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잭, 넌 나를 부끄럽게 했어

양헤는 밤 by 발레리 홉스

by 김모음




‘과연 새벽이와 무사를 우리 집에 데려온 것이 과연 옳은 선택이었을까?’ 가끔 이 두 아이들을 볼 때 문득 드는 생각이다.

새벽이와 무사는 우리 집에서 키우는 반려견들이다. 새벽이는 저먼 셰퍼드, 무사는 최근 새로운 품종으로 떠오르고 있는 ‘시고르자브르’ 종이다. 다른 말로 믹스견이라고도 한다.


새벽이는 경남 양산의 통도사 근처에서 태어난 개이다. 새벽이의 엄마와 아빠는 뼈대있는 집안의 개이다. 사람인 나도 없는 족보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제법 똑똑하다. 하지만 새벽이가 어린 강아지일 때 사회화 과정을 제대로 겪지 못해서인지, 지금은 ‘제법 똑똑하지만, 고집이 아주 세고 예의가 없는’ 개가 되었다.

무사는 경기도 광주시 유기견보호소에서 데리고 온 개이다. 태어난 지 약 한 달이 되었을 때 산길에서 동배의 다른 암캐와 같이 발견되었다. 새벽이에 비해 무사는 훈련이 잘 안됐다. 겁도 많고 소심하다. 타고난 성격 때문인지 다른 개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피하기 바쁘다. 하지만 집 안에서는 자기보다 6배나 더 큰 새벽이에게 까불기도 하고 대장노릇도 한다. 희한하게도 밖에서는 모든 개에게 경계심을 놓지 않는 새벽이가 무사에게는 한없이 양보하고 져준다. 세상에 이런 바보도 없다.


내가 만약 새벽이를 데리고 오지 않았더라면, 새벽이는 경찰청이나 군부대에서 일하는 개로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집중력도 좋고, 머리가 좋아 훈련이 잘 되는 개이기 때문이다. 아마 굉장히 능력있는 Working Dog로 인정받았을지도 모른다. 무사 또한 우리 집이 아니더라도 다른 집에서 보호자의 사랑을 ‘독차지’ 하며 호의호식하며 잘 살았을지도 모른다.


마음 한 구석에 이런 찝찝한 생각을 가지고 있는 내가 이 책을 읽으면서 얼마나 폐부를 찔리는 가책을 느꼈는지 모른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지고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것이 인생의 전부인 이 아이들을 내가 가둬놓고 유린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죄책감이 들기도 한다. 나아가 동물도 자신의 소명이 무엇인지를 아는데, 인간인 나는 아직도 나의 소명이 무엇인지 모르고 헤매고 있음에 한숨이 나왔다. 더불어 나의 ‘인간’ 아이들에게 자유로운 삶과 인생의 목표를 찾을 수 있도록 기회와 경험을 충분히 제공하고 있는지에 대한 의문도 들기 시작했다.


일단, 나는 보더콜리 잭에게 ‘1패’ 했다. 잭은 어렸을 때 이미 삶의 목표를 정했다. ‘양몰이 개들과 함께 뛰는 것’. 그 목표를 위해 처음 입양된 집에서 뛰쳐나왔고, 염소아저씨와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의 목표를 잊지 않았다. 그리고 염소아저씨로부터 삶의 지혜와 철학, 사랑에 대해 어렴풋이 배운다. 마치 우리가 유년기에 세상에 나갈 준비를 위해 공부하는 것처럼 말이다. 그 당시에는 이걸 왜 배우는지, 무슨 말인지 완전히 이해할 수는 없지만 돌이켜보면 문득, 서서히, 혹은 갑자기 깨닫게 되는 경우가 있다. 살아가면서 알게 될 ‘꿀팁’은 알고 보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사실 이미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다시 ‘1패’에 대한 이야기로 돌아가보자. 패인은 나는 아직 뚜렷한 삶의 목표가 없다는 것이다. 그때그때 필요에 맞춰서 단기 목표를 설정하고 해결하는 식이었다. 그러다 보니 인생의 대부분을 흘러가는 시간을 죽이는 데에 사용했다.


그리고 인내와 용기의 측면에서 나는 잭에게 ‘2패’를 당했다. 잭은 떠돌이 노숙자에게 묶이고 우여곡절 끝에 탈출하지만, 유기견 보호소를 거쳐 서커스단에서 생활하면서 자유와 견권을 박탈당하며 학대를 당했다. 물론 서커스에서 티파니라는 좋은 친구를 만나며 그 생활에 안주하고 싶었던 적도 있었다. 하지만 양몰이 개가 되고 싶다는 희망은 놓지 않았다. 자존심은 구겨질 대로 구겨졌지만 자존감은 지켰다. 사명이 무엇인지를 알았고, 지금 당장 편하기 위해 현실과 타협하지 않았다. 반면에 나는 힘들다는 이유로 금방 포기하거나, 못할 테니 시도조차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서커스에서 생활하는 티파니에게 감정이입이 되었다. 과거의 영광에서 좀처럼 헤어 나오지 못하고 나의 한계를 여기까지라고 스스로 그어버리는 모습이 정확히 나였다. 티파니에게는 잭과 함께, 혹은 그 이전에도 서커스를 탈출할 기회가 있었다. 하지만 그 기회를 스스로 날려버렸다. 물론 남아있는 친구들을 위해서라는 이유로 같이 떠나지 않았을 수도 있겠으나 어디까지나 자기 합리화로 보이는 이유는 나의 피해의식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백컨데, 나의 짧은 인내와 비겁이 두 딸들이 가려는 길을 가로막고 기회를 박탈할까 봐 두렵다. 부모가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의 선물은 기다려 주는 일이라고 들었다. 그래서 지난날의 못난 나를 발판 삼아 나 자신에게 주지 못했던 인내와 용기를 두 딸을 위해서 봉인해제 할 것이다.


다시 책 이야기로 돌아와서, 결국, 견생이 너무 굴곡져서인지 강철멘털의 잭도 어느 순간 여러 반문이 들기 시작한다. 지금까지 잘 살아온 것이 맞는지, 그때 그 선택이 정말 옳았던 것인지, 그때 그러지 않았더라면 어떻게 되었을지 점점 자신이 없어진다. 이렇게 혼란스러운 상황 속에 만난 인간 친구 루크는 마침내 잭의 소원을 이룰 수 있는 열쇠가 된다. 루크를 도와주고 싶었던 잭의 마음이 결국 잭에게로 돌아와 잭의 인생도 함께 도와주게 되었다. 작가는 선한 마음으로 행하면 결국 자신에게 돌아온다는 진리를 알려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결국 잭은 자신의 꿈을 이뤘다.


내 인생에 대한 ‘책’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결국 무지몽매했던 과거를 청산하고 자신의 과오를 대물림 하지 않기 위해 노력하며 살다 갔다로 결말이 맺어질 수 있을까? 간절하다면, 잭처럼 간절히 원한다면 해피앤딩이 될 것이다. 이미 인생의 반이 지나가버렸지만, 이 마저도 최종의 깨달음을 얻기 위한 밑거름이었다고 회고할 수 있는 여유가 생기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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