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무슨 일을 좋아할까. 나는 어떤 일을 수월하게 해낼 수 있을까.
2024년, 두 번의 직장 실패를 겪으면서 나의 새로운 고민이 생겼다. 이 고민은 답이 없는 도돌이표이다. 그 누구도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알 수 없는 고민에 쏟을 시간은 한정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우울증이 심해졌을 때, 병가를 쓸 수 있는가와 병가를 썼다는 이유로 나에게 불이익이 오지 않는가를 중점으로 생각했다. 내가 내린 답은 공무원이었다.
A 공무원(공무원의 종류는 다양하지만 내가 특정될 수 있어서 A 공무원이라고 하겠다.)을 준비하겠다고 부모님께 말했다. 엄마는 공무원을 합격해도 내가 잘 해낼 수 있을지 고민이라고 했다. 아빠는 “갑자기?”라는 반응을 보였지만 이제 너가 알아서 결정하라고, 아빠는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겠다고 했다.(아빠가 신경 쓰지 않겠다고 하는 이유는 ‘ ’ 글에 남기겠다.)
A 공무원을 하기로 결심했음에도 나는 수시로 ‘사람인’ 어플에 들어가 어떤 공고가 나왔는지 확인했다. 시험을 준비하는 동안 여러 공고가 떴다. 유아교육을 전공해서 그런가, 아니면 아는 지식이라고는 이것밖에 없어서 그런가. 유아교육과 관련된 직무를 보면 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곧 그 생각은 좌절되었다. 사기업이다. 병가를 쓰기 힘들다. 어렵사리 병가를 써도 회사에 조울증이라고 소문이 난다. 회사에서는 조용히 나가라는 무언의 압박을 준다. 안 봐도 뻔한 스토리에 나는 고개를 젓는다. 이번 생에 사기업은 내 선택지에 들어올 수가 없다.
그러던 어느 날, 유아교육과 관련된 공무직 자리가 떴다. 저번 직장에서 한 유사한 업무였다. (그때 당시, 나는 우울증이 심했지만 업무는 적성에 잘 맞아서 퇴사를 매우 고민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한 이유는 ‘7월달’ 글에 남기겠다.) 내가 좋아하고, 적성에도 맞고, 심지어 직업안정성을 중요시 생각하는 내가 원하는 정년도 보장되고. 신이 주신 기회가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고를 늦게 봐서 당일 18시까지 지원서를 제출해야 했다. 지금 시간은 새벽 다섯 시. 그때부터 나의 고민은 시작되었다. 내가 자소서를 제출해도 될까?
앞에서도 말했듯이 이제 나는 직업을 선택하는 데 있어서 ‘조울증으로 인한 병가’와 관련된 부분이 중요하다. 저번 직장에서 우울증이 너무 심해 퇴사를 했는데 그 기억이 나에게 너무 가슴 아프게 남아있기 때문이다. 저번 직장은 첫 번째 직장과 달리 사람들이 정말 모두 좋았다. 실수를 하는 나에게 아낌없는 칭찬과 더 발전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주었다. 업무도 적성에 맞았다. 처음 하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내가 생각해도 잘 해냈다. 그렇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깊은 우울증을 나는 이겨내지 못했다. 우울증은 좋은 회사에서 좋은 사람들과 일할 수 있는 기회를 가져가 버렸다.
공무직이라 다른 사기업에 비해 병가를 편하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공무원만큼 제대로 보장되는지는 알 수 없었다. 인터넷을 검색해도 공무직 병가와 관련된 내용은 잘 나오지 않았다. 시작되는 나의 불안.
‘합격해도 우울증이 오면 어떡하지?’
사실 내가 하는 고민은 합격한 후에 생각해도 될 문제이기는 하다. 고민 끝에 공무직을 포기해도 예비 합격자들이 있으니 해당 기관에도 큰 폐를 끼치지 않는다. 심지어 나는 서류제출 상태이다. 아직 1차도 통과될지 말지 모르는 상황이란 뜻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고민하는 이유는 하나다. 두 번째 직장에서와 같은 실패를 하고 싶지 않아서.
20대 중반 이후로 겪는 계속된 실패는 안 그래도 낮은 나의 자존감을 꺾어버렸다. 부모님을 당당하게 볼 자신도 없다. 인생의 실패자라는 생각은 부정적인 마음을 강화시켰다. 더 이상의 실패를 허락하고 싶지 않았다. 이러다간 정말 나를 잃어버릴 것 같았다.
긴 고민 끝에 나는 자소서를 제출했다. 꿈을 꾸는 것에도 스스로를 제약하고 있는 나 자신이 싫었기 때문이다. 아직 합격도 하지 않았는데, 꿈만 꾸고 있는 건데 왜 이렇게 나를 옥죄는 거람.
물론, 나는 알고 있다. 아마 나는 수많은 선택에서 조울증으로 인해 제약을 받을 것이다. 교사가 되기 위한 마약류 검사에서도 그랬고, 운전면허 시험에서도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꿈꾸는 것에서만큼은 나를 가두지 않으려 한다. 우선 꿈이 실현되면 걱정하자. 이 정도의 거리를 유지한 채로 올해를 살아보자. 아직 나는 꿈꾸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