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by 은기

지수는 숨이 멎는 듯했다. 손에 들고 있던 캔맥주를 놓칠 뻔했고, 입술이 파르르 떨려왔다. 지수의 시선은 꼼짝없이 무대에 고정되었다. 그 옆에 있던 현우는 지수가 왜 그렇게 놀라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현우는 지수의 시선이 향한 곳을 따라 무대를 올려다보았다.

"저희 밴드 공연을 즐겁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마지막 곡은 보컬인 제가 아니라, 저희 기타리스트 태준이 준비한 특별한 곡입니다."

태준은 기타를 내려놓고 마이크를 잡았다. 나지막한 목소리로 노래를 시작했다. 차분한 멜로디에 실린 가사는 이별의 아픔을 담고 있었다. 태준은 노래를 부르며 객석을 천천히 훑었고, 이내 지수를 발견했다.

두 사람의 눈이 마주치는 순간, 지수의 얼굴은 굳어갔고, 태준의 눈빛은 복잡한 감정을 담은 채 지수에게서 떨어지지 않았다. 지수는 심장이 요동칠 만큼 불안했다.

태준은 노래를 마치고 잔잔한 미소와 함께 입을 열었다.

"이 노래는… 헤어진 전 여자친구를 생각하며 쓴 곡입니다. 너무나 소중한 사람이었는데… 너무나 쉽게 놓치고 말았지요. 그 친구가 이 노래를 듣고 저의 마음을 알아줬으면 좋겠습니다.”

그의 말에 객석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태준의 시선은 다시 한번 지수를 향했다. 지수는 태준의 시선이 부담스러워 고개를 숙였다.

설아와 연주는 태준의 시선이 자꾸 지수를 향하는 것을 눈치챘다. 그들은 벙찐 얼굴로 서로를 마주보며 어쩔 줄 몰라 했다. 이 상황을 어떻게든 모면해야 한다는 절박한 메시지가 오가는 듯했다.

그때, 연주가 현우에게 다급하게 말했다. "선배님, 다리도 아프실 텐데 지수랑 둘이 Fansome으로 가셔서 마저 이야기 나누시는 건 어떠세요?”

현우는 지수의 복잡한 표정을 보며 그녀의 손을 꽉 잡았다.

"지수야, 우리 그냥 갈까?”

둘은 사람들을 피해 Fansome으로 향했다. 현우는 지수를 위해 조용히 그녀가 좋아하는 메뉴를 주문했다. 익숙하고 편안한 분위기였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무거운 침묵이 흘렀다. 현우가 먼저 침묵을 깼다.

"밴드 공연 끝날쯤에 왜 그렇게 놀랐어? 아는 사람이야?”

현우의 조심스러운 물음에 지수는 한참을 망설이다 고개를 들었다.

"응, 내 전 남자친구였어. 나도… 그 사람이 우리 학교 공연을 할 줄은 몰랐어.”

지수는 어렵게 말을 이어나갔다.

"내가…태준이랑 헤어지고 너무 힘들어했어. 내가 버려졌다는 생각에… 내가 한없이 보잘것없는 사람처럼 느껴졌거든. 그때부터 누군가를 온전히 믿고 마음을 여는 게 어려워졌어.…” 지수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녀는 불안했던 모든 순간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오빠가 민서 선배를 챙겨줄 때마다, 자꾸 태준이가 겹쳐 보였어. 내가 다시 버려질까 봐… 나를 더는 사랑하지 않을까 봐….”

지수의 진심을 들은 현우는 조용히 지수의 손을 잡고 말했다.

"지수야, 내가 너를 어떻게 사랑을 안하니?. 그리고 내가 너를 어떻게 버려?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난 너만 보여… 지수야, 내가 너의 불안함을 진심으로 이해하지 못해서 미안하다.”

"아니야, 내가 너무 예민하게 굴어서 미안해. 오빠랑 싸운 후 곰곰이 생각해보니 오빠를 못 믿었던 게 아니라, 나 자신을 못 믿고 두려워 했던거 같아.” 지수는 눈물을 쏟아냈다. 그동안 억눌러왔던 감정들이 터져 나왔다. 현우는 말없이 지수를 품에 안았다. 그녀의 눈물은 그의 가슴을 적시고 있었다. 그의 가슴속으로 비가 내려 젖기 시작했다.

Fansome에서 나와 지수를 집까지 바래다주는 길, 현우는 조용히 말했다.

"아까 그 사람이 쓴 곡, 가사… 정말 널 생각하며 쓴 것 같더라.… 아직도 네 마음이 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남아있는 건 아니지?”

지수는 눈을 동그랗게 뜨며 “말도 안돼. 오빠! 그런 생각은 하지도 마.”


현우는 지수가 태준에게 흔들릴까 봐, 또는 그의 등장으로 지수의 마음이 다시 복잡해질까 봐 걱정되었다.

그는 이제 지수의 불안을 이해했지만, 동시에 자신도 알 수 없는 불안이 엄습해왔다. 민서라는 그림자를 겨우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이번에는 태준이라는 그림자가 드리워진 기분이었다.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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