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더맨:노 웨이 홈과 그라운드호그 데이(피터 파커와 필 코너스)
몇 해 전 스파이더맨:홈커밍이 개봉됐을 때 남편과 나는 극장에 같이 가서는 각자 원하는 영화를 보고 나와 다시 만나기로 했다. 남편은 스파이더맨:홈커밍 나는 마리아 칼라스:세기의 디바. 각자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 동행한 사람의 취향을 떠올리며 괜히 보자 했나 같은 생각 따위는 접고 온전히 영화에 집중할 수 있는 혼영의 즐거움이 있었다. 손 치더라도. 2021 연말 마땅히 훈훈한 이벤트도 없는 코로나 시국, 영화관까지 간 마당에 따로 혼자 영화를 보러 들어가기 왠지 쓸쓸해. “재밌다더라”는 카더라 통신을 반신반의하며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를 관람하러 손 꼭 잡고 들어 갔다.
다행히 이번엔 졸지 않고 다 봤다.(신기하게 그 시끄러운 할리우드 액션에도 나는 종종 졸리다.) “큰 힘에는 큰 책임이 따른다”는 한 줄 교훈을 얻기 위해 시공간을 넘어온 스파이더맨들이 똑 같이 시공간을 넘어온 엄청난 악당들을 물리치는 클리쉐들을, 그 싸움들로 부서지는 건물들, 차들, 사람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말도 안 되는 초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초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두 시간을 무사히 빠져나온 거다. “쿠키 영상이 있으니 보고 가세요” 극장 알바가 외친다.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서둘러 떠나려던 몸을 다시 좌석에 붙이고 다시 앉는다. 클로징 크레디트가 올라가기 시작한다. 천명은 족히 넘는 사람들 이름이 올라간다. 한 줄짜리 교훈을 담아내려고 너무 많이 간 거 아닌가. 이 큰돈으로(큰돈은 큰 힘이다.) 한 줄짜리 너무 뻔한 교훈을 주는 영화를 만드는 것이 더 큰 책임을 지는 걸까. 그럴 수도 있겠다. 수 천명에게 급료를 지급할 테니. 그래도 다른 수많은 책임도 질 수 있을 텐데. 교육이 절실한 아이들에게 학교를 지어 줄 수도, 더러운 물로 병에 걸리는 사람들에게 깨끗한 물을 공급할 수도를 설치해 줄 수도.. 뭐 이런 생각을 하려는 찰나. 쿠키 영상이 짠 하고 나타난다. 이번엔 피터 파커가 아닌 닥터 스트레인지가 주인공인 다음 영화의 홍보 영상. 당했다. 멈춘 사이 생각이 뭉텅 잘려 나간다. 큰돈을 들여 또 수 천명이 비슷한 영화를 만들겠구나. 그 속에서 큰 힘을 가진 영웅들은 알고 보면 몹시 부실한 악당들을 계속 무찌르며 세상을 구하겠구나. 구원을 행하는 영웅과 그 영웅에게 구원당하는 사람들로 나뉘는 이분법적 사고 속에 갇힌 변하지 않는 이야기를 끊임없이 만들어 내고 그 게 또 팔리는 게 신기하다 하면서도 나도 지금 여기 보러 와 있는 게 아닌가. 대단한 상술이다. 아님 내가 멍청한 건지도. 거대한 자본들은 초현실적인 이야기를 만드는데 수천억을 들이는 대신 더 현실적으로 큰 책임을 지는 방법을 모색해 주길 바라는 건 너무 순진한 생각인가. 갑자기 스파이더맨이 나를 우울하게 만든다.
연말 왠지 축 쳐지는 기분을 달래 줄 영화를 집 TV로 골라 보기로 했다. 93년 개봉작이니 30년이 다 된 영화. 그라운드호그 데이. 직역하면 성촉절. 여기에도 영웅이 등장한다. 필 코너스. 매일 똑같은 날이 계속되는 걸 참다못해 결국 매일의 영웅이 되기로 결심한 남자. 거대한 담론이나 교훈이 그를 그렇게 만든 건 아니다. 똑같은 날이 계속되는 걸 무슨 수로도 끝낼 수 없는데 그 와중에 자기의 선택에 따라 매일이 조금씩은 달라질 수 있다는 걸 깨닫고 조금이라도 다른 날을 살아보고자 하게 된 어쩌면 궁여지책. 그 영웅이 세상을 구하는 방식은 너무도 사소해 실소가 나올 지경이다. 그런 영웅이라면 지극히 평범한 우리도 영웅이 되겠다 나서볼 만하다.
달려오는 기차를 멈춰 세우고 우주에서 넘어오는 악당들을 물리쳐야 하는 일이 얼마나 있겠는가. 뛰어가다 그만 넘어진 아이, 사레들려 기침이 멈추지 않는 노인, 식비가 없어 점심을 거르는 소년, 불 없이 차가운 집에 혼자 있어야 하는 소녀, 우리 영웅들은 이런 사람들 곁에 있었음 한다. 가면 같은 건 필요 없는 평범한 매일매일의 너와 나의 얼굴을 하고 서로가 서로를 구하는 영웅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