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은 거짓말을 한다.

삶과 인문학

by 하루

몇 년 년 전 모 대학교의 인문학 과정 한 학기를 마치고 수료하며 써냈던 에세이를 다시 읽어 본다. 하루 하루 쓴 글의 다짐처럼 살고 있는가? 한 해를 돌아보며 또 한 해를 바라보며...


때때로 아니, 거의 모든 순간 마음은 거짓말을 한다.

큰 상처는 별 거 아니라 무시하고, 사소한 흠집은 부풀리며 호들갑을 떨고, 질투가 드리운 그늘은 경쟁으로 쿨 하게 포장하며, 좋은데 그저 그런 척 딴 청을 핀다.

AI 로봇에 장착된 자율 보정 장치처럼 자율신경계가 관장하는 인간 DNA의 생존 전략일까. 마음이 진실만 속삭인다면 지혜롭다는 호모사피엔스도 예측 불허인 자연의 횡포와 일상의 신산스러움, 유한한 존재의 불완전함이 유발하는 공포, 상심, 불안으로 얼마 안 되는 에너지를 다 소진하고 이미 멸종 됐을지 모른다. 진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울 때, 깨지기 쉬운 물건을 뽁뽁이 포장지로 몇 겹 둘러 소포로 보내 듯 거짓말로 푹신하게 감싼 마음을 먼저 한 번 툭 던져 보는 것. 일종의 마음 면역 기제의 발동이다. 사실 이때 마음이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건 진실이 아님을 안다는 전제가 있다. 진실이 아님을 알고도 짐짓 거짓을 꾸미는 것이 타인과 공동체에 피해를 준다면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수 있겠으나 마음이 자신의 일을 두고 혼자 하는 일임에야 어떠랴. 돌아갈 곳이 어딘지 짐작하며 부러 둘러 가는 한가한 소풍이라면, 너무 심각해지지 말라 던지는 농담, 일상의 무게를 더는 삶의 세련된 기술이다. 하지만,


시간의 급격한 타격을 정통으로 맞고 있는 두 눈에 안경이 필요해진 순간부터 일까.

혼자 있는 저녁 가만히 마음속 이는 바람과 소용돌이의 모양을 들여다보노라면 진실인지 아닌지도 몰라, 또는 정답이 있기나 한 건지 몰라, 거짓으로 라도 에둘러 답하기 어려운 질문들이 폭풍 속 빗줄기처럼 한꺼번에 마음을 그어 그 답을 찾기에 전전긍긍하는 날들이 많아졌다. ‘아름다움은 어떻게 정의하나’ ‘무엇을 아름답다고 느끼나’ ‘어떻게 늙어가나’ ‘늙는 가운데도 즐거움, 아름다움이 있나’ ‘인류는 존속 가능할까’ ‘인류와 다른 생명체는 공존할 수 있을까 ‘지금 여기는 살만한 곳인가?’ ‘살 만한 곳은 어떤 곳인가?’ ‘나는 어디서 왔나’ ‘나는 누구인가’ ‘내가 좋아하는 것 들’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은’ ‘부모와 자식, 가족이란’ ‘죽음은 어떤 형태로 오나’ ‘존재는 언제 소멸하나’ ‘영원한 삶은 가능한가’ ‘과학은 어디로 우리를 데리고 가나’ ‘얼마나 벌고 싶은가’ ‘일의 의미는’ ‘어떤 일을 하고 싶은가’ ‘욕망과 희망의 효용은’ ‘언제 기쁨으로 가득한가’ ’ 지금, 행복한가’..… 안경을 쓰기 전에도 묻지 않았던 질문들이 아니고 그 답을 구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너무 추상적이라고, 굳이 쑥스럽게 이런 질문에 정색하고 답을 해야 하는 거냐고, 아직은 시간이 있다고, 본질적인 것들이니 나이 들면 저절로 답을 알게 될 수도 있을 거라고 어물쩍 넘겼을 테다. 질문들이 답을 더 미루지 말라고 덤비기 시작했다. 그 답을 내는 과정은 내 주변과 내가 함께 등장하는 옴니버스 영화 만들기 같다. 서랍 속 묵혀 놓은 시나리오를 책상 위에 꺼내 두고 천천히 조금 더 깊이 고민해 보자 인문학 강의를 신청했다.


