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봄이면 풍선처럼 부풀어 바람에 실려 온 인파로 넘실대는 남쪽 진해도 아니고, 벗하며 서 있는 나무들 옹기종기 한가로운 친정 시골집 안뜰도 아니고, 연인들 손에 손잡고 헤픈 웃음 흘리며 밤마실 나오는 여의도 윤중로도 아니다.
어딜 봐도 사방이 온통 자동차뿐인 서울의 오래된 아파트. 주차장 가장자리. 야트막이 콘크리트로 쌓아 올린 옹색한 화단. 언제부터 거기 서 있었는지 기억 없게 무심히 있다, 어느 봄날 불현듯 수천 개 꽃잎을 달아 맥없이 내 정신 줄을 놓게 하는 벚.나.무.
봄 끝, 그 꽃잎들이 바람에 와~~ 하고 흩어질 때면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떨어지는 연분홍 꽃잎들이 하릴없이 자동차 바퀴 밑에 깔릴 일이 아니다. 은빛 강물 위를 따라 같이 흐를 일, 연둣빛 가득한 봄숲 속을 유유히 떠돌 일, 봄볕 간지러운 마당 구석 졸고 있는 고양이 콧등에나 앉을 일이다.
꽃비 속 벚나무를 올려다보다 슬퍼진다. '올해가 마지막이겠구나.' 여기서 20여 년 벗해온 나무들을 보는 건. 올 겨울 재개발을 앞두고 있는 아파트 정원의 오래된 나무들을 볼 때마다 심장인지 혈관인지 위장인지 모르겠는 몸 안쪽이 아릿해 온다. 오래되고 다듬는 이 없어 자유롭게 흐드러진 아름드리나무들이 다 사라지고 난 자리엔 말쑥한 새 단지가 들어서리라.
인간들이야 그러거나 말거나 올 해도 어김없이 멀건 가깝건 꽃구경 갈 처지가 못 됨을 불평하지 말라고 아침, 저녁 일별하며 내게 위로를 건네. 조악하고 몰이해한 주차장 가장자리 아랑곳없이, 작고 예쁜 꽃들을 달고 찾아와 준 것이 감사해. 그리고 미안해.
봄밤, 꽃 그림자 안주 삼아 한잔 기울이며 오래된 벗에게 안녕을 고한다. 이다지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음이 면목 없어 목련꽃 그늘 아래서, 벚꽃 비를 맞고서, 라일락 향기를 맡으며 오래오래 정원을 서성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