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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 은 더 이상 인간만의 것이 아닐지도 모른다.

한 스푼의 시간 by 구병모

by 김모음




‘음, 남자 소설가이구나. 그리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인가 봐. 간지럽도록 여성스럽거나 치밀하게 세심하진 않지만 잔잔한 섬세함과 따뜻함이 있어.’ 이 책을 다 읽고 처음 드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아차차, 분명 책 읽기 전에 책 표지 날개에서 작가의 사진을 분명히 봤다. ‘어? 이름만 보고는 남자일 줄 알았는데 여자분이었네?’ 하고 놀랐었다. 그런데 책 읽는 동안 그 후에도 그 사실을 까맣게 잊고 있었던 것이다. 그냥 사진 한 번 슬쩍 보고 성별에 대해 개념치 않았기 때문에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글을 읽는 내내 중성적(?)인 담담함이 느껴져서 인 것 같다. 물론, 다분히 주관적인 느낌이다.


이 책을 읽어보자 선택한 이유는? 일단 크기가 작아서 부담스럽지 않았다. 그리고 표지가 아이보리색인데, 그 색이 주는 안정감 때문인지 내용이 따뜻할 것 같았고 이해하기 어려운 내용이 아닐 것 같았다. 도서관 책 진열대에 동 저자의 다른 책도 옆에 나란히 꽂혀 있었는데 제목이 아가미, 파과였다. 짧은 단어이지만 그 두 단어의 이미지가 강렬했다. 내용 또한 스릴러거나 디스토피아적인, 혹은 우울한 내용이 있을 것 같았고 상대적으로 ‘한 스푼의 시간’이라는 제목은 말랑말랑한 젤리의 느낌이었다.


나는 인간과 로봇의 가장 큰 차이는 ‘감정’의 유무라고 생각한다. 나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로봇이 제 아무리 뛰어난 지능을 가지고 가까운 미래에 인간의 직업을 모두 잠식한다 하더라도 유일하게 인간을 넘을 수 없는 부분이 바로 감정이다. 감정은 완벽하게 배울 수 있는 ‘학문’이 아니기 때문이다. 인간이라는 생명이 잉태되면서부터 가지고 있는 것이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작용하지도 않는다. 그렇기에 제3의 어떤 것이 배우려고 해도 완벽하게 습득하고 활용하기 어렵다. 아니, 활용할 수 없다고 본다.

그런데 이 책에서 나오는 은결이는 인간의 고유영역이라 생각했던 ‘감정’을 배우고 인간을 이해하는 인공지능 로봇이다. 세탁소 주인 명정의 아들이 마지막으로 남기고 간 선물. 아들은 어릴 때부터 외국유학을 시작했고 성인이 되어서는 부모와는 연락을 거의 하지 않고 지냈다. 자신의 결혼소식도 편지로만 알렸고, 결혼할 상대의 사진 한 장 보내지 않았다. 얼마 후 명정은 아들의 비행기 사고 사망소식을 듣게 되고, 연락할 길도 없어서 황망해하던 중 로봇 ‘은결’을 국제택배로 받게 된다. 은결은 이미 없어진 회사의 샘플로 만들어진 로봇으로서 시중에서는 볼 수 없는 유일무이한 존재였다. 혼자 남겨진 명정은 은결에게 세탁소 일을 가르쳐주며 같이 생활하게 된다. 아마 아들은 이미 멀리 와버려서 되돌릴 수는 없는, 여느 평범한 집의 아들로서 같이 시간을 보내지 못한 미안한 마음을 은결을 통해서나마 명정에게 전하고 싶었던 것 같다.

은결은 명정과 함께 지내며 인간에 대해 관찰한다. 로봇답게 관찰하고 분석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알고 싶다’는 호기심을 갖는다. 이 부분부터 은결은 이제 더 이상 로봇이 아니다.


인류가 냉혹한 약육강식의 자연에서 어떻게 최약체로서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고, 오히려 지금은 지구를 지배하는 생물체가 되었냐에 대해서는 여러 요인이 있다. 유일하게 ‘도구’를 사용할 수 있었고 (지금 그 이론은 뒤집어졌다. 다른 유인원들도 도구를 사용한다고 밝혀진 지 오래다), 불을 사용할 수 있었다는 점, 그리고 ‘호기심’. 인간은 호기심을 통해 끊임없이 도전하고 수많은 실패를 반복하면서 그 경험치가 쌓여 지금의 발전을 이룩하였다. 우리가 지금까지 알고 있던 로봇은 주어진 방대한 양의 정보를 바탕으로 계산하고 정리하여 결과를 도출하는 역할을 했다. 요즘 인간에게 위협으로 다가오고 있는 Chat GPT는 현존하는 모든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의 능력으로 한계가 있던 문제들을 해결하고, 더 나아가 그 정보들을 조합하여 새로운 가설도 세울 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Chat GPT도 ‘호기심’이라는 감정은 스스로 발현할 수 없다. 만약, 로봇이 ‘호기심’이라는 감정도 학습하여 스스로 느낄 수 있을 정도로 기술이 발전한다면, 세상은 인간이 아니라 ‘로봇’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체제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위험한 생각도 해본다.


은결은 한 동네에 사는 시호, 준규를 통해 그들이 아이에서 성인이 될 때까지 인간이 겪을 수 있는 상황과 그 상황을 통해 겪는 아픔과 성장을 지켜보며 점점 인간화된다.

처음에 은결은 감정을 ‘학습’한다. 로봇은 인간처럼 신경회로가 없기에 뜨겁고, 아프고, 슬프다는 것을 온전히 느낄 수는 없지만 이해해보려 한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순간부터 은결은 ‘느끼기’ 시작한다. 작가의 말처럼 ‘이해 불가능한 방식으로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이 있다.... 그러므로 존재하기를 그만둘 게 아니라면 차라리 이해하기를 멈춰야 옳은 것들’ 이 은결이었다. 처음 ‘무너진다’라는 단어를 듣고 건물이 무너지는 것으로 이해하던 은결은 명정이 세상을 떠난 후, 몸 안에서의 경보음과 오류메시지, 시스템의 강제종료를 통해서 그 만의 ‘무너지는’ 경험을 한다. 그리고 은결은 죽기 전 명정이 혼자남을 은결을 걱정하며 한 대학의 연구소에 은결을 ‘연구목적’으로 양도한다는 서류와 은결과 같이 살아오며 겪었던 이야기를 적은 편지를 보게 된다. 은결은 그것을 ‘자기도 모르게’ 찢어버린다. 명정과 같이 살아오며 쌓아둔 기억을 지우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자유의지에 따라 행동한 것이다. 은결은 인간과 같이 살면서 ‘인간’이 되었다.


지금의 과학기술에서 ‘은결’의 상황은 그저 상상의 결과물일 뿐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무섭게 발전하고 있는 과학기술이 인간의 고유영역이라고 믿고 있는 ‘감정’, ‘느낌’ 까지도 기술로 구현해 내는 날이 온다면 과연 인간과 로봇의 차이점은 무엇이라 설명할 수 있을까? 차이점이 아니라 인간이 로봇보다 진화하지 못하여 차별받고 무시받다가 결국 퇴화되었다는 결과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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