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 전선 이상 유

by 은기

민서가 현우를 처음 만난 것은 건축학과 입학 후 그의 작품 발표를 보았을 때였다. 그의 작품은 단순한 설계도를 넘어 살아 숨 쉬는 건축물처럼 느껴졌다. 현우가 자신의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동안, 민서는 그의 재능과 열정에 감탄했다. 그의 눈빛은 확신에 차 있었고, 그의 목소리에는 건축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이 담겨 있었다. 민서는 현우 곁에서 배우고, 함께 성장하며, 그의 열정을 공유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에게 다가갈 기회를 좀처럼 찾기 어려웠다.


그 후 현우는 군대에 갔고, 민서는 그의 빈자리를 느끼며 현우를 향한 마음을 더욱 키워갔다. 군 복무 중에도 현우의 소식을 간간이 접하며, 그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올해 4학년이 되어 현우가 복학하자, 민서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기로 결심했다.

그래서 현우가 수강하는 전공 수업을 일부러 찾아 들었고, 건축학과 특성상 밤샘 작업이 잦은 것을 이용해 민서는 현우가 작업하는 공간 근처에 자리를 잡고 밤늦게까지 함께 남아 작업하는 모습을 보였다. 현우가 잠시 쉬거나 간식을 먹을 때면, 자연스럽게 다가가 가벼운 대화를 시도하며 그에게 좀 더 개인적으로 다가가려 애썼다.

하지만 현우 곁에는 지수라는 여자친구가 있었다. 캠퍼스 곳곳에서 현우와 지수가 다정하게 웃고 이야기하는 모습, 손을 잡고 거니는 모습이 민서의 시야에 자주 포착되었다. 그들의 자연스러운 스킨십과 서로를 향한 따뜻한 눈빛을 볼 때마다 그 둘 사이를 갈라놓고 싶은 질투가 파도처럼 민서의 마음속을 덮쳤다. 그들의 굳건해 보이는 관계 앞에서 자신의 존재가 한없이 작게 느껴졌고, 현우를 향한 마음을 어떻게든 표현하고 싶었지만 좀처럼 방법을 찾을 수 없었다.


그러던 중, 현우가 주도하는 중요한 공모전 팀에서 추가 팀원을 모집한다는 소식을 접했다. 민서는 이것이 현우 곁에 다가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임을 직감했다. 그녀는 지금까지의 활동과 자신의 강점을 어필할 수 있는 포트폴리오를 만들었다. 면접에서는 현우를 향한 존경심과 팀에 기여할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진심으로 보여주려 노력했다. 민서의 간절함과 준비된 모습은 현우에게 깊은 인상을 주었고, 결국 그녀는 팀의 막내로 합류하게 되었다.

팀에 합류한 민서는 현우의 시선을 사로잡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였다. 회의가 끝나면 현우에게 다가가 궁금한 점을 질문하며 대화를 시도했고, 다리가 아픈 그의 업무를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현우의 동선을 파악하고 그가 필요로 할 만한 것들을 미리 챙기는 등 섬세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그녀는 현우에게 자신이 단순히 팀원이 아닌, 그의 곁에서 힘이 되어줄 수 있는 존재임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녀는 항상 제일 먼저 동아리 방에 도착하고 다른 팀원들보다 늦게까지 남아 현우와 단둘이 있을 기회를 만들기도 했다. 현우의 다친 다리를 걱정하며 도와주고, 그의 어깨를 주물러주며 은근한 스킨십을 시도했고, 항상 현우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커피를 준비하고 간식을 챙겼다.

다른 팀원들도 민서의 이런 모습에 "야, 오민서! 넌 현우만 챙겨주냐? 우리도 좀 챙겨줘라!" 하고 장난스럽게 타박하곤 했다. 현우는 민서의 행동을 순수한 후배의 친절로 받아들였지만, 민서의 눈빛은 현우를 향한 존경심 그 이상이었다.


어느 날 저녁, 현우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민서가 현우의 사물함에 있는 개인 물건들을 자연스럽게 가져가 깨끗이 세탁하는 모습을 지수가 보게 되었다.

지수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왜 굳이 오빠 물건을 가져가서 세탁까지 해주는 거지? 이게… 단순히 후배가 선배를 대하는 행동이야…'

그 순간, 지수의 인내심은 한계에 다다랐다.

현우가 돌아오자마자 지수는 그의 팔을 잡아끌며 조용한 복도로 향했다.

"오빠, 왜 민서 선배가 오빠 수건이랑 양말을 가져가서 세탁을 해줘? 근처에 빨래방이 없는 것도 아니고 여자친구인 내가 해줄 수도 있는데, 굳이 민서 선배가 오빠 물건을 세탁하는 것이 너무 이상하다고 생각 안 해?

혹시… 오빠가 민서 선배한테 부탁한 거야?”

지수의 목소리는 격양되었고, 눈빛에는 의심이 가득했다.

현우는 지수의 갑작스러운 태도에 당황하며 "지수야, 너 왜 이래? 내가 민서한테 그런 걸 왜 부탁해? 그저… 내가 다리가 불편하니까 민서가 도와주려나 보지.”

현우의 말에 지수는 더욱 기가 막혔다.

"오빠 다리 불편한 거랑 무슨 상관이야? 팔이 불편한 것도 아니잖아. 오빠가 민서 선배를 다른 후배들과 달리 특별하게 대해주니까 그 선배가 그렇게 행동하는 거 아니야? 오빠는 지금까지 민서 선배가 오빠한테 했던 행동들이 그냥 선배로 바라보는 행동 같아? 왜 그 선배가 그렇게 하도록 만들어?”

지수의 목소리가 복도에 울려 퍼졌다. 현우의 얼굴은 굳어갔다.

"너… 지금 나 의심하는 거야? 민서의 행동들이 내가 여지를 줘서 그런 거라고? 내가 민서한테 어떻게 행동했는데? 난…민서가 우리 팀으로 늦게 합류해 적응을 못할까 봐 리더로서 조금 챙겨준 것밖에 없어. 그런 행동을 민서가 오해했다면… 그건 내 잘못이 아니라 그 애 잘못이지. 그리고 우리 팀원 중에 네가 내 여자친구라는 것을, 내가 너한테 미쳐 있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있어?… 네가 이렇게 화를 낼 정도로 네게 보여준 내 사랑이 고작 이 정도 밖에 안 돼?… 정말 서운하다.”

현우는 지수의 말을 곱씹으며 서운한 감정을 솔직하게 드러냈다.

"나도 서운하다고! 내 눈에는 민서 선배가 오빠 좋아하는 게 보이는데… 오빠는 별거 아닌 것처럼 말하고.…”지수는 참았던 눈물을 쏟아냈다.

현우는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두 사람 사이에는 팽팽한 긴장감이 흘렀고, 지수는 현우의 해명을 믿지 않았고, 현우는 지수의 터무니없는 오해에 깊은 상처를 받았다.


그날 밤, 서로의 마음은 이미 상대방에게 닿지 않는 평행선 위를 달리고 있었다.

집으로 돌아가는 걸음을 옮기는 그녀의 발아래 그림자가 불안하게 흔들리는 듯했다. 지수는 옆자리를 지켜주던 그의 손을 잡을 수 없게 되는 상상이 현실이 될까 두려웠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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