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련의 날

by Soo

소아 응급실에서 가장 흔한, 그러나 가장 두려운 방문객이 있다면, 그건 '경련'일 것이다. 번개처럼 찾아와 뇌의 파장을 흐트러뜨리면서 온몸을 흔들고, 흔적처럼 사라지지만 의료진의 심장은 한참 동안 조여든다.




"제가 이번 교육 때 누굴 만났는지 아세요? 박우현 교수님 수련받았던 병원 수간호사 선생님이요. 교수님 전공의 때 별명 알아왔지요?"


간호사 김정안이 말을 꺼냈다.


"제 별명이요? 그런 거 없었는데요."


박우현이 멋쩍게 웃었다.


"아니에요. 교수님 유명하셨다던데요."

"일만 열심히 했지, 조용히 살았어요."

"그게 조용히 한 거라면요. 별명도 들었어요. '시저 마그넷(seizure magnet)'."

"그게 뭐예요?"


전공의 이정민이 흥미롭게 물었다.


"경련 환자들을 마치 자석처럼 끌어모은다는 뜻이래요. 교수님, 맞죠?"

"아, 그거. 소아과 신경분과 선생님들이랑 신경외과 선생님들 몇몇이 장난 삼아 그랬던 거 같긴 하네요. 그런데 소아응급실에서 경련 환자 많은 건 흔한 일이죠."


그 순간 응급벨이 울렸다.


“중증구역 1번 아이 경련합니다.”

“산소 마스크와 앰부백 준비해주세요. 아이 15킬로죠? 아티반 1.5mg 준비해 주세요.”

“경련 멈췄습니다. 아티반 아직 안 들어갔습니다.”

“상황은요? 3일 된 고열로 온 20개월 조현입니다. 라인 잡던 중에 GTC* 타입으로 경련하였습니다. 총 2분 지속되었습니다.”

”열성 경련이었겠네요.“


보호자는 넋이 나간채로 울고 있다.


”어머니, 너무 놀라셨죠? 만 5세 전에는 고열에 의한 열성경련을 흔히 겪어요. 대부분 아이들은 커가면서 자연히 사라져요. 뇌전증 발생률이 일반 아이들에 비해 더 높거나 한 거 아니니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보호자 어머니의 울음이 그치고 나니 아이 우는 소리가 들린다.


“아이가 깼나 봐요. 어머니 목소리 들려주시고 달래주세요. 방금 라인 잡았으니 해열제 주사로 주겠습니다. 다만 24시간 내 한 번 더 경련할 경우 뇌수막염이나 다른 질환 가능성이 있어 추가 검사 후 입원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응급실은 시간이 지날수록 분주해졌다. 어느덧 중증 A구역에 단순 열성경련 환자 한 명 , 뇌척수액 검사 기다리는 복합 열성경련 환자 한명, 양성롤란딕 뇌전증 의심되는 아이 한 명, 경련 지속 상태로 실려와서 안정제 들어가고 지금 항경련제 투약중인 아이 한 명 이렇게 경련하는 아이 4명이 있다.


“교수님 중증 구역 풀이예요. 5개 베드 중에 4명이 경련환자, 마지막 남은 베드에는 급성 후두염으로 하이플로우 산소 달고 있는 5개월 아이 있고요."

“그럼 어떻게 하죠? 중증 구역은 풀베드인데 지금 119 연속 3군데에서 전화 왔어요. 다 경련 환자예요.”

“소생실 한자리받을 수 있을 거 같은데 중증 환아 먼저 받아야 할 거 같아요. 순서대로 이야기해 주세요"

“첫 번째 아이는 가장 가까운 119 14개월 남아 40도 열나면서 GTC type으로 3분간 경련했다고 합니다.

두 번째 아이도 15분 거리 지역 119 5세 여아 열은 없고 갑자기 얼굴부터 시작되면서 경련 5분간 했고 지금은 멈춘 상태라고 합니다. 생체징후 안정적이고요.

세 번째 아이는 가장 먼 지역 119에서 3세 남아입니다. 이미 드라베 신드롬으로 진단받고 세울 병원 다니면서 항경련제 투약 받은 환자인데 경련으로 신고되었고 지금은 멈춘 상태이나 119 구급차 안에서 경련했다가 멈췄다가를 반복하고 있다고 합니다. 세울대는 CPR 중이라 못 받겠다고 했고 나머지 병원은 희귀병에 다른 병원 다니고 있어서 안 받아준다고 합니다. 여기 병원이 스물다섯 번째 병원이라고 응급처치라도 해달라고 대원이 거의 빌다시피 하네요.”


고민하던 우현이 대답하였다.


“세 번째 환자 받을게요. 아참, 나머지 119 아이는 우리 중증베드 풀베드라 눕혀 모니터 할 수가 없는 거 설명해주시고 다른 병원 알아보시라 해주세요. 나머지는 경련 멈췄고 바이탈 괜찮으니까요. 근데 다시 경련하거나 아이 바이탈 안 좋으면 스트레쳐카로라도 받아야 하니 다시 연락 달라고 해주세요”

“교수님 솔직히 다른 병원에서도 다 안 받아 주는데 굳이 원거리의, 저희 병원 다니지도 않는 희귀병 환자를 저희 병원에서 받을 필요가 있을까요?

“우리가 안 받으면 그 아이, 결국 어디에도 갈 수 없을 거야. 드라베 신드롬 애들 경련 잘 안 멈추거든. 경련 계속할 거고, 지금은 운이 좋아 멈췄다가 하는 거고. 계속되면 다음엔 심폐소생술로 오게 될 수도 있어.”

