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잠시만 화장실 좀 다녀올게. “
이 말을 들으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대다수의 사람들은 ‘생각은 무슨. 그냥 화장실 가고 싶은 거잖아.‘라고 말할 것이다. 상상력이 뛰어난 사람들은 화장실이 아니라 이벤트를 준비하러 가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다. 어떤 사람들은 조용히 다녀오면 될 것을, 굳이 말하고 다니냐고 불평할지도 모른다. 나에게는 어떠한가. 나는 지긋지긋하다. 말 그대로다. 나는 이 말에 넌덜머리가 났다.
조울증 환자들은 다양한 신체화 증상을 겪는데 (신체화란 정신적인 문제가 메스꺼움, 현기증 등의 신체증상으로 나타나는 것을 말한다) 나는 대표적으로 두 개의 증상을 보였다.
첫 번째 증상은 ‘위염’이다. 23살 때부터 나는 무슨 음식이든 제대로 먹지를 못했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어도 딱 세 입이면 속이 울렁거렸다. 억지로 음식을 먹으면 그날 하루는 침대에 누워야 할 정도로 소화 능력이 떨어져 있었다. 내가 유일하게 잘 먹는 음식은 음료수였다. 음료수는 꿀떡꿀떡 잘 넘어가고 위에 무리도 주지 않았다. 한창 위염이 심각할 때는 하루에 한 번 음료수만 먹고살았다. 처음엔 배고팠지만 그런 생활을 계속하다 보니 위가 작아져서 음료수 한 잔에도 배부른 지경까지 왔다. 그 정도로 나는 먹지 못했다.
문제는 아무리 위내시경을 해도 큰 이상이 없었다는 것이다. 의사들은 하나같이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정도의 약한 역류성 식도염만이 관찰된다는 소견을 보였다.
두 번째 증상은 ‘과민성방광’이다. 과민성방광은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가고 싶은 증상이다. 25살 어느 날, 아르바이트 면접을 보러 가는 길에 화장실이 너무 가고 싶었다. 그래서 버스에서 내려 근처 식당 화장실을 들어갔다. 다시 버스를 탔다. 또 화장실이 가고 싶다. 내렸다. 화장실을 갔다. 버스를 탔다. 내렸다. 결국 나는 택시를 잡아 겨우 면접을 보고 집으로 돌아왔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도 몇 번이나 화장실을 들러야 했다.
비뇨기과 의사는 이런 경우가 흔하지 않다며 원인을 모르겠다고 했다. 그저 약을 잘 챙겨 먹고 참는 연습을 하라고 했다. 면접을 보았던 곳에서 같이 일을 해보자고 연락이 왔다. 화장실 문제 때문에 나는 정말 하고 싶었던 일이었음에도 거절했다.
시도 때도 없이 화장실을 가고 싶고, 화장실이 보이지 않으면 불안하고, 화장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사람이 이용하는 순간 내가 실례를 하지 않을까 긴장하고. 하루에 수십 번씩 이런 긴장과 불안을 하니 살 수가 없었다. 일상생활에 문제가 생겼다. 위염과는 다른 수준이었다.
조울증을 진단받으면서 나는 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이 신체화 증상임을 알게 되었다. 의사 선생님 말대로 약을 꾸준히 먹자 위염은 나았다. 하지만 과민성 방광이 아직 말썽이다. 예전보다 나아지기는 했지만 나는 가는 곳마다 화장실의 유무를 확인하고 장소를 옮길 때는 꼭 화장실에 들러야 한다. 주변 사람들한테는 화장실을 자주 가는 사람이라고 둘러댔다.
한 장소에 도착하면 화장실부터 찾아보는 나,
다른 장소에 갈 때마다 화장실을 들르는 나,
화장실이 없으면 그 공간은 가지 않는 나,
화장실 때문에 1시간 이상은 대중교통을
타지 못하는 나,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지긋지긋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