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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에도 좀머 씨는 존재한다.

좀머 씨 이야기 by 파트리크 쥐스킨트

by 김모음





처음엔 왜 그렇게 연결을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 같은 밝은 이야기 일 줄 알았다. 단순히 두 글자의 외국이름이라는 공통점이라는 것 때문일까? 좀머 씨라는 사람의 엉뚱한 면모와 매력에 관한 이야기로 가득할 줄 알았다. 그런데, 처음부터 ‘나’라는 초등학교 1학년 정도의 아이가 자신의 나무 타기 이야기로 시작했고, 아이의 눈으로 바라본 좀머 씨는 ‘이상한 나라의 좀머 씨’였다. 지금은 거의 없지만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즈음인 90년대 초 만 해도 언제 빨았는지 모르는 꼬질꼬질한 두꺼운 옷과 떡진 머리, 숯을 얼굴에 묻힌 것 같이 거뭇거뭇한 얼굴과 때가 낀 손으로 거리를 돌아다니는 사람이 동네에 한 명쯤은 있었다. 그 사람은 항상 무슨 말인지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랩보다 빠른 속도로 중얼중얼 거리며 돌아다녔다. 나는 그 사람이 어디에 사는 사람이고 이름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래도 호숫가의 이 동네 사람들은 매일 보는 이 사람의 이름이 ‘좀머’ 씨라는 것과 어디에서 누구와 살고 있는지 정도는 알고 있었다.


좀머 씨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항상 걸어 다녔다. 항상 걸어 다녔지만 목적지는 없어 보였다. 내가 어렸을 때 보았던 ‘그’ 사람처럼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며 돌아다녔다. 그러던 어느 날, 어린아이 었던 ‘나’는 아버지와 경마장에서 돌아오는 차 안에서 갑작스러운 돌풍과 소나기, 우박을 만난다. 잠시 후 비와 우박으로 황폐해진 길 가에서 흠뻑 젖은 채 걷는 좀머 씨를 만난다. ‘나’의 아버지는 차에 타라고 계속 권유했지만 좀머 씨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고, 아버지는 순간 욱 하는 감정과 함께 “그러다가 죽겠어요.”라고 외쳤다. 그리고 좀머 씨가 평소와 다르게 아주 분명한 목소리로 “그러니 나를 좀 제발 그냥 놔두시오!” 하고 말했다. 가만히 있으면 정신적으로 고통스러워 매일 끝없이 걸었고, 지치도록 걸으며 느끼는 육체적 고통만이 삶의 고통을 그나마 상쇄시키는 유일한 방법인 듯 보였다. 이 사람은 죽고 싶어 하고 또, 그것이 매우 간절하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시간이 흘러 어린 ‘나’는 성장하여 사춘기에 접어든 어느 날, 피아노 선생님의 분노로 가득 찬 감정의 쓰레기통 역할을 맡게 된다. 어쩌면 작은 문제일 수도 있지만 권위적인 선생님의 히스테릭한 반응은 ‘내' 감정 폭발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세상은 불공정하고, 모든 것이 문제이고, 이런 상황에 처해있는 나를 신조차도 도와주지 않는다. 이런 세상에 내가 굳이 살 필요가 있는가, 이런 비겁하고 더러운 세상과는 연을 끊어버리겠다’ 하며 자살을 결심한다. 요즘 말로 ‘삐뚤어질 테다’ 심화 버전이다.


