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개천 가장자리를 따라 이어진 밭 둑에 일곱 그루 매실나무가 서 있다. “내 고장 6월은 매실 알이 익어가는 시절~~” 딱히 내 고장이라 하기에 근거 희박한 곳이지만 어쨌든 부모님 댁이 10여 년 넘도록 자리하고 있으니 그냥 내 고장이라 하자.
지난 6월, 나무를 심고 십여 년 만에 처음 초여름 담뿍 담은 연녹색 매실을 내 손으로 한 알 두 알 거두게 되었다. 아마도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올해도 그 일은 온전히 두 분 부모님 몫이었겠지만 혼자되신 아빠가 적적히 거두시기에 예년보다 유난히 많이 달린 열매가 안쓰럽다. 동생과 다니러 간 날 초여름 벌써 따가워진 아침 볕에 밤새 맺힌 이슬이 마르기 전 내 가슴팍만 한 소쿠리 한 개를 꿰차고 매실 따기를 시작했다. 집 아래 밭. 일곱 그루 하나 같이 천변에 아슬아슬 서 있는데 그중 한 놈이 지난 비바람에 몹시 힘들었는지 땅에 몸을 대고 아예 누웠다. 뿌리의 대부분을 하늘로 치켜들고 근근 연명하고 있는 처지에도 늙은 어미 젖가슴 같이 열매를 치렁치렁 달고 있는 모양이 신기하다 못해 찡하다. 마지막 수액을 다해 내보내는 초록 알 들일 것이다.
동생과 나는 거둔 매실을 알뜰히 챙겨 빨간 그물 망태기에 담아 왔다. 매실 반 설탕 반 큰 유리병에 재워 두고 백일을 보낸 여름 끝. 갈바람 같이 말갛게 우러난 매실 액을 작은 유리병에 옮겨 담아 양념으로 쓰고 따뜻하게 시원하게 차로 내어 마신다.
군에서 천변을 정리하려 매실나무들을 베어 낼지 모르겠다고 얼마 전 아빠는 수화기 너머 멀리 있는 딸에게 지나듯 말씀하신다. 마지막 힘으로 키워낸 매실을 알알이 하루하루 먹다 보면 나도 초록 나무가 될 건가. 다 드러낸 앙상한 뿌리 아랑곳없이 초여름 새벽이슬처럼 찬란한 연 초록 구슬들 주렁주렁 매어 다는 주책없는 나무 한 그루 될 수 있을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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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힌 날을 보니 위 글을 3년 전 초가을에 썼다. 3년이 지난 올여름 아직 군에서 천변의 나무들을 베어내지 않았지만 그동안 스스로 나이 먹은 나무들은 이제 두 알이나 세 알 겨우 달고 서거나 누워 세월이 가는 모양을 지켜본다. 올해 아빠는 집 마당에 새 매실나무를 세 그루 더 심으셨다. 토종 매실 수는 7년은 지나야 제대로 된 열매를 내어 놓는데 새로 심은 개량종은 2, 3년이면 쓸만한 열매를 보여 줄거라 기다려보자 그러시며. 엄마 생전에 담가놓으신 매실 청을 아직 드시는데 그 맛을 내려해도 도무지 새로 담근 것에서는 그 맛을 찾을 수가 없다며 비법을 가지고 그냥 갔네 하신다. 새 나무에 달릴 초록 알들을 궁금해하면서 길 건너 늙은 나무들이 앞마당 새 나무들에게 토실토실 초록 알 빚는 비법을 전해 주려나 그런 실없는 생각을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새 나무들은 내 후년, 그 후년쯤엔 초록 구슬들을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어 달겠지. 고 것들 참 예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