“너무 무서운 이야기인데요?”

“과장하는 거 아니고 그런 사례 본 적 있어.”

“한 시간도 넘게 걸리는데 정말 큰일이네요. 안전하게는 오겠죠?”


전공의 이정민이 걱정스럽게 물었다.


“이정민 선생은 드라베 신드롬에 대해서 찾아보고 공부 좀 하고 있어.”

“네. 드라베 신드롬에 대해서 찾아보고 있겠습니다.”


환아가 도착했다. 보호자는 빽빽하게 기록된 수첩을 들고 있었다. 경련 시간, 양상, 약 복용 이력까지 빠짐없이 적혀 있었다.


“18시 38분 29초에 처음 경련 시작되었고, 눈이 왼쪽 위로 올라가면서 온몸이 딱딱해진 채로 떨었어요. 이때는 1분 44초 만에 멈췄어요. 그다음은 20시 41분 55초요. 119 신고하게 된 건 23시 23분 11초에…”


트리아제를 하기 위해 기본 정보를 물어보던 간호사가 조용히 와서 말했다.


“아이 엄마 너무 까다로워요.”

“라인은 왼쪽 손목 위쪽에 잡아달라고 하고, 아이가 울면 경련 올 것 같다며 주시하고 있어요. 무섭기도 하고요.”

의료진 입장에서는 지나치게 개입하는 보호자가 때때로 부담스럽게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내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5분간격으로 간호사를 부르던 보호자가 또 호출벨을 눌렀다.


“선생님 아이 경련할 거 같아요.”

“아이 아직 울고 있는데요?”


신규 간호사가 다소 퉁명스럽게 말했다.


“이렇게 울다가 끅끅 소리를 내면…….”


보호자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이가 경련을 시작했다..


“교수님 아이 경련합니다.”

“제가 경련할 거 같다고 말씀드렸잖아요.”

“확보된 라인으로 아티반 투약하겠습니다. 아이 산소마스크로 5L 주세요. 앰부백도 준비해 주세요.”

“1시 58분 경련 멈췄습니다.”

“아이 모니터 하면서 볼게요. 아티반 미리 준비 해놓겠습니다. 경련 또 할 수 있습니다.”


경련은 멈췄지만, 모두가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이정민 선생 그래서 드라베 신드롬 좀 찾아봤어?”

“드라베 증후군은 SCN1A 유전자의 기능 상실로 인해 뇌의 억제신경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으면서 발생하는 소아 뇌전증입니다. 신경 흥분을 억제하지 못하면 뇌 전체의 과흥분 상태가 유발되고, 이로 인해 조절되지 않는 경련이 반복되는 거라고 합니다.”

“잘 찾아봤네. 쉽게 말하면 보통 유전자 이상으로 지속적으로 경련하는 질환이라고 보면 돼. 드라베 증후군은 난치성 경련이 특징, 약물 조절이 중요한데. 보통 드라베 환아들은 경련약을 여러 가지 먹고 있어서 좀 까다로워.”


그때 아이가 다시 경련을 시작했다. 아이는 두 번째 아티반 들어간 후 멈췄다.


“아티반 두 번 들어갔으면 다음 약제를 고민해야 하는데 좀 고민이네. 이미 경련약만 세 가지 먹고 있어. 약물 레벨을 몰라서 먹고 있는 약 추가 투약하기도 그렇고..”

“저기 교수님 사실은 보호자가 오자마자 아이 경련하면 페니토인 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저는 보호자분이 아이의 약물을 결정하실 수는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아, 그런 이야기는 빨리 해줬어야지. 드라베는 개별화된 치료가 중요하거든. 페니토인 바로 준비해 줘요. 오더 냈습니다.”


병원에서는 보통 의사의 판단으로 약물을 결정한다. 복용하는 약물마저도 끊을지 지속 복용할지를 일일이 확인한다. 그렇기 때문에 보호자가 요구를 진상으로 오해하기 쉽지만 특정 희귀 질환은 때때로 보호자의 정보에 의해 약물이 결정되기도 한다.


“정민아, 드라베 아이들은 약물을 많이 복용하고 있어서 사실상 최선의 선택을 하기 어려워. 보통 경련해서 추가로 투약하는 2차 약물은 해당 약물에 대한 개인의 이전 반응에 따라 달라질 수 있거든. 보통 드라베 신드롬은 페니토인이 잘 안들을 수도 있어 하지만 이전에 써봤을 때 효과가 있었다면 이 약을 계속 사용하지 않을 이유가 없지. 그래서 보호자도 저걸 알 고 있는 거고,”


드라베 환자 말고도 희귀한 질환에서 보호자의 경험과 기록은 의사보다 더 중요한 임상 지표가 되기도 한다. 개별 반응에 따라 약물을 선택해야 하는데 보호자들은 오랜 시간 동안 환자를 봐왔기 때문에 미세한 차이도 구별해 낼 수 있는 것이다.


아이를 만나 진료하는 과정은 단순한 대응을 넘어 보호자의 삶과 아이의 역사를 함께 읽어내는 시간이다.


오늘 동시에 응급실 내 체류하던 경련환자만 다섯. 그중 하나는 스테이터스, 하나는 희귀 유전 질환.


시저 마그넷. 이 별명이 우연만은 아닌 것 같았다.

밖에서는 또 119 벨이 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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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GTC : Generalized Tonic-Clonic Seizure의 약자로 - 전신 긴장-간대 발작으로 전신이 뻗뻗하게 굳고 떠는 동작의 경련을 의미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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