‘어떻게 죽을 것인가?’

첫 책을 받았다. 이 질문을 맨 앞에 두는 게 적절하다. 마지막에 대한 숙고를 접어 두고 그 앞을 도모하는 것은 차안대 쓰고 달리는 말의 경주다. 고종명이 지복이다 하면서도 죽어갈 때 어떤 상황과 모습이기 원하는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을 어떻게 보내고, 매듭짓고 싶은지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그려본 적이 없다. 나의 선택만으로 결정짓기 어려운 실천의 문제들, 제도와 인식에 대한 분분한 의견들, 그리고 혹시, 죽음과 밀당할 사이 없이 작별을 맞는 행운이 와 주지 않을까 하는 어설픈 기대, 이런저런 핑계를 경계병처럼 세워 두고 죽음의 정면 보기를 주저해 왔다. 하지만 소멸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을 세우고, 마음을 먹고, 목소리를 내고, 차분히 준비하는 건 지금을 사는 방법과 하루하루의 가치를 결정하는 긴급한 생존의 문제라는 걸 시나브로 알아가고 있는 중이다. 한 세계가 닫히는 순간을 고요하게 맞기 위해 매일 가운데 ‘어떻게 죽을 것인지’ 삶만큼 고민해야 한다는 걸. 인문학을 공부하며 “아침에는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 1) 말하거나, “웃으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2) 스물네 가지 정도는 알고 있는 사람들과 존재의 소멸, 하루하루 죽어가는 일에 대해 유쾌하면서도 속 깊은 이야기들을 나누길 더불어 바라게 되었다.



죽음 이전의 삶, 삶에 접속하다.

“인간이 접속을 위해 이질적인 것에 호기심을 갖는 것은 원초적 본능에 속한다. 그것으로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3) 죽음을 인정한 다음 유한해 진 삶은 호기심으로 가득하다. 우리는 매일 새로운 것을 탐색하고 그중 무엇을 선택하거나 선택하지 않는다. 그 결정에 취향과 가치관이 관여하는 과정이 나를 정의하게 되는 순간이 아닐까. 나로 시작해서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내 외연을 확장시킨다. ‘어떤 음악에 저절로 춤을 추는지’, ‘어떤 생각에 기쁘게 놀라며 설레는지’, ‘어떤 사람들의 이야기에 미소 짓는지’, ‘어떤 그림 앞에 붙들려 있는지’, ‘어떤 일을 할 때 눈을 반짝이는지’. 이런 선택들에 따로 정해둔 답은 없다. 다만, 내가 선택한 것들이 나를 자유롭게 만들어 주는지 그 안에서 유일한 개별자인 나를 독창적으로 발견하게 되는지가 중요하다. 이런 선택들이 쌓여 내가 만들어지는 과정엔 양질의 접속이 필요하다. 인문학은 그런 접속이 가능한 플랫폼이다. 풍부하고, 새로운 발견들은 뜻밖의 즐거움으로 또 다른 길에 자유롭게 나설 용기를 준다. 삶과 내가 떨어져 있지 않기를, 새롭게 알게 되는 것으로 삶에 접속하며 나를 발견하는 접점이 넓어지고 그만큼 내가, 나와 함께 하는 사람들이, 내가 하는 하루의 일들이 원숙하게 깊어지기를 바란다. 그렇게 이루어지는 스스로의 선택들이 자연스러움과 나를 반영한 지향성을 가지고 있어 나답다 할 수 있기를 바란다. 화를 덜 내고, 귀를 열고, 자주 노래 부르며, 글을 써 두고, 화초에 물을 주고, 작은 것들을 그리며 자세히 보기 시작했다.


