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피는 산골?
나의 살던 고향은 꽃 피는 산골♬. 얼마 전 설을 보내고 나서 불현듯 오랜만에 '고향의 봄' 합창을 듣고 싶어졌다. 4년 전 대학 친구들과 함께 불렀던 김준범 편곡의 곡인데 합창 연주 전 청중들에게 아래와 같이 소개했다.
"..세 번째 곡은 '고향의 봄'입니다. 아마도 이 곡을 모르시는 분은 없으시리라 생각되는데요. 처음 몇 소절을 듣고 내가 아는 곡이구나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합창 전곡 악보를 보고 나서는 이 곡을 잘 부를 수 있을까? 조금 걱정이 되기 시작했지요. 연습하는 동안 오랜 벗들이 모여 서로 소리를 주고받으며 어릴 적 그때로 신나게 돌아갈 수 있게 해 준 멋진 곡입니다. 여러분의 고향이 여기 서울이든 더 먼 곳이든 기억 속 그때 그곳의 봄으로 돌아가 저희와 함께 아이 같이 맘껏 즐기시길 청합니다."
사실 그때 이 곡을 어렵사리 소개하긴 했지만 자주 이사를 다녔던 유년 시절 신나게 뛰놀던 고향의 봄이 딱히 기억에 있는 건 아니란 걸 고백해야겠다.
이번 긴 설 연휴에도 시간은 마술사가 검은 장막 뒤로 날려 버린 미녀처럼 감쪽같이 사라져 버렸다. 유난히 짧게 느껴지는 설과 추석. 명절은 그 풍성한 먹거리와 달뜬 분위기에도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다. 왜 그럴까? 방과 후 운동장처럼 한가해진 도심의 길과 건물은 그 무심함으로 남아 있는 이들을 귀향하지 못해 남겨진, 서글프게 떠나온 사람으로 만들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 적이 있다.
나는 분명 떠나 온 사람이다. 본적은 충남 서천이라 듣고 자랐지만 어릴 적 한 번도 그 땅을 밟아 본 적이 없다. 태어난 곳은 외가가 있는 군산이지만 3년여간 살다 떠난 후 다시 돌아가지 않았으며, 초중고 졸업은 부산에서 했다. 서울살이 30년이 넘었으니 앞으로 머물 것을 계산에 넣는다면 생의 대부분을 서울서 보냈다 할 수 있겠으나 여기도 저기도 딱히 고향이라 마음 두어 칭할 곳이 없다.(대신 충청, 전라, 경상, 서울 사투리를 골고루 한다.) 서울 토박이인 친구들에게 종종 부모님 고향이 대구라던가 조부모님은 함경도에서 넘어오신 분들이라던가 하는 얘기를 듣는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떠나온 자이거나 떠나온 자들의 아들 딸이라 DNA 안에 타향살이의 고단함이 피로 물질처럼 쌓여 있는 게 아닐까. 오랜 세월 대대로 떠나온 자들의 후손이었던 인류는 언젠가 고단한 항해를 마치고 오디세우스가 이타카로 귀향했듯 마침내 돌아가 편히 쉴 그곳을 꿈꾸어야 한다 믿으며. 누구에게나 돌아갈 곳은 있어야 한다는 신화를 만들어 고.향.에 전형성을 부여해 놓았음에도 아무래도 나는 고향을 찾지 못할 것 같은 불길한 생각이 든다.
어릴 적 추석날 외갓집에 가 외할머니께 인사를 드리면 두 가지가 돌아왔다. 두둑한 용돈과 엄마에게 잘하라는 당부. 이성당 아이스크림을 사 먹을 수 있는 용돈은 좋았지만 네 엄마가 믿을 데가 너희밖에 없다는 할머니의 당부는 듣기 싫었다. 내가 태어난 곳, 더 어릴 적 뛰 놀던 작은 동네를 가을 푸른 바람 사이 맑은 햇살 아래 천천히 어슬렁거리는 시간은 이상한 슬픔이 차오르는 먹먹한 순간이었지만 보드랍고 따뜻했다. 그럼에도 그곳에 자주 가고 싶지 않았던 건 왠지 쌀쌀맞게 느껴지는 할머니, 엄마를 측은하게 만드는 할머니의 당부 때문이기도 했다. 올해 설날 우리가 사는 아파트 바로 앞 길 건너 아파트 어머님 댁에 인사를 드리러 갔다. 같이 간 딸아이에게 용돈을 쥐어 주시며 “아가, 자식이라곤 너 하나밖에 없으니 엄마, 아빠에게 잘해라이” 하시는 말씀을 옆에서 들으며 슬며시 웃었다. 자상한 할머니도 저런 당부를 하시는구나. 돌아가신 외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엄마! 하늘나라에서 할머니 만나 오순도순 잘 지내고 계시는지.(아마도 그곳이 우리가 마침내 돌아갈 곳이겠지요.) 거기선 좀 편안 하신지. 그랬으면 좋겠어요. 고향을 찾지 못하면 어떤가 그러면 딛고 서 있는 여기를 그냥 고향이라 하자. 그럼 덜 쓸쓸해질지 모르니. '꽃피는 산골'은 아니지만, 여기로도 어김없이 봄이 다시 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