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아응급은 선택해야 할 이유보다, 떠나야 할 핑계가 먼저 쌓이는 곳이다.
아이는 계속 아프고, 보호자는 점점 지쳐가는데 이 자리를 지키려는 의료진은 하나둘 떠나고 있다. 자리가 비었는데 아무도 오지 않는다. 소아응급실은 더 이상 '누군가의 자리'가 아니라, 모두가 피하고 싶은 이름이 되어가고 있었다.
"뉴스! 뉴스!"
김정안 간호사가 호들갑스럽게 뛰어들어왔다.
"뭔데 그래요?" "세상에, 소아전문응급센터 1호였던 순향대학교 소아응급실이 잠정 폐쇄한대요."
"네? 진짜요?" "의료진들이 더는 못하겠다고 다 동시 사직했대요."
"큰일이네요."
119 전용 폰이 울린다.
"교수님, 충청도 119 상황실인데요. 복통에 장중첩증 의심되는 아이가 있는데, 받아줄 수 있냐고 합니다."
"그게 여기까지 올 일이야? 진짜 주변 병원 다 안된데?”
“보호자가 웬만한 병원은 다 전화했는데 안돼서 119 신고했나 봐요.”
“오늘 우리도 소아외과 학회인데.. 최대한 공기정복술로 풀렸으면 좋겠다. 일단 아이 바이탈 괜찮으면 오라고 하세요. 바이탈 안 좋으면 일단 근처 병원에 밀고 들어가라고 하고요."
"순향대가 문 닫으니, 주변에 갈 만한 소아응급실이 없나 봐요."
두 시간이 흐르고 아이가 도착했다.
"복부 X-ray 찍고, 바로 베드사이드 초음파 볼게요. 준비해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아이를 안고 보호자가 초음파실로 들어왔다. 땀에 젖은 이마와, 불안으로 젖은 얼굴이 먼저 눈에 들어왔다.
"환자 확인하겠습니다. 5세 조서연 맞으시죠?"
"네. 맞습니다."
"언제부터 복통이 있었나요?"
"어젯밤부터 조금씩 아프다고 하더니, 오늘 아침부터는 자지러지게 울다가 괜찮아졌다가 반복했어요. 소아과에서는 장중첩증 같다고 했고요. 전화 몇 시간 동안 돌려도 받아주는 병원이 없어서 119 통해 여기로 오게 됐어요."
"고생 많으셨네요. 여긴 대장이랑 소장이 만나는 부위인데, 이 부위가 겹쳐있습니다. 장중첩증이 맞습니다. 혈류는 다소 감소되어 있고, 복막자극 징후도 있습니다. 상태가 심상치 않아요."
아이를 영상의학과로 데려가 공기정복술을 시도했지만 실패했다. 공기를 충분히 주입했음에도 장은 풀리지 않았고, 아이는 구토를 반복하며 복부 팽만이 심해졌다.
"영상의학과에서 더는 어렵다고 합니다. 전원 알아보겠습니다."
사십여 군데 넘는 병원에 전화를 돌렸지만 아이를 받아줄 병원이 없었다. 소아외과 의사 자체가 거의 없는데 심지어 학회기간, 전원이 쉬울 리가 없었다. 그나마 소아외과 당직의가 남아 있는 큰 병원은 입원할 병상이 없다고 한다.
"A 병원도 안된데요?"
"저기… 성인 수술은 가능한데, 소아는 안 된다고 합니다."
병원은 많지만, 소아외과가 필요한 환자가 갈 곳은 없었다.
"박우현 교수님."
"네."
"보호자가… 차라리 여기서 수술해 달라고 애원하시는데요."
그 말에 우현은 한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 무겁게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근데 지금 우리 병원 소아외과 교수님 학회 가 계셔서 병원에 없어요. 그분 혼자 전공의도 없이 1년에 300일은 당직을 서고 계신데, 며칠 안 되는 그 순간이 바로 오늘이네요."
"그럼 다른 외과 선생님은요?"
"일반외과, 양소정 교수님, 지금 당직 중이세요."
양 교수는 소아외과 전문은 아니지만 한참을 사정하고 설득한 끝에 응급 상황을 외면하지 못하고 아이 상태를 확인하러 내려왔다.
"저는 소아외과 전문은 아닙니다. 그런데 지금 상태로는 수술이 불가피합니다. 주변 병원 전원도 어렵고, 저라도 해야 합니다. 보호자분 동의하시면 제가 수술하겠습니다."
어머니는 눈물을 글썽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발 살려주세요. 제발…"
수술방은 겨우 잡혔고, 간신히 마취과 협조를 얻어 아이는 수술실로 향했다. 장중첩으로 인한 괴사 된 장은 절제되었고, 남은 장은 조심스럽게 이어 붙여졌다.
수술은 성공적이었다. 새벽 4시 반 잠시 환자가 끈긴 틈을 타서 수술 후 중환자실로 나온 아이를 바라보았다. 소아중환자 유민 교수가 다가왔다.
“박우현 선생, 걱정돼서 왔어? 아이 수술 후에는 생각보다 바이탈도 안정적이고 양호하니 너무 걱정하지 마.”
“오늘은 이렇게 간신히 넘겼는데, 내일은 어떨까? 또 이렇게 실려오는 아이들을 언제까지 지킬 수 있을까?”
“어떻게, 그래도 지킬 수 있을 때까지는 지켜야지.”
우현은 한참 동안 아이를 바라보았다.
또 날이 밝았다. 아침에 퇴근하여 한숨 자고 일어나니 그날 저녁 뻗어있던 우현에게 전화가 왔다. 의국장 권 교수였다.
"회의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