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샷 아메리카노를 가지고 우현은 병원에 들어섰다. 어제 수술한 조서연 어머니는 중환자실 면회를 위해 앉아있었다. 우현을 마주치자 인사를 했다.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이 병원이 아니었으면 우리 아이…"
우현은 고생하는 어머니를 잠시 위로하고 중환자실을 지나 소아병동으로 들어왔다.
병동을 지나 회의실로 향하는데 네다섯 살 정도 되어 보이는 꼬마아이가 냅다 우현에게 안겼다. 잠시 당황했던 우현은 무릎을 굽히고 앉아 아이와 눈을 마주했다. 아이는 경계심 없이 환하게 웃더니 작은 손으로 우현의 손가락을 꼭 잡더니 한 곳을 가리키며 우현을 끌고 간다. 그리고 이거저거 보면서는 사물의 이름을 이야기한다. 잘했다고 칭찬을 하니 행복함으로 눈이 반짝거린다. 우현은 지극히 외향적인 아이가 단순히 사람을 좋아하는 줄 알았다.
"선생님이 예뻐서 오래 같이 놀고 싶지? 근데 선생님 일하러 가야 해. 자, 이제 엄마 있는 데로 가야지?"
하고 웃으면서 말했다. 헤어지자는 말에 아이는 우현을 덥썩 안고 떨어지지 않는다. 간신히 아이를 데리고 지나온 병실 쪽으로 가는데 할머니 한분이 발을 동동거리며 아이를 찾고 있다. 아이를 보더니 급하게 이쪽으로 달려오셨다.
"아이고 왜 그래. 선생님 일하러 가셔야 한대."
아이 손을 간신히 떼서 안고는
"죄송해요. 선생님, 얘가 엄마가 없어서 그래요. 그래서 이러나 봐."
순간적으로 아이에게 당연히 엄마가 있을 거라 생각한 우현은 스스로가 부끄러웠다. 곧 회의시간이 다가와 아이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고 회의실로 향했다.
회의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응급의학과에서 소아 파견 안 하겠답니다."
"소아과도요. 1, 2년 차 때 돌았으니 이제 안 온답니다."
"왜? 왜 안 오겠다는 건데?"
의국장 권교수는 응급의학과 4년 차 치프 변현과의 대화를 전해줬다.
"저희는 앞으로 소아 안 볼 겁니다. 괜히 어설프게 배웠다가 소송에 휘말리느니, 아예 못 본다고 할 겁니다."
"응급실이잖아. 네 눈앞에서 아이가 죽어가면 '나는 못 해요' 할 수 있어?"
"죄송하지만, 그런 사명감 없습니다. 소아 보호자들은 민원만 넣고, 저희는 파견 안 가기로 정했습니다."
한참을 설득했으나 조금의 망설임도 없었다고 한다.
소아과도 마찬가지였다. 소아과 3년 차 치프 정윤아는 말했다.
"소아과는 이미 망했어요. 전공의도 없고, 신생아 중환자실이랑 소아응급실은 절대 안 할 겁니다."
"개원하면 응급환자 안 만날 거 같아? 배워놔야지."
"교수님, 불길한 소리 마세요. 1, 2년 차도 이제 안 들어와요. 남은 건 3년 차뿐이에요. 저희 나가면 이제 소아과는 전공의 0 입니다. 안그래도 인력 없는데 소아응급실까지 돌릴 여력이 없습니다."
권 교수는 말을 잇지 못했다고 한다. 아무리 교수들이 머리를 맞대도, 마음을 돌릴 수는 없었다. 그는 조용히 말했다.
"요즘 세대들은 소아응급을 기피과의 교집합이라 부릅니다. 소아과는 응급환자 봤다가 소송걸릴 것이 무섭다며 기피하고, 응급의학과는 민원 많은 소아 보호자들이 싫다며 기피해요. 결국 둘 다 기피하니, 소아응급은 진짜로 할 사람이 없어요. 그리고 더 무서운 건 뭔지 아세요?"
"뭔데?"
"소아과, 응급의학과 둘 다 지원율이 바닥이거든요. 둘 다 사라지면 뭐다? 기피과의 교집합인 소아응급은… 더더더더더 이상 할 사람이 없다는 거죠."
회의실 한편에 있던 우현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배후 진료과도 벅차고, 주변 병원 전원도 불가능한 이 상황에 전공의들에게 소아응급을 하라고 말하는 건… 이제는 거의 잔인한 요구 같아요. 남아 있는 우리가 무슨 낙으로 이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 모르겠네요."
누군가가 한숨을 쉬었다.
"그만 말해라. 점심 얹히겠다."
회의는 무거운 침묵 속에서 끝났다. 후학이 없는 이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지, 아무도 감히 입을 열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