확장된 나, 우리

내가 누구인가 하는 질문은 우리는 누구 인가로 확장된다. ‘우리는 어디서 왔나, 어디로 가고 있나’,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어떤 모습이길 바라는가’ ‘. 우리의 기원이 어디인지 묻고, 거쳐온 역사와 오래된 지혜를 해석하고, 가보지 않은 길에 놓인 새로운 기술과의 공존을 모색하는 시간은 자신의 정체성을 알아가는 것에 더해진 다른 의미를 찾게 한다. 함께 해야 하는 일들이 있으며 같이 가야 하는 길들이 있으니. “공통의 상상이 인류의 가장 큰 무기”라는 데 이견이 없다. 하지만, “선한 상상력”을 발휘하여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소망과 달리 긴 시간의 흐름 속에 역사는 돌고 도는 것 같다. 역사 속 갈등의 시대와 지금의 상황이 다르지 않음을 본다. 번성함의 이유도 이울어 가는 모양도 비슷하다 생각하며 여기 꼬인 실타래 푸는 열쇠를 옛일에서 찾아볼 수도 있으련만 갑갑하게 갈등이 계속되고 있는 걸 목도한다. 하지만 역사 속 흥망성쇠를 복기하며 멀리 있는 위정자들을 어찌해 볼 길 없더라도 가까이의 일들은 돌아볼 수 있다. “행복은 환경, 운, 머리가 아니라 상황을 바라보는 시각이 결정한다.”4) 좁고 편향된 시각과 사고를 뚫고 도도한 시간의 흐름 속에 읽히는 것들을 재료 삼아 조직의 리더로서 무엇을 지키고, 어떻게 새로워져야 하는지, 사람 사이의 포용과 반목이 어떻게 다른 결말에 이르는지 생각해 보는 것. 편 가르기가 심화되고 있는 사회에서 이성과 합리, 공감을 바탕으로 숙고할 수 있는 자유롭고 건강한 시민으로서 기여할 방법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것이 이 배움의 효용이다. 나로부터 우리로 나아가게 하는 시작이며, “천하흥망 필부유책 天下興亡 匹夫有責” 5) 누구를 탓할 수 없음을 아는 것, 바로 선 내가 모여 바로 선 우리가 되고, 행복한 내가 모여 행복한 우리가 되기를 희망하는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질문을 멈추지 않는 것’

“좋은 삶이란 무엇에서 성공적이고자 하는지 현명하게 선택하는 것이다.”6) 유한한 존재로서 한계를 받아들이고, 발 딛고 서 있는 삶의 구석에서 질문을 떠올리고 답을 구하고 그 답을 실천하는 것, 어려움을 피하지 않고 난관 속에서도 묻고 답하며 애써 고군분투하는 것, 나다움이 무언지 찾지만 우리와 함께 하는 방법에도 나답기를 택하는 것. 이런 것들에 성공했으면 하는 소망을 품어 본다. 이런 소원들을 하나, 둘 이루고, 처마 끝 풍경 소리 멀어지 듯 마지막 문이 닫히길 희망한다. 그저 흐르는 시간을 멈춰 세울 수 없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가운데 가장 어려운 것은 멈추지 않는 것, 하루하루 새로워지는 것이다.

마음이 하는 거짓말만 있겠는가. 인터넷과 SNS에 떠 도는 진실이라 하는 말들, 각종 매체들이 끊임없이 쏟아 내는 서로 다른 주장들, Text를 읽고 저마다 진리라 해석하는 각각의 오류들. 시간의 무게만큼 쌓인 오래된 사유들. 인문학이란 이러한 무수한 말과 주장, 해석, 사유의 강과 바다에서 나의 해석과 통찰을 낚아 올리는 낚싯대다. 이렇게 낚은 것들을 바탕으로 한 매일의 선택들이 모여 삶이 된다. 진리란 고정불변으로 주어지는 것이 아닌 내가 주체적으로 소화해 내놓는 것임을 아는 것이 인문학 공부의 처음이다. 사실, 마음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마음이 하는 거짓말이란 아직 답을 하지 못한 질문, 나의 지혜를 묻는 유예된 질문이다. 끊임없이 묻고 답을 구해 현명하게 선택하기 위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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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침에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좋다.』김영민

2) 『웃으며 죽음을 이야기하는 방법』줄리언 반스

3) 『브랜드 인문학』김동훈

4) 루보미르스키

5) 고염무

6) 알랭 드 보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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