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실에 대처하는 자세
또 잃어버렸다. 귀걸이 한쪽. 이번엔 갈고리로 끼우는 디자인이었는데 두툼한 겨울 목도리를 여러 번 둘렀다 풀었다 하며 빠진 모양이다. 빠지는 형태가 늘 똑같진 않다. 뒤에서 막는 것은 마개의 구멍이 조금씩 커지며 헐거워져 빠지기도 하고 왜 한쪽만 없어졌는지 도통 알 수 없는 경우(대부분 이렇다.)도 있다. 이번 것은 한쪽을 이미 잃어버린 적이 있어(분명히 가방에 두 개를 함께 넣어 두었는데 며칠 후 불가사의하게 한쪽만 발견되었다.) 액세서리 가게에서 한쪽만 재 구매해 다시 한 쌍을 맞춰 처음 하고 간 날 또 잃어버렸다. 처음엔 한쪽 귓불에만 달려 있는 귀걸이를 보고 '아~~ 또?!' 당황했다. 그다음 그날 동선을 따라 어디서 흘렸을까 찾아보고 결국 실패하여 칠칠찮은 나를 바보 같다 자책하다, 이렇게나 허술하게 쑥 빠지도록 디자인 한 일면식도 없는 알지도 못하는 귀걸이 디자이너에게 분기탱천 화가 났다. 다시 직접 한쪽을 사러 가자니 같은 모양이어도 그것은 바로 그 귀걸이는 아니라는 사실에 속상한 마음이 가셔지지 않아 묘하게 허무하고 슬펐다. 두 번째 한쪽을 살 때도 비슷한 느낌이었으니 그만 두자 하고. 그냥 잃어버린 채 두자 하고. 마트에서 산 플라스틱 액세서리 보관함에 남은 한쪽을 내쳐 걸어 두었다.
심심하고 심심한 어쩌다 하루 오후. 놀 거리를 찾다 문득 악세 서리함을 정리하기로 한다. 지난번 분실한 귀걸이 말고도 어디서 분실했는지 알 수 없는 아까워 버리지 못한 또 다른 한쪽 귀걸이를 발견한다. 작은 초록 색 잎사귀를 달고 길고 가볍게 낭창거리는 걸 샀을 때 느낌이 떠오른다. 짙은 초록이 무성하던 여름, 그 귀걸이를 짧은 머리카락 밑으로 우아하게 늘어뜨리면 나도 작은 잎사귀처럼 초록으로 물들어 달랑달랑 싱그러워질 것 같던. 바짝 말라 바삭거리던 마음이 잠깐이나마 촉촉해졌던 순간의 느낌이 해적 룰렛 인형처럼 갑자기 튀어 올라. 정리는 뒷전에 두고 문득 그 귀걸이 한쪽을 그림으로 옮겨 두고 싶어졌다. 색연필을 꺼내 초록 도자기 잎사귀와 작은 진주 세 알, 금속 연결 고리들을 하나하나 찬찬히 보며 그려 놓고 배경은 주황색으로 무심히 쓱쓱. 그림을 그리는 짧은 사이 어디서 오는지 모르겠는 평온함(나와 나 사이의 화해)이 내 마음에 찾아왔다. 한쪽만 있으면 어때. 그 걸로도 예쁘다. 다른 한쪽 귓불에는 가지고 있는 것 중 잘 어울리는 걸로 골라 짝짝이(언발란스가 유행이다.)로 해 보지 뭐. 양쪽이 다 꼭 같은 모양 이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매일 무언가를 얻지만 매일 무언가를 잃는다. 어떤 때는 크게 얻고 작게 잃지만 대부분은 작게 얻고 크게 잃는 것 같은 삶이다. 얻은 것은 금세 잊히고 잃은 것만 한 쪽짜리 귀걸이 마냥 내 맘에 두고두고 걸려 있기 때문인지 모르겠다. 귀걸이처럼 다시 살 수 있는 물건의 상실조차 잃은 후엔 맘이 상한다. 당황하고 자책하고 분노하고 포기하는 사이 마음에 구멍이 생긴다. 돌아가신 엄마, 말 없는 연인, 소원해진 친구, 없어진 자리로 생기는 구멍은 블랙홀처럼 그리움과 슬픔, 후회와 불안을 삼키며 나와 나 사이의 화해를 어렵게 만든다. 어떤 구멍도 다시 얻은 것으로 또는 이미 얻은 것으로 완벽하게 메꿔지지 않아 무언가를 누군가를 잃는 일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익숙해지지 않음에 익숙해지는 것 말고는 수가 없다. 매일 사는 만큼 매일 죽으므로 어쩌면 상실은 살아 있는 것들에게 새겨지는 문신 같은 특징이 아닐까. 크고 작은 상실들을 생명인 내가 어떻게 피해 갈 수 있겠어. 겪어 낼 수밖에. 내 존재를 삼켜 버릴 수도 있는 검은 구멍에 고개를 돌리지 말고 그림 그릴 때 그렇게 하듯 가만히 그 폭풍의 중심을 응시하는 것. 불면의 밤과 한숨의 낮 그 격랑의 순간도 삶의 시간 안에 들여놓으려는 의지를 갖는 것이 내가 내 방식으로 상실에 대처하는 법인가 싶다. 모든 시간들이 '도깨비'의 시간처럼 찬란하고 완벽할 수는 없다. 쭈글쭈글한 시간들을 한참 보내고 나서야 겨우겨우 다시 찾아오는 반짝거리는 사금 같은 시간, 그 찰나를 감사히 음미할 수 있기를 바란다. 상실의 시간이 이어지는 터널을 무사히 지날 수 있도록 헤드라이트를 비춰줄 찬찬한 응시를 위해 오늘도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고 책을 읽고 노래를 부르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