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다발을 들고

또 한 번 파도를 넘고

by 하루

'우리 곁에 균열이 나지 않은 어른은 없다. 그러니 불안하지 않은 아이도 없다. 지금 목격하는 저 삶의 풍랑이 자신의 것이 될까 긴장했고 그러면서도 결국 자기를 둘러싼 어른들이 세파에 휩쓸려 사라질까 봐 두려웠다.'


김금희 작가의 '대온실 수리 보고서' 속 저 문장을 읽고 이 게 어떤 말인지 단박에 알았다. 나는 삶이란 게 어디서 오는지도 모르는 파도에 언제든 휩쓸려 가 부서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매사 최악의 시나리오를 생각하는 버릇을 가진 아이였다. 사소한 실패를 계속하는 아빠의 삶이 그래 보였고, 늘 우울한 그림자를 가슴에 안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엄마의 얼굴로 그렇게 짐작했다. 두 사람이 다투는 날이면 우리를 싣고 가는 작은 배가 지금 당장 풍비박산 날 것 같아 두려우면서도 그 두려움이 지긋지긋했다. 가끔 큰 소리로 다투거나, 하는 일마다 실패를 반복했더라도 부모님이 다정하지 않았거나, 가족 공동의 삶을 위해 애쓰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그 노력이 무색하게 내게 집이란 따뜻하고 안전한 곳이 아니라 언젠가 떠나야 하는 곳, 그 시간이 빨리 오기를 초조하게 기다리는 곳이었다. 대학에 입학하며 부모님 곁을 떠났고 두 사람의 집에서 나와 드디어 내 우산을 펴고 내 그늘을 만들어 작게 거느렸다.


결혼 후 한참이 지나도록 아이 생각을 하지 않았던 것도 내가 꾸리려는 '집'이 혹시나 그렇게 풍랑에 떠 있는 부표처럼 파도에 떠밀려 알 수 없는 곳으로 휩쓸려 가면 어쩌나 하는 불안 때문이었으리라. 어른 둘이라면 서로 어찌어찌 해쳐가 보는 일이 가능하겠지만 온전히 책임져야 하는 또 다른 생명체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았다. 며칠 전 대학 졸업식에 가 꽃다발을 들고 서 사진 찍는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시간이 갓난아이가 훌쩍 큰 만큼 정확히 또박또박 흘러 여기에 와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뒤 돌아보는 일에 별 취미가 없는 성격이긴 해도 지난 시간들 거대한 꿈도 대단한 성취도 없다면 없는 삶이었지만 발을 닻처럼 땅에 붙이고 풍랑에 휩쓸리지 않으려 함께 애쓴 그 시간들을, 오래전 아이였던 나를 딸아이 안 듯 따뜻하게 꼭 껴안아 주고 싶어졌다.


간신히 받쳐든 우산이 뒤집어져 쏟아지는 장대비를 온몸으로 맞을 것 같아 때때로 불안하고 외로웠다. 하지만 그때 그 아이에게 걱정처럼 최악의 시나리오로 드라마가 펼쳐지지는 않을 거라 얘기해 주고 싶다. 평범하고 평범(이 게 얼마나 어려운가)한 날들이 이어질 거라고. 앞으로도 피해보려 해봐야 역부족인 불안과 두려움이 가는 길 내내 함께 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가지 않으리란 걸 안다. 균열에도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으며 다시 일어나 짐짓 이 정도 균열쯤이야 하고 넘겨 버릴 수 있는 배짱과, 큰 파도가 덮쳐와도 그 기세에 눌리지 않고 오히려 좋아하고 신나게 파도를 타는 서퍼의 용기를 탐내 본다. 거대한 쓰나미처럼 불안이 엄습해 와 한 발짝 내 딛기도 어려울 것 같아 두려워질 때 필요한 속삭임. 내 귀에 캔디. '나만 그런 게 아니라잖아.' '우리 곁에 균열이 나지 않은 어른은 없다.'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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