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맞춰 가는 온도들

2025-12-제시어-난로

by 은기

나는 난로를 켤 때면 잠시 멈칫하게 된다.

얼마나 온도를 올려야 방이 금세 따뜻해질지, 어느 정도에서 멈춰야 답답해지지 않을지 계산하게 된다. 계절처럼 예측 가능하지도 않고, 오래 신은 신발처럼 익숙하지도 않은 이 온도는 매번 조심스럽다.

‘관계’도 그와 비슷해서, 사람 앞에 설 때마다 나는 보이지 않는 다이얼을 한 번쯤 떠올리게 된다.

사람 사이에는 각자의 ‘적당한 온도’가 있다.

누군가는 미지근한 온기만으로도 편안해하고, 누군가는 따끈한 온도가 되어야 비로소 마음을 내보인다. 나는 한동안 모든 관계가 비슷한 온도를 원할것이라 믿었다. 내가 가장 편안하게 생각하는 온도 23도쯤이면 모두가 괜찮을 거라 생각했고, 그래서 그 온도를 기준으로 행동했다.

하지만 어떤 이에게는 그 온도가 너무 낮았고, 어떤 이에게는 과하게 따뜻했다.

나는 내 온도를 고집했고, 상대는 말없이 물러났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온도는 나 혼자 조절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가까웠던 사람과 멀어질 때, 가장 먼저 느껴지는 건 온도의 변화다.

말투가 조금 건조해지고, 웃음이 줄고, 대화 사이의 공백이 길어진다.

마치 난로 앞에서 살짝 몸을 떼는 것처럼.

그 변화는 소리 없이 진행되지만, 마음은 정확히 감지한다.

따뜻함이 줄어드는 순간, 사람은 생각보다 빨리 외로워진다.

반대로 관계가 가깝게 이어질 때는 서로의 온도가 자연스럽게 맞춰지는 순간이 있다. 한 사람의 말이 다른 사람의 온도를 조금 덥게 만들고, 다른 사람의 기다림이 한 사람의 온도를 부드럽게 낮춘다.

그런 순간은 인위적이지 않고, 조절하려고 애쓰지 않아도 된다.

마치 난로에 손을 가까이했는데, “지금 딱 좋다”는 느낌이 드는 때처럼.

온도를 맞춘다는 건 사실 거창한 일이 아니다.

조금 더 듣고, 조금 덜 말하고, 성급하게 판단하지 않고, 서로의 속도를 인정하는 일에 가깝다. 때로는 내가 먼저 한걸음 물러나고, 때로는 상대에게 다가가는 방식으로 균형이 만들어진다.

온기가 필요한 시간에 불을 밝히고, 과열되려 할 때는 다이얼을 조금 낮추는 것.

그 소소한 조절들이 관계를 오래 가게 한다.


나는 예전보다 천천히 다이얼을 돌리려고 한다.

상대의 온도가 어떤지 먼저 확인하고, 내 온도를 어떻게 표현해야 부드러울지 생각해본다. 모든 관계를 따뜻하게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도 이제는 안다.

그러나 지켜가고 싶은 사람 앞에서는 적당한 온도를 찾기 위해서라도 느림을 받아들이게 된다.

완벽한 온도는 없다.

다만 서로에게서 크게 멀어지지 않게, 적당한 거리에서 온기를 유지하려는 마음이 있을 뿐이다. 겨울이 깊어질수록 그 마음이 얼마나 중요한지 깨닫는다.

난로 불빛이 조용히 방을 밝히듯, 사람 사이에서도 그런 은은한 온도가 오래 남아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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