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은 때로 같은 문을 나눠 쓰는 듯하다. 어떤 이는 그 문을 나가고, 또 어떤 이는 그 문으로 간신히 들어온다.
“어제부터 소아외과 이종운 교수님 모친상이라 삼일간 소아외과 부재입니다. 일반외과도 2시간 전부터 간이식 수술 들어간다고, 오늘 외과 다 콜 받기 어렵다고 합니다.”
낮 근무 담당 교수였던 의국장 권 교수가 야간 근무 인계를 주면서 말했다.
“3일 동안 별일 없길 바라야겠네요.”
“저는 인계하고 장례식장 다녀와야겠네요.”
119 전화기가 울렸다.
“복부 팽만이 심한 5세 여자아이라고 합니다. 배가 엄청 불러 있고 딱딱하대요.”
“오늘 소아외과 부재라 외과 가능한 병원 가야 할 것 같아요.”
10분 후, 119가 그냥 아이를 데리고 응급실로 들어왔다.
“보호자 분이 여기서 소화기 진료 두 번 본 적이 있고, 배는 자주 불렀다가 다시 좋아졌다가 반복한다고 하셔서...”
아이는 배가 엄청 딱딱하고 크게 불러 있었다. 숨을 헐떡이는 게, 누가 봐도 상황이 좋지 않아 보였다.
“보호자 말을 듣고 외과가 안 되는데 이렇게 밀고 들어오시면 어떻게 하나요?”
트리아제 간호사가 날 선 반응을 보였다. 하지만 일단 서로 누구 탓을 하기에는 아이 상태가 너무 좋지 않았다.
“119 대원님들은 주변에 소아외과 가능한 병원 있는지 전화 돌려서 알아봐 주세요. 저희는 응급처치라도 하고 있을게요. 근데 아이, 시간이 많아 보이지 않습니다.”
우현이 비장하게 말했다.
“비위관(L-tube) 준비해 주세요. 직장관(Rectal tube)도요.”
비위관은 삽입되었으나 항문 쪽으로는 이미 장이 밀려 나와 있어 직장관이 진입되지 않았다.
“5세 여아 유지희, 어릴 때부터 변비가 반복되고 복부 팽만 있던 환아로, 본원 소아 소화기 분과 외래에서 선천성 거대결장(Hirschsprung disease) 가능성이 있을 수도 있다고 검사 권유했는데 보호자가 그 이후로 오지 않아 명확하게 원인은 알 수 없습니다.”
“여덟 군데 전화해 봤는데 모두 수용 불가라고 합니다.”
“감사합니다. 아이 상태가 너무 안 좋네요. 대원님들 복귀하시고 저희가 전원 문의로 알아볼게요.”
“이정민 선생 주변 병원에 전화 좀 돌려봐.”
시간이 촉박한데 흔쾌히 받아줄 병원은 어디에도 없었다.
“교수님, 구체적 원인을 알려달라고 하는데요? CT 소견이라도 달라고..”
““x-ray에선 장이 너무 늘어나 있고 공기가 가득 차 있는데 폐 쪽이 위로 밀려있어서 복부 구획 증후군(abdomen compartment syndrome) 가능성이 있으니 전원 문의는 계속해 줘. 라인 확보되었으면 천공이나 종괴 같은 여부 확인하기 위해 CT 찍을게요. 상태 좋지 않아 제가 직접 CT 동반 갑니다.”
CT실에서 우현은 초조하게 영상을 보는데, 심장에서 조영제가 고여 퍼지지 않는다.
“다시 소생실로 이동합니다. 아이 복압이 너무 높아져서 심장 쪽 텐션이 의심됩니다.”
“교수님, 아이 혈액 가스 분석 검사상 pH 6.9, 심한 대사성 산증이 의심됩니다.”
“빌어먹을, 바늘 감압술(needle decompression) 해야 할 것 같아요.”
긴급한 상황이 이어졌다.
“아이 의식 쳐집니다.”
“지희야, 눈 떠봐.” “어머님, 아버님, 아이 상태가 많이 안 좋습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에요. 그냥 똥을 싸면 좋아지는데, 이런 게 한두 번이 아니에요. 관장하면 좋아져요. 관장해주세요.”
“이정민 선생, 응급처치 관련 동의서 받아줘.”
배꼽에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떨어진 지점에 바늘을 꽂았다. 삐익 소리가 나며 바람 빠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러나 복압이 너무 높아서 이내 바늘 끝이 눌려 바람이 빠지지 않는다.
“바늘 더 굵은 거 주세요. 아무래도 배를 열어야 할 것 같은데...”
우현은 고민 끝에 이종운 교수에게 연락했다. 소아외과는 그 한 명뿐이라, 안 그래도 거의 쉬는 날 없이 당직을 서다가 상을 당해, 그것도 어머니를 보내고 상주를 서고 있는 그에게 연락하기는 너무도 괴로웠으나 어쩔 수 없었다. 아이에게 남은 시간은 정말 몇 분밖에 채 되지 않는 것 같았다. 몇 번의 전화 끝에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지금 가겠습니다.”
“정민아 마취과 전화해 봐.”
그러나 시련이 더 남아있었다. 마취과 당직 2명인데 전공의는 위 천공 환자 마취 중이고 마취과 교수는 산모 제왕절개 수술을 들어간 상태였다.
피곤함에 절어 있는 이종운 교수였지만, 눈빛만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당장 열어야 합니다. 수술실 날 때까지 못 기다립니다.”
우현은 바로 중환자실 유민 교수에게 전화했다.
“선배, 배를 열어야 할 아이가 하나 있는데 마취과가 수술중이라 수술방은 못 열고 아이가 그때까지 기다릴 수가 없어. 응급실은 감염위험성이 너무 클 거 같은데 중환자실 올라가서 바로 절개해야 할 거 같아.”
“어떤 환자인데?”
“복부 구획증후군, 내가 급한 건 다 백업할게. 제발 부탁해..”
“알았어. 바로 준비할게. 올라와.”
소아 중환자실에서 응급 수술이 곧바로 시작되었다. 복부를 열자, 부풀어 오른 장이 밀려 나오듯 튀어나왔다. 복부 안의 긴장된 압력이 한순간에 풀린 것이다. 이종운은 신속하게 복압을 낮추며 장 상태를 확인했으나 장이 많이 부어있어 장 상태를 정확하게 보기 어려웠다. 응급 복압감소술로 1차 수술을 마무리한 뒤, 복부는 임시로 개방된 채 보존적 처치를 시행했고, 복벽 봉합과 절제술은 뒤로 미뤄졌다.
다행히 아이는 끝내 살아남았다. 대부분의 문헌에서 치사율이 높은 복부 구획 증후군 환자에서, 누군가의 간절한 결정과 빠른 판단, 그리고 의료진 모두의 긴밀한 협력과 헌신이 아이를 다시 삶의 자리로 데려왔다.
의료진 모두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정말 다행이었다.
“교수님 정말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우현은 그저 고개를 숙였다. 그 순간만큼은 자신도 보호자와 다를 바 없는 마음이었다. 간절했고, 미안했고, 무엇보다도 고마웠다. 소아응급실에서 의사의 하루는 늘 누군가에게 부탁하고, 또 누군가에게 감사하며 이어진다.
이종운 교수는 다시 장례식장으로 향했다.
응급실에서는 간호사들이 조용히 이종운 교수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삶과 죽음, 누군가의 끝은 또 다른 누군가의 시작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 공간은 그렇게 이어지는 순간을 누구보다 많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