰라서 난감했었다. 내 아이다 생각하고 대하라고들 하지만 어떻게 내 아이다 생각할 수가 있나? 직장에서 만나는 후배가 아무리 이쁘다고 한들, 눈에 넣어도 아프지도 않다고 하고, 자동이체를 걸어 내 돈을 다 털어 가고 있어도 아깝지 않은 내 아이랑 어떻게 같겠는가? 결론은 어쩔 수 없다는 거다. 그건 극복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각자 자기 역할을 열심히 하는 걸 전제로 하고, 다만 내가 어른으로서 성장기에 있는 아이들을 잘 보살펴 그들이 우리 조직에서 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선배로서 역할을 다하는 것으로 더도 덜도 아닌 딱 그만큼이 그네들과 내가 잘 지낼 수 있는 역할이라고 정했다.
역할에 대한 경계를 정했다고 해서 갈등이 사라지는 건 아니다. 그 역할이 선명할수록 경계는 뚜렷해지고, 그 경계에서 서로 선은 부딪히게 마련이다. 그래서 내 경계에 후배들이 잘 접근하지 않는다.
내가 더 세니까….
일 년에 대략 서너 명의 신입사원이 우리 부서에 발령받아 오고, 부서에 여섯 팀이 있으니 팀에서는 한 해 걸러 한 명은 신입사원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올해는 바로 옆 팀에 신입사원이 막내로 들어왔다. 늘 직원을 받을 때면 ‘눈치가 좀 있었으면….’ ‘일머리가 좀 있었으면….’하고 바라지만, 대부분은 ‘아이고, 너를 어쩌면 좋으니….’가 되어 한 일 년 동안은 팀장이 마귀가 되어야 한다. 지금은 옆 팀장 차례다.
지방에서 거점대학이라 할 만한 학교를 졸업하고 어린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합격해 들어왔으니 내심 ‘머리는 좋은 듯하니 일을 잘 가르쳐 놓으면 쓸만한 재목이 될 수도 있겠다.’ 싶은 욕심이 앞섰을까? 웅성웅성 업무 분담을 하고, 한 달이 지나고, 두 달이 지나고, 벌써 6개월이 지나 이젠 다시 3월이 되었다.
사단은 애초에 났으나, 아직 한 달밖에 안 되었으니, 이제 겨우 서너 달 지났을 뿐이니 하면서 봐주던 것이 6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하여 보이자 있는 대로 속이 곪아 온 팀장이 뒤집어엎기 시작했다. 팀장이 부모도 아니고, 선생은 더욱 아니지 않은가? 한 번은 이해할 수 없어서 그렇다 치고, 두 번째도 그래…. 하던 것이 열 번쯤 반복되지 않았나 싶다.
잘 막은 둑일수록 터지면 피해는 큰 법이다.
보고서 통계가 잘 못 잡히고, 문서에 오타가 생기고, 행정 절차를 알아보지 않고 제 생각대로 처리해 놓는 바람에 팀장한테로 컴플레인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야 테이프 붙여 살살 쓴다지만 밖에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하면 이때부터는 문서로, 감사실로 대응의 수위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그러니 팀장이 방방 뛰는 게 당연하고, 팀장이 지랄지랄하니 팀 내 선배들이 나서서 수습한다고 나서지만, 신입 입장에서는 팀원들이 떼로 달려들어 자기를 볶는 걸로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늦게 필 꽃이다. 그것도 아주 늦가을 구절초나 뭐 국화 정도로 생각하면 될까? 어쩌면 이 조직에서는 꽃이 될 수 없을지도 모른다. 간혹 그런 친구들도 있으니까….
선배도, 팀장도 속이 타는 그 마음을 모르는 바는 아닌데 그런데도 옆에서 보기가 참 거석 하다. 상황 모르는 사람들은 애를 너무 잡는 게 아니냐는 말도 나온다.
나는 그 옆 팀장과 30년을 같이 밥벌이했고, 그 팀 차석은 내 첫 팀장 보직을 받았을 때 팀의 차석이었다. 그래서 직장생활에서 보이는 그네들의 인격은 세상 누구보다 내가 잘 안다. 책임감이 남다르고, 무엇보다 직장생활에서 생기는 각종 힘든 상황들을 이미 그네들도 겪어 본 경험이 충분한지라 누구를 따돌리거나, 갈구는 일이 체질적으로 불가능한 친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벌떼처럼 달려들어 애를 잡는 모양새일까? 그 신입 빼고는 전부 다른 결론을 내고 있어서 그렇지 않을까? 거의 모든 상황에서 신입만 다른 해석을 하고, 보태서 고집까지 부린다. 진퇴양난이다.
퇴근 시간이 지나면 아이들을 키우는 직원 대부분이 밀물처럼 빠져나가고, 집에 가나 사무실에 있으나 별반 차이가 없는 몇 명이 남아 지하 주차장에 차가 빠지기를 기다린다. 그럴 때 자연스럽게 오늘 하루의 이야기가 나눈다. 요즘은 거의 신입이 속 터지게 한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오른다. 나는 듣기만 했음에도 물 없이 고구마 열 개쯤 먹은 듯 가슴을 치게 된다. 그 상황에서 그냥 조용히 가슴만 치면 좋겠는데 꼭 한마디 보탠다. 아~ 안 보태야 할 말이었고,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차를 타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후회한다. 내가 가을에 필 준비를 하는 작은 싹을 이른 봄에 피지 않는다고 밟고 있는 꼴을 보인 것 같아 너무 미안하다. 우리 엄마가 말씀하시길 겨울 보리도 한두 번 밟아 줘야지 자꾸 밟으면 죽는다고 했다. 그런데 나까지 보태서 열 번 스무 번 아이를 밟고 있는 듯하니 그냥 혼자서도 미안하다. 그런데 나는 옆의 일이니 이런 인간적인 반성이라도 하지, 옆 팀장이나 차석은 얼마나 딜레마에 빠져 있을까?
안 챙기면 사고가 되고, 매번 잡자니 자기 스트레스는 차제 하고도 신규 잡는 팀장이, 선배가 되는 꼴이라 남 부끄러워 죽겠다는 저들은 무슨 죄인가?
후배들은 언젠가는 필 꽃이라 얼러야 한다고들 하는데. 꽃이 지고 이미 열매도 다 떨어져 나가고 없어, 오늘 살아갈 힘만 겨우 남은 중 늙은이들한테 언젠가 필 꽃들까지 보살필 여력은 없는데…. 이 난국을 어떻게 살아내야 한단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