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심이라는 이름의 방패 1

by Soo

어떤 아이들은 말하지 않는다. 아니, 말할 수 없다. 그들은 울지 않고, 아프다고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세상을 견딘다. 그래서 더 많은 질문이 필요하다. 그 질문은 때때로 방패가 된다. '의심'이라는 이름의 방패. 누군가는 그 방패를 들어야 한다.



“정민선생님, 제가 소아응급실 장점을 하나 더 알아왔어요.”

김정안 간호사가 넉살 좋게 전공의 이정민에게 말을 걸었다.

“뭔데요?”

“여기는 주취자가 없다!”

“오, 그렇네요.”

“제가 소아응급실로 부서 이동하기 전에 성인 응급실에 있었잖아요. 밤 12시부터 경증 베드 구역에는 술 냄새가 진동을 하기 시작하고, 토사물 있을때도 엄청 많고 술 먹고 주정 부리고 난동 부리고.. 어휴.. 진짜 그 꼴 안 보는 것은 너무 좋아요.”

“아, 저 다음 달 다시 성인 응급실 복귀하는데 상상만으로 고통스럽네요.”


그때 접수구역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애가 피를 흘린다는데, 너네는 질문이나 하고 있냐?”

“아이가 언제 어떻게 다쳤는지 질문드려야 저희가 트리아지를 하고..”

“아, 새끼들 말 진짜 많네.”


김정안 간호사와 이정민 전공의의 대화를 부정하기라도 한 듯 술에 취한 것 같은 남성의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렸다. 소아응급실에는 주취 환자는 없다. 그러나 주취 보호자는 존재했다.


“20개월 소유안 맞나요?”

“그래. 몇 번을 물어보는 거야? 새끼들이 귀가 먹었나?”

“그러니까 30분 전에 아이를 데리고 모임에 갔는데 유리잔이 깨지면서 아이가 다친 거네요?”

“그렇다고 들었다고.”

“보호자분이 직접 보시진 못하신 거예요?”

“내 친구들이 봤는데 저 새끼가 잔을 깨고 손을 베였다잖아. 별거 아니라고 두라는데 굳이 응급실까지 가서 진료받으라고. 유별난 새끼들”

“봉합이 필요한 상처입니다. 유리 파편이 남아있을 수 있어 간단한 x-ray 한 장 찍어볼게요.”

“뭐 이까짓 것으로 꿰매. 돌팔이 새끼들. 집에 갈 거니까 다 그만둬.”



술 냄새를 풍기는 보호자는 매사 위협적인 반말과 욕설을 섞었다. 질문에도 비협조적이었고, 아이가 다쳤는지조차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 채 치료도 거부했다. 무엇보다 속상한 건, 다친 아이를 안고 욕을 퍼붓는 보호자 앞에서 울지도 않는 아이였다. 익숙한 듯, 침묵했다. 아이 상처를 확인하고 박우현은 바로 전화기를 들었다. 결국 아동학대 의심으로 경찰에 신고할 수밖에 없었다.


“교수님, 이게 아버지가 학대해서 다친 상처일까요?”

“지금 다친 상처가 보호자가 의도적으로 만든 것인지 아닌지는 우리가 알 수 없지. 보호자 말대로 그냥 모임에서 잔이 깨지면서 다쳤을 수도 있어.”

“근데 왜 신고하죠?”

“정민아, 우리는 수사기관이 아니야. 이 사람이 정말 학대한 건지 아닌지 알 수는 없어. 하지만 확실한 건, 아이가 다쳤고 보호자는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했으며 치료조차 거부했다는 거야.”

학대 여부는 즉각 단정할 수 없는 일이었다. 보호자의 음주 습관도, 평소 양육 태도도 알 수 없었다.

“왜 유안이는 울지 않을까요? 안 아픈가?”

“통증이나 자극에 예민한 아이들도 있고 약간 둔해서 아파도 많이 울지 않는 아이도 있어. 하지만 저렇게 양육자가 욕하고 화를 내는 상황에서 아이가 울지 않는 것 그것도 좀 이상하다. 그런 것 하나도 학대 가능성 중 하나가 될 수 있어.”


경찰이 출동하고 나서야 X-ray를 찍고 봉합을 시행할 수 있었다.

아이는 말이 없었다. 어떤 입장도 밝히지 못한 채, 어른들의 분노 속에 놓여 있었다.


