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정하게 느긋하게
그래봐야 3~4분 빨리 갈 뿐이다. 출, 퇴근길 막히는 차선을 피해 조금이라도 덜 막히는 쪽으로 요리조리 깜빡이를 켜고 계속 차선을 바꾸며 신경을 곤두세워 간다 해도 말이다. 그럼에도 운전대를 잡고 차 문을 닫는 순간 마치 카트라이더의 캐릭터 마냥 누군가 보이지 않는 상대와 게임을 하듯 운전을 한다. '어제 40분, 오늘은 35분 내로 가 봐야지' '이번 신호는 꼭 한 번에 통과해야 하는데' '앞 차는 이 바쁜 시간 간격을 저리 벌리며 느릿느릿 가고 있네' '이 길은 왜 이리 막혀 골목길은 덜 막히려나' 운전하는 내내 여유로운 마음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어진 지 꽤 되었다. 아니, 운전대를 잡으면 더 심해지기는 해도 일상생활에서도 조급증을 드러내는 일이 빈번해졌다. '저 테이블 우리보다 나중에 주문했는데 음식은 먼저 나왔네' '도대체 주문한 커피는 언제 나와' '이 친구 약속 시간에 15분이나 늦다니 짜증이 나' 하고 생각하는 순간 화가 밀려오며 곧이어 나온 음식 맛도 떨어지고 오랜만에 만난 친구도 반갑지 않아 지니. 나로서는 큰 손해다.
어제 아침 가족을 태우고 운전해 가는 길, 또 어김없이 차가 막힌다는 투덜거림과 함께 이리저리 차선변경을 하고 있는 나를 딸아이가 바라보고 있는 게 느껴졌다. 차 안 분위기가 갑자기 서늘하게 딱딱해지며 유체 이탈하듯 내가 나를 보게 되는 순간이 영화의 한 장면처럼 지나갔다. 유체이탈한 내가 운전석에 앉아 있는 나에게 묻는다. "너 지금 괜찮은 거야?" 내 시간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이 조급증과 화는 어디서 오는 건가. 천천히 기다려가며 갈 수 있을 만큼 시간이 많지 않다는 생각, 나누어질 사람이 없는 짐이 무겁고 버겁다는 생각, 쉬고 싶은 만큼 쉬지 못해 피곤하다는 생각, 남을 챙겨 줄 만큼 여유롭지는 않다는 생각, 이 길 말고 저 길로 갔어야 했나 기회를 놓쳐 버렸다는 생각... 말 그대로 생각, 생각들이다. 냉정히 들여다보면 생각과 실재는 많이 다른데 조급증과 화는 부정적인 생각을 확대시키고 긍정적인 실재는 줄이는 역효과가 있다.
이대로는 안 되겠다. "왜냐고?" 그렇게 심통 부리며 보낸 하루는 날 피폐하게 작게 딱딱하게 만든다. 시간이 지나며 점점 그 상태가 악화되고 심화되어 괜찮지 않아 지기 전, 단번에 지금 바로 인생에게 심통 부리기를 그만두고 행복해지는 방법을 연구해야겠다. 새해도 되었으니 이 참에 생각을 바꾸기 어려우면 아무 생각 없이 그냥 행동을 먼저 바꿔보자. 한 차선에서 느긋하게 신호 기다리기. 음식 나오는 사이 재밌는 얘기에 집중하기. 헐레벌떡 뛰어오는 친구에게 오느라 수고했다 인사하기, 커피를 건네는 아르바이트생에게 고맙다 인사하며 웃기, 아침, 저녁 같이 사는 가족들 꼭 안아주기. 별스럽게 어려운 일들도 아닐 텐데 오늘 저녁부터 해보기로 하자. 올해 쓸데없는 생각은 덜하고 쓸데 있는 행동은 더 하기로. 건강한 몸에 건강한 생각이 깃들 거라 기대하며 열흘하고 이틀 째 스쿼트와 팔 굽혀 펴기를 거르지 않고 있는 나를 칭찬해. 올 해는 좀 더 친절해지기('다정한 것이 살아남는다'는데), 느긋해지기, 멀리 보기(말 그대로 머리를 들고 멀리 보기), 손발로 해보기(뇌로 하는 거 말고), 건강해지기. 작은 행동들을 하나하나 해나가다 보면 큰 생각들도 바뀌겠지. 깨달음이 별 건가. 생각이 행동을 바꾸기도 하지만 행동이 생각을 움직이게 하기도 할 거란걸 아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