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이켜보면 나는 20살 때부터 조울증 증상이 나타났다. 이 증상은 신체화 증상(나의 경우, 위염과 과민성 방광이다. 이와 관련된 내용은 ’지긋지긋하다 ‘ 글에 남겨놓았다.)보다 먼저 나타났는데 바로 모든 사람들이 나를 욕하고 있다는 상상이다.
처음엔 친구들이었다. 내가 저지른 사소한 잘못을 가지고 친구들이 욕할 것 같았다. 예를 들어, 내가 카페에서 케이크를 떨어뜨렸다고 하자. 사실 이건 잘못도 아니다. 그저 실수이지. 하지만 나는 친구들이 “쟤는 일부러 떨어뜨린 거야. “, ”왜 저렇게 덤벙댈까? 역시 쟤는 별로야. “, ”나중에 쟤가 성공하면 제빵사가 힘들게 만든 케이크를 떨어뜨리는 나쁜 아이라고 글을 올릴 거야. “라고 뒷담을 할 것 같았다. 이와 같은 생각은 며칠 동안 나를 괴롭혔다. 하지만 견딜만했다. 왜냐하면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러한 상상을 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서점에 가면 인간관계에 대한 고민을 다룬 책들이 많지 않은가. 그런 맥락으로 나는 가볍게 생각했다.
그다음엔 지인들이었다. 여기서 내가 말하는 지인들은 연락조차 하지 않는, 그저 한두 번 만난 사이의 가벼운 관계를 의미한다. 이때부터 나는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것이 두려워졌다. 아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나를 욕할 것 같은 사람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매사 행동거지를 조심했지만 나의 상상은 끝이질 않았다. 일주일 정도 잠을 제대로 못 잤다. 그래도 괜찮았다. 시간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는 듯 생각은 안개같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잠도 다시 잘 잤다. 나는 내가 매우 예민한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상상의 범위는 더욱 넓어져 이제는 모르는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이 나를 욕할 것 같았다. 불특정 다수이다 보니 상상은 뒷담에서 멈추지 않았다. 티비, sns, 신문 등 내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매체로까지 상상이 번져나갔다. 이때부터 나는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나는 내가 예민한 사람이 아니라 나약한 아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너무 나약해서 작은 실수까지 허용하지 못하고 불안해하는 사람. 나는 나의 나약함을 극복하면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 생각했다.
어느 날, 이런 이야기를 대학 동기인 J 언니에게 털어놓았다. 부모님한테도 하지 않는 이야기였다. 왜 J 언니인지는 모르겠다. 그날 우연히 J 언니가 옆에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무의식적으로 J 언니를 의지하고 있었던 것일까. J 언니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듣더니 말했다.
“수아야, 혹시 병원 가볼래?”
J 언니는 자신이 조울증임을 고백했다. 나랑 비슷한 증상을 겪었었고, 지금은 약을 먹어 좋아졌다고 말이다. 병원도 추천해 주었다. 나는 웃으며 “지금보다 심해지면 가볼게.”라고 말했다. 정신병이라니, 인정할 수 없었다.
하루는 노트북으로 대학원 수업을 듣는데 갑자기 이유 모를 불안이 나를 덮쳤다.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매체들이 나를 욕하기 시작한 것이다. 또 시작이네. 가볍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날은 달랐다. 시간이 지나자 눈물이 줄줄 흘렀다. 몸이 부들부들 떨렸다. 내 옆에 있는 창문을 보았다. 문을 열고 뛰어내리고 싶었다. 죽어야 내가 살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때 병원을 이야기하던 J 언니가 생각났다. 나는 곧바로 J 언니에게 병원이 어디냐고 카톡을 했다. J 언니는 어떠한 것도 묻지 않고 병원 이름을 알려주었다. 괜찮냐는 말을 덧붙였다면 나는 병원을 가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환자가 아니라 평범한 사람이니까. 그걸 알았을까. J 언니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울면서 병원에 전화해 지금 초진 환자를 받냐고 물어봤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지금 오시면 진료를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병원은 다행히 내가 자취하던 곳에서 10분 거리였다. 나는 급하게 옷을 챙겨 입고 병원으로 갔다. 처음 보는 의사 선생님께 엉엉 울며 말했다.
모든 사람들이 저를 욕하는 거 같아요. 모든 매체에서 저를 욕하고 있어요. 무서워요. 불안해요.
그날 나는 조울증을 진단받았다. 막상 진단을 받으니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다. 약봉지를 들고 집으로 돌아와 멍하니 앉아 있었다. J 언니 말대로였다. 나는 조울증 환자였다.
시간이 지나 조울증이 어느 정도 잠잠해지자 J 언니에게 너무 고마웠다. 자신이 조울증임을 고백하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주변사람이 나와 비슷한 일을 겪는다고 해도 나는 쉽사리 조울증임을 말하지 못할 것 같다. 내가 조울증임을 아는 순간부터 생길 선입견이 두렵다.
미안하게도 나는 J 언니에게 잘하는 동생이 되지 못했다. 주기적으로 카카오톡도 하고 가끔 전화도 걸면서 고마움을 전하는 동생이 되고 싶은데 막상 하려니 잘 안된다. 친한 친구와도 6개월에 한 번씩 연락하는 나의 습관 때문인 것 같다. 여기에서라도 J 언니에게 말하고 싶다. J 언니, 정말 고마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