잠시 후 또 다른 119 콜이 울렸다.

“교수님, 자전거 타던 10세 남아가 턱에 부딪혀 넘어진 후 신고되어 왔습니다. 보호자는 아직 없고 수소문 중이라 합니다.”

외상 환자를 받기 위한 준비가 이루어졌다.

“오자마자 필라델피아(경추 보호대) 해주시고, 이정민 선생 ATLS 배운 거 기억하지? ABCDE에 맞춰 환자 검진 해보자.”


환자의 기본 처치를 하고 있을 때 보호자가 왔다.


“교수님 보호자 왔어요. 근데 오늘 무슨 날인가 봐요. 어머니한테서 술냄새나요.”


엄마는 취해 있었고 곳곳에 긁히고 까진 상처로 뒤덮인 아이를 보면서 첫마디부터 욕을 쏟아냈다.


“야, 이 개새끼야. 니가 내 인생 말아먹으려고 태어나더니 그것도 모자라서 여기서 와서 울화통을 터뜨리게 만드냐? 아주 뒈지지 그랬냐?”


욕설을 퍼붓는 엄마 앞에서 아이는 눈도 마주치지 못하고, 잘못했다고만 반복했다. 보호자를 분리한 후 우현은 아이를 다시 만났다.


“자주 이런 일이 있니?

“종종 술 드시면 그래요.”

“혹시 때리기도 하니?”

“때리진 않으세요. 물건을 좀 던지실 때는 있는데. 제가 잘 피하면 돼요.”


우현은 말을 더 잇지 못했다.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던 아이는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엄마가 대학생 때 저를 가지면서 대학도 중도 포기하고, 엄마 인생이 많이 힘들어지셨대요.”

“그래도 엄마가 너한테 이렇게 욕하고 폭력을 행사해서는 안돼.”

“저도 그건 아는데, 그래도 엄마잖아요. 저는 아빠도 없는데 엄마도 잃고 싶지는 않아요. 그래도 저 버리지 않고 키우셨잖아요. 제가 그렇게 엄마의 인생을 망쳤는데도 저를 버리지 않았잖아요.”


병원에 내원하여 자기 증상을 또박또박 조리 있게 설명하던 똑똑한 아이가 눈물을 쏟아냈다. 곧바로 경찰에 신고가 들어갔다. 그러나 경찰 면담에서 아이는 학대를 부정했다.


“교수님 얘는 혼자 자전거 타고 가다 다쳤는데 이걸 신고해야 할까요?”

“우리는 아이가 병원에 온 주증상과 가해자 관계만 가지고 신고하는 것은 아니야. 학대 가능성이 있으면 일단 신고하는 것. 그게 의료진의 의무야.”

“근데 아이의 말처럼 하나밖에 없는 엄마와 분리되면 어떻게 해요?”

“그건 아닐거야. 그리고 분리될 정도로 아이가 폭언과 폭행에 시달리고 있다면 분리시켜야지. 그러다 아이가 중증 상황으로 실려오면 어떡하겠어?”

“와, 그건 너무 무섭네요. 지켜줄 수 있었는데.. 후회될 거 같아요.”

“그리고 신고한다고 무조건 경찰이 부모를 잡아가는 것도 아니야. 적어도 신고가 들어가면 그 후에 이 아이가 잘 자랄 수 있는지 체크해 주고 부모에게 개입해주기도 하지. 누군가 보고 있으니, 주의 깊게 주시하고 있으니 아이를 대하는 것에 더 조심하면서 나아질 수 있어. 아니면 이번처럼 싱글맘으로 아이를 키우기 어려운 환경이라면 지자체나 복지시설에도 도움을 줄 수도 있고.”

“아, 저는 신고되면 그냥 잡혀가나 싶었어요.”

“솔직히 우리가 수사하는 사람도 아니고 명확한 증거를 가지고 신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지. 근데 얘네가 경찰에 가기 쉽겠니? 병원에 가기 쉽겠니?”

“아프면 병원에 오니까 병원이겠죠?”

“그래, 결국 병원이나 학교 이런 곳에서 이 아이들에 대해서 약간만 의심이 돼도 신고해 줘야 지켜줄 수 있는 거야.”


정민의 눈이 깊어졌다. 의료인의 무거운 의무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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