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에 들에
주부 역할이라곤 영 시원찮은 내가 거기까지 부러 장을 보러 간 건 아니었다. 토요일 아침, 다른 볼 일을 보러 가는 길에 금남시장을 지나게 된 것. 늘 가까운 마트나 슈퍼에서 먹을거리를 사다 보니, 밝은 아침 봄볕에 내어 놓은 생선이며 청과물의 눈이 아리도록 선명한 색이 마냥 신기해 놀러 나온 아이처럼 노점마다 요리조리 기웃거렸다. 그러는 모양을 언제부터 보고 계셨던지 나물 가게 아주머니
“뭘 보기만 하면 어떡혀.. 좀 사야지”
고만고만하지만 특히 나물 조리는 전병인 나는 속으로 중얼중얼.
달래, 냉이, 쑥, 취, 미나리… 쑥, 달래, 냉이…. 된장찌개… 냉이…
”냉이 얼마예요?”
“한 봉지에 오천 원~”
“네~ 그렇게 주세요”
까만 봉지 터지게 가득 담아주시는 데 저걸 언제 다 먹나 싶어 좀 덜 주시라 청하니 덜어내고 삼천 원어치 담아 건네신다.
봄나물들 쭉 일별 후 덜렁덜렁 까만 봉지 하나를 들고 주차장까지 짧은 길을 돌아와 세워 둔 차에 올랐는데. 손가락, 발가락이 조금씩 간질거리더니 금세 그 느낌이 벅차게 가슴께로 올라와 쿵쾅거린다. 향기라고 해야 마땅할 냄새. 촉촉하고 폭신한 흙냄새, 바삭거리는 햇빛 냄새, 보슬 거리는 비 냄새, 이슬 먹은 풀 냄새… 봄을 다 섞어 조물조물 무친 냄새. 쿵쾅거리는 심장 깊숙한 곳에서 설핏한 기억을 건져 올린 것은 냉이 냄새였다.
소읍이었다. 작은 도시에 살다 더 작은 소읍으로 이사를 가게 된 건 분명 쇠락이었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나는 그 쇠락이 내게 미치는 영향을 최소화하는 방법을 영악하게도 모르지 않았고 도시에서 누리지 못하는 많은 것들을 누릴 수 있는 것으로 보상받고자 했다.
이제 막 국민학교 삼 학년이 된 아이 혼자 걷기엔 좀 멀다 싶은 거리였지만 아담한 마을 길, 더욱 선한 숲길, 구불구불 논두렁으로 이어지는 등교 길은 지루해할 틈도 없이 봄, 여름, 가을, 겨울 매일같이 신비로운 냄새, 색깔, 모양과 소리를 열 살 즈음의 내게 제공해 주었다.
넓디넓은 학교 운동장에선 가을이면 큰 운동회가 열려 큰북, 작은북 뒤를 따라 나는 멜로디온을 불며 행진했고, 연중행사로 있던 군내 합창대회가 열리는 때면 온 학교가 종달새처럼 지저귀는 아이들 소리로 한참 소란했다. 학교 온실의 화초들은 가슴 설레게 향기롭고 밭두렁이나 들녘에서 캐와 아무렇게나 심어도 집 옆 마당의 채송화, 맨드라미, 들국화는 저절로 화사했다.
학교 생활을 포함하여 일상은 평화롭고 조용하고 안전했다.
고요히 흐르는 강물 같던 시간 속에서도 열 살은 어쩔 수 없는 열 살, 결핍은 온전히 결핍이라 때때로 주체할 수 없는 슬픔이나 안타까움이 몰려올 때면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던 집 앞마당 가장자리 턱에 걸쳐 앉아지는 노을을 하염없이 바라보거나. 이른 저녁을 먹고 해가 져 어둑해진 뒷마당에 나가 ‘해당화가 곱게 핀 바닷가에서 나 혼자 걷노라면 수평선 멀리~~’ ‘모래성이 차례로 허물어지면 아이들도 하나 둘 집으로 가고~~’ ‘올해도 과꽃이 피었습니다. 꽃밭 가득 예쁘게 피었습니다~~’ ‘ 낮에 나온 반달은 하얀 반달은 해님이 쓰다 버린 쪽박인가요~~’ 같은 구슬픈 노래를 부르며 마음의 구름이 걷힐 때까지 시간을 버리곤 했다.
이러 저런 그즈음의 기억들 가운데 칼라 사진처럼 선명하게 남아 있는 하나는 나물을 캐러 다니던 기억이다. 봄비가 그치면, 아직 그 비릿한 냄새가 가시기 전 소쿠리 하나를 옆구리에 끼고 마을 동산에 동무들과 나물을 캐러 가곤 했다. 아직 어린 연두 빛 풀잎, 영롱하게 맺힌 물방울, 훅훅 숨을 몰아 쉬는 흙, 물 빛 공기, 쑥 냉이 냄새. 그것들 사이를 몇 시간이고 쏘다니다 보면 나도 어느새 온통 풀잎 연두로 영롱한 물 빛으로 물들어서 코 끝에는 쑥, 냉이 냄새를 달고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런 날 밤에는 누군가 진심으로 나를 위로해 준 듯 기쁨으로 벅차 가슴께가 뻑적지근해지는 걸 느끼며 설움 없이 잠이 드는 것이다.
열두 살 되는 해 나는 그 소읍을 떠나 대처로 나왔다. 아스팔트로 이어진 큰길을 따라 자동차 경적소리를 들으며 방석만 한 운동장 한편에 한 동의 교사만 덩그런 학교를 며칠 다니던 나는 그곳엘 한번 다녀오고 싶었다. 하지만 상황 파악에 빤했던 아이는 다시 돌아갈 수 없다는 것도 알았다. 이듬해인지 그다음 해인지 좀 스산한 가을날. 그 소읍의 집들과 마을 길, 등교 길, 학교를 다시 찾아보았다. 내 결핍의 순간을 견디게 해 준 곳. 내게 무한한 위로를 말없이 건네주던 산과 들과 하늘. 그곳에 오래 머물 순 없었다.
서울 같은 도시에서의 삶은 때로 참을 수 없이 무자비하다. 결핍의 시간들을 견디는 사람에게 더욱이 도시는 얼음송곳처럼 차갑고 뾰족하다. 화려한 불빛으로 휘황한 도시 한복판이 아니어도 삶의 구석진 어디서든 내가 받았던 참 위로는 온기가 필요할 때 언제든 꺼내 덮을 수 있는 보드라운 봄 이불이 된다.
봄이 다시 올 때마다 냉이 냄새를 코 끝에 달면 연두 빛, 물 빛으로 온몸이 물들던 때로 돌아가 볼 수 있으니 가진 것 없는 나로서는 참 다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