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이웃

김애란 작가의 소설을 읽고

by 하루

요즈음 나는 내가 맘에 들지 않는다. 그럼 언제는 맘에 들었나? 글쎄, 엄청 만족스러웠다 할 수 없지만 그런대로 봐주고 참아 줄만 한 정도. 그러다 며칠 전 김애란 작가의 새 소설집 "안녕이라 그랬어"을 읽게 되었다. 그중 "좋은 이웃"이란 제목의 단편을 읽다가 문득 내가 지금 왜 스스로를 맘에 들어하지 않는지 알게 되었다. 아니, 솔직해지자면 지금 알게 되었다는 건 거짓말이다. 알고 있었지만 짐짓 모른 척하다 소설 속 문장들이 재현하고 있는 인물이 너무도 선명하게 나여서 더 이상 모른척하기 어려워졌달까.


한 달 전쯤 아파트 지하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집에 올라가는 길 아파트 공동 출입문 옆에 달린 키패드에 동, 호수, 비번을 누르려 하고 있는데 삼십 대 중반 정도로 보이는 남녀 커플이 얘기를 하며 오다 문 앞 내 옆에 섰다. 내가 비밀번호를 누르고 문이 열렸다는 음성 메시지가 들리자마자 커플 중 남자가 기다렸다는 듯 문을 열고 같이 서 있던 여자와 함께 엘리베이터 홀로 먼저 쏙 들어가는 거다. 나는 얼떨결에 그들에게 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고 문이 다시 닫힐세라 급히 문을 잡고 어정쩡히 엘리베이터 홀에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동안 예의 상 문이 열리도록 해 준 내게 가벼운 목례라도 할 법한데 끊어졌던 자기들 대화를 하느라 다른 건 아랑곳하지 않는 태도에 '요즘 것들은 참 기본적인 예의도 없네' 하는 꼰대 같은 속말을 했다. 엘리베이터 안 둘의 대화로 미루어 짐작하건대 얼마 전 이사를 온 모양이었다.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방금 그 커플 흉을 보며 젊은 사람들이 예의는 없는데 돈은 많은가 보다 우린 오십도 넘어 전세도 아니고 반전세로 들어와 있는 아파트에 턱 하니 살러 들어온 걸 보니 부모를 잘 만났나, 가상화폐로 돈을 왕창 벌었나. 베베 꼬인 말들에 남편은 그저 '이 사람이 오늘 또 왜 이러지' 하는 표정이다.


이렇게 심보가 꼬일 대로 꼬인 지 사오 년은 된 것 같은 데 꼬인 심사는 풀릴 기미가 안 보인다. 아니면 더 오래전부터 꼬여 있었던 건지도 모른다. 20여 년 전 들어와 세 들어 살던 아파트가 오래 미루던 재개발을 하면서 살던 단지를 떠나야 했을 때, 세 들어 살던 아파트는 재개발 몇 년 전부터 "어어" 하는 사이 언감생심 하는 가격으로 올라버렸다. 20년 전 같은 시기 다른 동네에 샀던 작은 주상복합은 오르지 않고 있는 것이 내 속을 더 긁었다. 그동안 냈던 월세로 이자를 내고 대출이라도 받아 갈아 타 이 아파트를 샀어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낙담과 열패감이 번갈아 찾아오는 사이 집 값은 이미 저 높은 곳에서 내려올 줄 모르고 내 형편을 떠나 버린 후였다.


내 심사가 틀어진 것이 이 집값 폭등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수시로 후회와 자책이 밀려온다. '뭐 하러 그림 쪼가리 같은 걸 여러 개나 사 집 벽마다 걸었을까? 그 돈으로 가상화폐나 주식을 살 걸' '도대체 20년 동안 낸 월세가 얼마? 왜 살던 곳 집값이 이렇게 오르는 동안 사려는 생각도 안 해보고 태평스럽게 돈을 내고 살았을까?' '부동산 공부 좀 하고 그럴 것을 바보같이 소설이나 인문학 책을 붙들고 있었을까'


거실에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수많은 아파트의 켜진 불빛을 바라보며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동시대인과 어떤 가치와 속도를 공유한다 믿은, 그런데 그게 틀렸다는 걸 막 깨달은" "어쩌면 잘못은 정말 우리에게 있는 게 아닐까?"의심하고 있는 내가 우두커니 서 있다.


주변부로 밀려나기 시작했으며 한 번 시작된 후퇴를 돌이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낭패감은 쓰나미처럼 모든 걸 삼키고 황폐하게 만든다. 그림을 걸어 두고 보며 느꼈던 매일의 기쁨, 대출 없이 살며 얻은 마음의 평안과 여유, 좋은 책과 더불어 보낸 시간의 충만함, 이런 가치들을 가차 없이 평가 절하하고 뭉개서 그 형체를 알아보기 어렵게 만든다. 이런 삶의 향기와 가치들을 구기고 뭉쳐서 돈으로 치환하고 그 돈을 바라보며 맹목적으로 달려가게 한다. 운이 좋아 기회를 잡은 사람들이 느끼는 우월감과 안도감, 그것이 내 것일 수도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는 열등한 마음엔 주변을 살피는 배려나 친절, 너그러움이 끼어들 틈이 없다. 그래서는 "좋은 이웃"이 될 리가 없다. 더불어 사는 삶이 어땠으면 좋겠다 깊이 있게 숙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나와 그런 나를 보는 것이 불편하면서도 쉽게 그 상실감과 자괴감을 떨쳐 버리지 못하는 또 다른 나. 자아가 하나의 통일성을 갖지 못하고 분열한다.


내가 느끼는 분열과 상실감의 원인을 김애란작가는 사회과학을 하는 학자처럼 적확하게 묘사한다. "우리가 집을 잃어서도, 이웃을 잃어서도 아니었다. 우리가 정말 상실한 건 결국 좋은 이웃이 될 수도 있고, 또 될지 몰랐던 우리 자신이었다는 뼈아픈 자각 때문이었다."


자각 이후의 삶은 좀 달라질까. 창밖의 아파트 불빛들을 바라보며 거실에 오래도록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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