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와 보물선

어느 하루 오후의 기억

by 하루

아직도 선명히 기억하는 어릴 적 꾼 꿈이 하나 있다. 집이 불타고 있고 그 집 지붕 위를 내가 날 듯이 뛰어다니는 데 뒤에서 달려오는 누군가 에게 쫓기는, 블록버스터 재난 영화의 한 장면 같은 꿈이다. 그 꿈을 꾸었을 때 국민학교 저 학년이었던 나를 포함해 우리 가족은 외가가 있는 전라도 군산의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적산 가옥에 살았다. 1층은 좀 어둑한 작은 방과 부엌이 있었고, 좁은 계단을 오르면 2층엔 1층보다 조금 넓은 방이 낮은 턱 위로 난 큰 창을 열면 지붕 옥상으로 연결되는 낡고, 작은 집이었다. 그 집에서의 세세한 기억은 다 바래져 날아가 버렸는데 유난했던 저 꿈과 어느 하루 오후의 기억이 선명히 남아있다. 하는 일이 들쑥날쑥했던 아빠는 그날 오후도 집에 계셨던 모양이다. 종종 스케치북에 쓱쓱 그리는 그림으로, 또는 나무를 깎아 만든 작은 물건들로 나와 여동생을 즐겁게 해 주시곤 했던 젊은 아빠는 범상치 않은 재주를 지녔으나 무슨 일인지 그 솜씨의 소용이 어디에도 닿지 않아 슬퍼 보였다.


여러 날 동안 틈틈이 공들여 만들던 하얀 돛을 여러 개 단 늠름한 범선이 완성되어 가던 그날 오후. "우리 딸 들 시집갈 때 이 배 안에 빨간색, 파란색 예쁜 보석들을 가득 실어 보내 줄게" 2층 방의 넓은 창으로 오후 햇살이 비춰 들어 범선을 손에 들고 웃고 있는 아빠의 등 뒤가 환해졌다. 갑판 위에 나 있는 네모나게 작게 뚫린 까만 구멍을 들여다보며 내가 말한다. "에게, 이 속에 아무것도 없는데~" "이제부터 차곡차곡 채울 거니까" 돛 대 꼭대기에 단 작은 깃발에 말 무늬 같은 걸 그려 넣으며 즐거워 보이던 아빠는 두해 전 팔순을 넘기셨다. 범선은 잦은 이사에도 줄곧 아빠의 이루어지지 않는 꿈처럼 우리 가족을 따라다녔다. 스무 살 서울로 올라오며 부모님과 떨어져 지낸 후론 범선에 보석이 채워지고 있는지 신경 쓸 겨를이 없었고 어느 날 범선은 자취를 감춰 버렸다. 하지만 나는 늘 지붕 위를 뛰어다니던 그 꿈을 떠올리면 연달아 그 작았던 집 2층의 너른 옥상과 큰 창문과 밝은 햇빛과 멋진 범선과 아빠의 환하게 웃던 얼굴이 생각난다.


오랜만에 시골집에 다녀왔다. 남편과 딸아이와 동행이었다. 연로하신 아빠가 사시는 집은 황토벽으로 아무래도 먼지가 많았던가 보다. 먼지 알레르기가 있는 딸아이의 눈이 금세 충혈되더니 코가 막혀 숨쉬기가 쉽지 않아 밤새 뒤척이다 다음 날 약국에서 약을 사 먹고 조금 나아졌다. 일 년에 겨우 두세 번 와서 묵는 일도 간단치가 않다. 먼지를 좀 닦을 요량으로 책장을 둘러보다 장 위에 두껍게 먼지를 이고 놓여 있는 범선을 발견했다. '이 게 언제부터 여기 있었지. 그동안 왜 못 봤지?' "아빠, 이 거 내가 가져도 돼요?" 아빠 말씀이 "난파선인데 뭐 하러... 가지고 가려면 손 좀 봐야 될 텐데.." 몇십 년 세월의 풍파에 돛도 노도 모두 온전치 않은 그야말로 난파선이다. 보물선의 꿈을 안고 출항했으나 긴 항해 끝 낡고 빈 채로 해안가로 밀려와 닻을 내린.


시골집에 다녀온 얼마 후 황토벽과 카펫 바닥을 나무 널 벽, 비닐 장판 바닥으로 바꿔야겠다는 아빠 전화가 왔다. 혼자 공사 관리하고 청소하고 그러시기가 버거우셨을 텐데 일하시는 분들과 함께 드디어 잘 끝냈다고 하신다. 목소리에 오래 묵은 숙제를 끝낸 아이 같은 홀가분함과 뿌듯함이 묻어 있다. 아빠의 배는 여전히 항해 중이다. 그 바다가 내내 큰 파도 없이 안온하기를, 미풍은 산들 불어 돛을 채워주기를, 아빠의 범선이 행복하게 오래오래 순항하기를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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