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사는 아무 말 없이 다녀간다. 다만 그 자리에 남겨진 사람들은 평생 말을 잃는다.
우현은 소아응급실에서 일하며 “아픈 건 업보다”라는 말을 가장 혐오하게 되었다. 그 말은, 이 작고 착하기만 한 존재들을 보지 않은 이들이 쉽게 내뱉는 잔혹한 무지다. 천사 같은 아이들이 너무도 빨리 떠날 때, 그들이 남기는 가장 슬픈 것은 아픔도, 죽음도 아닌 부모의 죄책감이다.
“교수님, 119입니다. CPR 상황이고요. 세울대병원에서 윌름스 종양 진단받고 항암치료 하다가 중단한 12개월 남자아이입니다.”
“준비해 주세요.”
아이의 상태는 도착 직후부터 심각했다. 몸무게는 6.5kg에 불과했고, 팔다리와 입술은 이미 푸르게 변해있었다.
“리듬 확인합니다.”
“Asystole입니다.”
“압박 계속해주세요. 라인 잡히면 에피네프린 투여하고, 다른 선생님은 기관 삽관 준비해 주세요.”
당 수치는 20. 아이의 몸은 에너지를 모두 잃고 연료가 바닥난 기계처럼 버티고 있었다. 약물과 산소, 가슴 압박에도 아이의 심장은 단 한 번도 자신의 힘으로 뛰지 않았다. 모니터에는 고요하고 무정한 선 하나가 이어질 뿐이었다.
“보호자 설명드리고 올게요.”
대기실에는 어머니가 연신 눈물을 쏟아내고 있었다.
“어머니 최선을 다해서 심장을 압박하고 산소를 공급하는데 전혀 반응이 없습니다. 아무래도 이제는 보내줘야 할 거 같습니다.”
“안돼,. 안돼.. 절대 안 돼…. 이렇게 보내줄 수는 없어요.”
“보내기 힘든 것 이해합니다. 그렇지만 이렇게 오랫동안 아이의 심장이 멈추면 산소가 필요한 뇌나 다른 장기들이 손상되고 아무리 심폐소생술을 해도 회복되지가 않아요.”
“안 돼요, 제발… 오늘은 안 돼요. 아빠가 오고 있어요. 아빠가 오기 전까지만, 단 몇 분이라도 살아 있게 해 주세요.”
우현은 이 행위가 의학적으로 무의미하다는 걸 알았다. 심장은 외부 압박으로만 움직였고, 아이의 기관지에는 피가 역류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현은 중단을 선언하지 못했다. 이 생명이 살아있는 것인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행위인지 알 수 없었지만, 그 몇 분의 의미를 부모는 삶의 전부로 여기고 있었다.
“중단할까요?”
“아뇨. 조금더 하겠습니다.”
이 아이의 작은 생명을 붙잡고 있는 것인지에 관해 묻는다면 분명 아니었다. 이 공간에서 약물을 투약하는 간호사, 가슴을 압박하는 구조사, 삽관 후 앰부를 짜는 전공의 모두가 가망 없는 의료 행위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교수님 세울대학교 혈액종양 교수님 전화 왔어요.”
“네, 박우현입니다.”
“강서우 아기 거기 응급실로 들어갔다고 해서요.”
“네. 맞아요. CPR 상황으로 들어왔고 계속 asystole상태입니다.”
“서우는 4개월 때 구토로 응급실 왔다가 칼슘 수치가 다소 높아서, 탈수로 인했을 거로 생각하면서 입원하여 교정하는데 도통 수치 교정이 되지 않았어요. 그래서 신장 및 복부 초음파 시행했는데 초음파 검사상 윌름스 튜머(Wilms Tumor)가 진단되었어요. 그때는 이미 콩팥과 다른 장기에도 전이된 상태였어요.”
“그랬군요.”
“이미 진단되었을 때가 4기인데 보호자분들이 적극적인 치료를 원하셔서 항암을 했는데, 아이 컨디션이 따라갈 수가 없어서 중단했어요. 외래에서 봤을 때 이미 폐 전이도 있고 환아 산소 없이는 생활이 어려운 상황이라 기대여명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말씀드렸는데.. 그래도 포기하지 않으셨어요. 한 달 전 마지막 외래 때 산소 처방전 받아가셨어요.”
“여기서도 보내기 어려워하시네요.”
“고생하시네요. 제가 보호자 따로 연락해서 다시 설명드릴게요.”
“환자 정보 주셔서 감사합니다. 보호자와 오랜 관계를 쌓았던 교수님이 추가 설명 해주시는 게 큰 도움이 될 거 같습니다.”
아이는 여전히 호흡하지도 맥이 뛰지도 않았다. 아이의 모든 기관은 다 끝을 선언하고 있는 거처럼 보였다. 기관삽관 된 관에서는 피가 솟구쳤고, 빗장뼈는 이미 내려앉았다. 손가락과 발가락은 더 깊은 청색으로 물들고 있었다. 한구석에서 통화를 마친 어머니가 흐느낌을 넘어 오열로 무너졌다. 한쪽에서는 가슴압박을 하고 앰부를 짜는 소리가 들렸고 다른 한편에서는 어머니의 울음소리가 가득 찼다. 아버지가 도착했다.
“더 이상의 심폐소생술은 의미가 없습니다. 사망 선언합니다. 23시 19분, 강서우 사망.”
“서우야 미안해. 엄마가 미안해. 엄마가 너를 건강하게 낳아주지 못해서 미안해.”
“아빠가 널 지켜주겠다고 약속했는데, 네가 이토록 힘든데 곁에도 없어서 미안하다… 아빠가 미안하다.”
힘들었을 아이의 짧은 생과 찰나라도 더 함께 있고자 하는 부모의 마음을 알면서도 야속하게도 입에서는 기계처럼 사망선고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부모의 죄책감은 그 순간에도 깊어진다. 아이들이 아픈 건 누구의 탓도 아니다. 오히려 그 짧은 삶을 끝까지 안아준 부모의 존재 자체가 축복이었을 텐데… 우현은 입이 썼다.
심폐소생술이 끝난 뒤, 1년 차 전공의 이정민이 물었다.
“가망 없는 아이였잖아요. 왜 그렇게 오래 하셨어요?”
우현은 잠시 침묵하다 대답했다.
“그게 애들은 그렇게 된다. 머릿속에는 안 되는 것도 알고 중단해야 하는 것도 아는데.. 밖에 대기하는 애들 생각하면 치열하게 의료 자원의 효율성에 대하여 계산해야 하는데.. 1분이라도 딱 1분 만이라도 더 살아있는 거로 해달라는 부모의 마음을 저버리기가 참 힘들어.”
“저 오늘 소아 CPR 처음 봤는데, 마음이 좀 그러네요.”
“그래? 오늘 처음 봤어? 그동안 내공이 좋았나 보네? 밤당직 마치고 해장국에 아침 술이나 한잔하고 갈까?”
“예썰!”
소아응급실에서는 슬픔에 멈춰있을 시간이 없다. 환자는 계속 오고 시간은 계속 흘러간다. 우현은 또 보낸 아이를 가슴에 묻고 다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