생각해 보면 현실의 나는 이야기 속 ‘나’와 달리 착한 아이 콤플렉스를 가진 청소년이었다. 흔히 말하는 사춘기는 겉으로는 있었던 듯 없었던 듯 희미하게 지나갔다. 2차 성징을 겪게 되는 이 시기에는 자신에 대한 고찰, 삶에 대한 회의 등 어설플 수는 있으나 무시할 수 없는 것들이 머릿속을 지배한다. 어찌 보면 고통스러운 시기이지만 그렇다고 건너뛰고 어른이 된다면 몸만 큰 어린아이와 다름없다. 혼란 속에서 나를 찾고 자아를 정립해 나가는 시기는 인생을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단계이고, 아직은 사회적으로 보호받고 용서받을 수 있는 10대에 겪는다는 것이 참 다행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불행히도 나는 20대 후반까지 몸만 큰 어린아이로 살았다. 그리고 사춘기 유예의 대가는 꽤 컸다. 자리를 잡고 인생의 목표와 가치를 실현해 나가야 할 시기에 내가 누구인지,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지, 삶의 가치란 무엇인지에 대한 무지와 혼란으로 방황했다. 지금까지 맹목적으로 달려왔던 것이 허무했고, 앞으로 살아야 할 날이 막막했고, 두렵고, 살아야 할 이유를 몰랐기 때문에 삶을 빨리 끝내고도 싶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이 이야기 속 ‘내’가 세상과 작별을 결심하고 나니 오히려 자유로워졌던 것처럼, 나도 다 놓아버리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웠다. 삶을 무겁게만 바라보던 내 고민은 ‘까짓것 안되면 죽으면 되지 뭐’ 하는 해학적 가벼움으로 희석되었다.


혼란의 시기를 지나, 우리 식으로 따지자면 고등학생이 된 ‘나’는 좀머 씨의 생전 마지막 모습을 목격한 유일한 목격자가 된다. 좀머 씨는 호숫가 가운데로 유유히 걸어 들어갔다. 드디어, 좀머 씨는 삶의 고통에서 해방되었다. 좀머 씨의 행방불명이 경찰에 실종신고가 되고 수색 활동이 시작된 것은 그가 사라진 지 1달도 훨씬 넘은 후였다. 한 달도 넘는 이 기간이 좀머 씨와 동네 이웃들 사이의 거리감을 말해주는 것 같아 씁쓸하다. 없어졌다는 사실이 잠깐의 화젯거리가 될 뿐, 이후 좀머라는 단어가 입에 올리기 꺼림칙한 말이 되었다는 사실이 가슴을 서늘하게 만들었다. 마음을 내어 주지 못했다는 죄책감, 그리움조차도 느끼지 못하는 동네 주민들의 반응을 읽으며 지금의 각박한 현실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했다.


좀머 씨는 철저히 고립된 존재였다. 아마도 우울증이나 정신적 트라우마를 겪고 있었던 환자였을 것이라 추정한다. 혼자 그 무거운 짐을 짊어지고 얼마나 괴로웠을까. 스스로 만든 덫에 걸린 사람은 남에게 도움을 청하고자 시도하는 것조차도 자책의 대상이기에 매 분 매 초가 견디기 힘들다. 그래서 ‘내’가 좀머 씨의 죽음을 목격하고도 당장 달려가 말리지 않은 점, 그 후에라도 마을사람들에게 그 소식을 알리지 않은 점이 의아했다. 왜 방관했을까. 이는 또 다른 의미의 살인이 아닐까. 하지만 그 뒤에 ‘내’가 조용히 있었던 이유에 대해 알게 되니 이해할 수 있었다. ‘나’에게는 어렸을 때 좀머 씨가 단호하게 했던 한 마디 ‘그러니 나를 좀 내버려 두시오!’가 좀머 씨의 진심으로 다가왔기 때문이다. 어린아이였기 때문에 그 말속의 어떤 함축적, 반어적 의미, 혹은 순간적 분노라는 것은 전혀 고려하지 않았고, 곧이곧대로 받아들였다. 그래서 아저씨의 의견을 존중했고, 그 바람을 들어주었다. 여기에 자신이 사춘기 때 시도했던 자살시도가 그 행동을 기꺼이 하게 했다. 당시 느꼈던 분노와 괴로움을 놓고 난 후 느껴지는 자유로움이 강렬했고, 좀머 씨에게도 그 자유를 주고 싶었을 것이다.


현실에도 많은 좀머 씨가 있을 것이다. 우리가 만약 좀머 씨를 만난다면 소설 속 ‘나’처럼 행동해야 할까. 아니면 어찌 되었던 사람의 목숨은 소중하다며 스스로 죽음을 선택할 자유를 빼앗아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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