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둑맞은 집중력"
또 잃어버렸다. 얼마 전 운동을 마치고 탈의하는 라커장에 깜박 점퍼를 두고 온 걸 집에 와서야 알았는데 두고 온 곳에 전화를 해 물었으나 습득된 분실물이 없다는 무정한 답이 돌아왔다. 해외 출장길에 이번엔 시계를 두고 왔는데 다행히 찾긴 했으나 찾는 과정에 현지 동료를 번거롭게 했다.
재밌겠다 싶어 주문한 책을 읽다가 어디서 본 듯한 기시감에 책장을 뒤져 보면 몇 해 전 읽었던 책이 밑줄 그어진 채로 얌전이 꽂혀 있거나, 다 읽고 나서 같은 책을 아버지 집 책장에서 발견하곤 하기도 한다.
오랜만에 책상에 앉아 긴 생각이라도 할라치면 갑자기 책상 위 먼지가 신경이 쓰여 앉자마자 다시 일어나 책상을 닦고 있거나, 오늘의 환율 같은 게 왜 뜬금없이 궁금한 지 휴대폰 화면을 켜 환율을 조회하고 있는 나를 본다. 사람을 만나 대화를 하다 가다도 조금만 지루한 얘기가 나오면 내 머릿속은 혼자 삼천포다. 늘어놓자면 끝없이 이어지는 이런 한심한 증상의 자체 진단은 집중력 저하다. 최근 들어 더 심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그랬는지 '도둑맞은 집중력'이라는 책을 사 읽었다.
점점 더 빈번히 물건을 잃어버리고 알던 사람의 이름을 잊고 하려던 생각의 처음과 끝이 닿지 않아 난처하고 가끔 이미 읽었던 것도 잊고 읽었던 책을 다시 사는 요즈음. 갈수록 심각해지는 기억력과 집중력 감퇴가 너무 빠른 속도, 너무 잦은 멀티 태스킹, 몰입의 손상, 부족한 잠, 긴 텍스트를 읽는 능력의 저하, 딴생각하는 것에 대한 죄책감, 형편없는 식사, 놀이의 실종 등에 있으며 이는 많은 부분 개인의 실패라기보다 빅테크 기업들의 이익을 위한 정교하고 집요한 공격과 놀이를 빼앗는 교육, 너무 긴 근로 시간, 쓰레기 음식, 만성적 불안을 야기하는 사회 시스템의 위협 때문이라고 말하는 책(도둑맞은 집중력-요한 하리)을 읽으며 "집중력 위기의 시대, 삶이 주도권을 되찾는 법"에 대해 공감하고 고개를 주억거린다. 맞다. 나이 들어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만 진단하기에 석연치 않은 나의 급격하고도 치명적인 집중력 감퇴를 조금이라도 늦출 수 있는 개선책을 적극적으로 찾고 실천해야겠다는 다급한 생각에 책장을 넘기며 몇 가지 메모를 했다. 빅테크들의 시스템과의 거대한 전쟁이 아니더라도 개인적인 차원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삶의 주도권을 찾을 수 있는 방법들을.
1. 소설을 읽자.
"소설의 수난시대" 소설 같은 긴 텍스트를 읽는 능력의 상실은 우리 시대의 공감 능력의 상실을 야기했다 는 주장에 공감한다. "타인의 내면에 대한 복잡한 이야기에 오랜 시간 노출되면 이 이야기가 우리의 의식 패턴을 다시 형성한다. 우리는 더욱 통찰력 있고 개방적이고 공감을 잘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실천해 보자고.
제인 오스틴의 오만과 편견을 읽었다. 제인 오스틴 책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졌다.
2. 딴생각을 하자.
"딴생각을 하면 죄책감을 느꼈다. 그러나 그것은 틀린 생각이었다. 실제로 딴생각은 다른 형태이자 반드시 필요한 형태의 집중이다." 종종 샤워를 하거나 침대에서 뒹굴거리거나 별생각 없이 산책을 할 때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방향으로 생각이 솟아오르거나 신기하게 연결되지 않았던 것들이 연결되거나 한 적이 있다. 우리가 삶을 온전히 음미하고 이해하려면 정신이 자유롭게 방황하며 돌아다닐 공간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것. 그래 자주 그냥 몸에 힘을 빼고 죄책감 따위는 없이 딴생각을 해보자.
3. 현재에 충실하자.
"우리의 초점은 잠재적 위험의 단서에 맞춰져 있어요. 현재 일어나는 일을 느끼거나, 배워야 할 수업을 듣거나, 해야 할 일을 하는 데 집중하는 게 아니라요, 집중을 안 하는 게 아닙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에서 위험의 단서나 증거를 찾는 데 집중하고 있는 거죠. 초점이 거기에 가 있는 거예요." 이것은 생존을 위한 방어 기제의 작동일 것이다. 수많은 채널들을 통해 쉴 새 없이 쏟아지는 과잉 정보들은 위험을 과도하게 긴급하게 인식하게 하고 이로 인해 우리 뇌는 만성적인 각성 상태로 스트레스에 취약해지고 있다고. 언제 직장을 잃을지, 너무 오래 살게 된 노년이 얼마나 끔찍할지,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전쟁들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 이 실존을 위협하는 불안하고도 긴급 상황에 무슨 대비라도 해야 하는 건 아닌가 하는 막연하고도 상존하는 거대한 불안감은 한시도 뇌를 쉬도록 놓아주지 않는다. 하지만 차가워진 머리로 다시 생각해 보면 미래의 위험을 걱정하느라 현재를 놓치는 건 밑지는 장사다. 오래 살 걱정만 하다 내일 천국에 있을지 누가 알겠는가. 미래의 걱정을 당겨다 지금 써버릴 필요가 없다. 오늘을 충실히 살기에도 만만치 않은 게 삶이다. 미래를 미리 살아 늙어질 필요가 있을까. 미래에 서 있는 내가 오래전 나를 보며 너무 걱정하지 말라고, 일어날지 말지 모르는 앞날의 일로 애면글면 하기엔 아꼬운 시간이 너무 빨리 간다고 얘기해 주는 상상을 하곤 한다.
책을 읽고 난 후 내 생활에 작은 변화라도 생긴다면 좋은 독서. 부디 작심삼일은 넘어 다짐과 실천이 이어지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