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심한 회의주의자의 의심
매년 하는 정기 건강검진을 위해 너무 헐렁해 곧 흘러내릴 것 같은 환자복 같은 걸 입고 초음파, CT, X-Ray 등의 검사를 위해 만들어진 방들 앞 왠지 침울하게 앉아 있는 사람들 틈에 나도 조용히 앉아 기다린다. 각자의 이름이 호명될 때마다 주인에게 불린 강아지 마냥 반사적으로 일어나 손목에 두른 이름표를 보여주고 그 방들로 하나 둘 들어갔다 나온다. 팔에 꽂힌 바늘로 연결된 튜브를 통해 피를 뽑거나 조영제나 마취제가 들어오고 차가운 기계들이 몸에 닿을 때마다 마치 생체실험실에 들어온 기분이 드는 건 나의 과대망상이리라.(꼭 그렇지만은 아닌 것이 내 데이터를 건강 관련 무슨 연구에 쓰는 것에 동의해 달라는 동의서도 받는다. 내 데이터를 내 돈 내고 내 피를 뽑아 제공하는 꼴인데 데이터 제공에 동의하지 않으면 마치 인류애가 부족한 인간이라도 되는 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동의서다.)
병원의 건강검진 센터 복도에 놓여 있는 의자에 앉아 문득 언젠가 신문 기사에서 본 김인숙 작가의 사진 작품 ‘토요일 밤’을 떠올린다. 멀리서 지나친 듯 언뜻 보면 별 다를 것 없는 호텔 방들인데 방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기괴한 장면이(현실 속에서 실제 일어났던 일들이) 펼쳐지고 있는 독일의 한 호텔 외관을 연출된 사진으로 합성해 만든 작품이다. 김인숙 작가는 호텔 입면을 만들어 보여 줬지만 복도에 버려진 듯 하릴없이 기다리며 앉아 있자니 난 건강검진 센터의 방들과 복도를 단면으로 (튜브로 들어가거나 나오는 액체가 보일 정도로) 정교하게 만들어 사람들에게 보여 주고 싶어 졌다.(직업병인가..) 각 각의 방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을 위에서 부감으로, 마치 신이 된 것처럼, 전지적 시점으로 한꺼번에 볼 수 있게. 그리고 그 걸 보는 사람들에게 작품의 제목을 붙여 달라 하고 싶다. 상상력이 부족한 나는 타인들이 붙일 제목이 궁금하다.
검진 다음 날 코로나 백신 3차 접종이 있어 또 다른 동네 병원을 찾았다. 건강검진 후 조영제 부작용인지 붉게 붓고 가렵다 했더니 의사는 증상을 살핀 후 백신 접종을 미루고 일주일 분량의 알레르기 약을 처방해 준다. 이거야 말로 병 주고 약 주고. 일주일 후 다시 백신 접종을 하러 가야겠지. 백신 부작용도 걱정. 이것도 병 주고 약 주고. 어떤 게 더 나쁜 건지 도통 알 수가 없어 내년 건강검진 때는 조영제가 필요한 CT는 찍지 말아야겠다 생각한다. 그러다 더 나아가 너무 오래 살아 그 게 걱정인 세상인데 매년 보험 들 듯 일 년 동안의 안심을 사기 위해 습관적으로 하고 있는 건강검진이 정말 내 삶의 질을 높이는 건지 곰곰이 따져 본 적이 없다는 데 생각이 미친다. 병원에서 권하는 모든 검사들의 필요도 생각해 볼 일이다. 순작용과 부작용의 교환 가치를 깐깐히 스스로 저울질해 볼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울질조차 하기 어려운 게 있다는 건 함정. 부작용과 사회적 단절의 교환 가치는 등가인가. 교환해야 하는, 교환이 가능한 가치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