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가 산다

by 하루


우리 집엔 개미가 산다. 아주 작고 작은. 언제부터 동거를 시작했는지 정확한 기억은 없다. 아마 옆집 또는, 건넛집에 정 붙이고 살던 것들이 세스코 같은 날벼락을 맞아 궁여지책 피난 왔던 어느 날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 몇 마리 조심스레 운신하며 상황과 눈치를 살피던 것들이 언제부터인가 자신들 난민 개미의 처지를 망각하고 게으른 집주인의 배려(?), 무관심 또는 이타심(ㅋㅋ?)에 힘입어 실로 아침저녁 안 뵈는 시간 없이 맘 놓고 버젓이 지내게 된 요즈음. 이런 개미들의 빈번한 출현 이후 내 정신세계에 작은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결코 바람직한 방향이 아닌 것이 문제다. 좁은 균열 사이로 스멀스멀 내면의 온갖 부정적 감정이 발현되는 현장을 목격하게 된 것. 예를 들면 이렇다.

식탁 위에 먹다 둔 빵 봉지에 필사적으로 새까맣게 몰려드는 생의 집착에 대한 환멸.

첫새벽 눈을 떠 첫 대면하는 하얀 세면대. 그 위를 태평이 기어가는 맥없는 무지함에 대한 분노.

싱크대 가장자리를 나란히 사이도 좋게 줄지어 가는 것들을 수장시키며 느끼는 잔인한 쾌감.

자기 몸피만 한 과자 부스러기를 져 힘겨운 움직임을 물끄러미 보다 결국 꾹 눌러버리는 무심한 폭력성.

전 우주의 유기체를 향한 무한 애정으로 이런 부정적 감정을 극복하기엔 내 신경 줄이 한번 뚫린 거미줄처럼 가늘고 부실하다. 개미들을 꿈속에 출현시키기 전에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난 아직 멀었다. 인간을 껴안기에도 좁은 가슴. 개미들을 껴안고 살기엔 역부족이다.

이 와중에 진실로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부정적 감정의 발현이 꼭 개미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건 아닐 거라는 두려움이다. 필사적인 생의 집착이 왜 환멸스러우며,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함에 왜 또 화가 나고, 내가 가진 작은 권력으로 무시될 수 있는 존재로 인한 쾌감은 무엇이며, 일상적으로 가해지는 폭력은 또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운지. 이런 감정들이 내 일상 속에서 문득문득 인간을 향하고 있을 테니 그런 확장이 무섭고 두려운 거다.

그래서… 이런 감정의 재생산 확대 방지를 위해(말하자면 내 한 몸 편하자고) 개미들을 또 어딘가로 내 몰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변을 마련하는 중이다. 세스코를 불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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