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에도 몇 번씩 멈춰 선다. ‘정말 이 일을 계속할 수 있을까?’라는 회의 앞에서. 그러다 문득, 아이들이 눈을 맞추며 웃어줄 때. 모든 피로가 녹아내리고, 다시 한번 마음을 다잡게 된다.
“교수님 22개월 한강수 아기 만세 했어요.”
“이제 집에 보내면 되겠네요. 진료실 들어오라 해주세요.”
“강수야 만세 했어?”
아이가 방긋거리면서 캐릭터 비타민을 손에 잡기 위해 양팔을 들어 올린다.
“팔꿈치가 약간 빠진 거예요.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완전히 빠지고 그런 건 아니고 속에서 살짝 틀어진 거예요. 어릴 때 팔을 잡아당기면 잘 생겨요.”
“아까 양쪽에서 팔을 들어 올려서 비행기 해줬는데 그게 문제였나 봐요.”
“또독 소리 나면서 잘 정복됐고, 아이 잘 움직여서 가봐도 될 것 같아요.”
“강수야 빠빠 하자.”
통통하고 귀여운 아이가 웃으면서 손을 흔든다.
“교수님 풀드엘보우(팔꿈치 아탈구)가 응급실에서 제일 행복한 병명인 것 같아요. 애들마다 저렇게 바로 웃고 잘 움직이고 보호자들도 행복해하면서 나가니까요.”
“애기 너무 이쁘지?”
“네, 웃는 애들은 이뻐요.”
“애들은 웃어도 이쁘고 울어도 이쁘지, 못 우는 애들이 오히려 더 무섭다?”
“하긴 그래요. 중증 애들은 울지도 못하고 쳐져서 오니까요.”
“소아응급 하는 이유가 사실 애들 이뻐서지. 요즘은 귀엽다고 밖에서 막 애들 만지고 말시키고 이런 거 못한다.”
전공의 정민과 우현은 간만에 웃으며 대화를 나누었다. 웬일인지 기분 좋은 날이었다. 대부분 아이들이 호전되어 웃으며 퇴원하는 날.
그날 마무리하지 못한 차트를 작성하고 병동을 지나 당직실로 가는 길이었다. 응급병동에 있는 아이들을 보러 회진을 올라가는데 아이가 와서 또 우현에게 안긴다.
“오늘도 만나네? 너 이름이 뭐야?”
“나, 안지아”
“지아 반가워.”
지아는 우현이 환자를 보고 일을 하는 동안 계속 뒤를 졸졸 쫓아다녔다. 아이는 참을성 있게 쫓아다니다가 대충 일을 마무리하고 나니 다시 우현의 손가락을 잡고는 전날과 같이 이것저것 단어를 늘어놓기 시작한다. 신기하게도 아이는 제법 많은 병원에서 쓰는 단어를 알고 있었다.
“우아, 너 알코올 솜도 뭔지 알아?”
“그거 주사 맞을 때 닦는 거.”
그리고는 영민해 보이는 눈망울로 나를 바라본다. 마치 말을 배우기 시작한 후 칭찬받길 원하는 아이처럼. 우현은 잘했다고 높은 톤의 목소리로 다소 과장되게 칭찬을 하며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아니, 이것이 또 선생님을 괴롭히고 있네. 얘가 엄마 또래의 젊은 여자만 보면 그렇게 가서 달라붙어요."
"아, 괜찮아요."
우현은 지아가 예쁘기도 하고 병원 환경에서 지내야 하는 지아가 안쓰러워 가던 길을 멈추고 지아와 조금 더 시간을 보냈다.
다음날 아침 우현은 투샷 아메리카노를 들고 출근을 하였다.
“교수님, 결국 주말에 그 설사 환자 보호자 민원 넣었네요.”
“아, 그때 그 환자요?”
우현이 머리가 지끈 거린다는 표정을 지었다. 이어서 수간호사 선생님이 심각한 표정으로 민원이 무려 3개나 들어왔다는 소식을 전했다.
첫 번째는 설사 환자 보호자였다. 중증베드, 경증베드 모두 풀베드였고, 아이 활력도 좋고 탈수 징후도 없는 상태였다. 전공의 치프인 변현은 경구 수액 섭취 교육만 시행했다.
"애가 설사하고 밥도 못 먹는데 수액도 안 놔주고 뭐 하는 거예요?"
"보호자님, 아이가 탈수 소견은 없고 활력징후도 좋아서 정맥 수액보다는 입으로 수액 섭취하는 게 더 안전합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마세요. 다른 병원 갔으면 벌써 수액 맞았을 거예요!"
버티던 변현도 결국 목소리를 높였다.
"보호자님, 꼭 필요하지 않은 처치를 억지로 하는 게 오히려 아이한테 해롭습니다. 아이 주사 찔러서 아프게 하시고 싶으세요?"
결국 박우현이 나서 보호자를 진정시키고 사과했지만, 민원은 병원에 그대로 접수되었다. 억울함을 토로하던 치프 변현은, 소아응급실에 억지로 파견 온 처지에 대한 불만까지 쏟아냈다. 그러나 보호자는 끝내 변현 전공의의 사과를 원한다고 하였다.
두 번째 민원은 더 황당했다. 열난 지 이틀도 안 되어 방문한 아이. 감기 증상으로 진료 후 귀가했는데, 다음 날 가와사키병 진단을 받고 입원했다며 “왜 하루 전에는 못 알아봤냐”는 내용의 민원이 들어왔다.
세 번째는 20개월 된 아이가 문에 부딪혔다며 CT를 요구한 보호자였다. 외상 징후가 없어 촬영이 불필요하다고 판단해 PERCAN Rule과 방사선 노출, 촬영 시 수면제 사용 필요성 등을 자세히 설명했고, 보호자도 결국 CT를 찍지 않겠다고 스스로 결정했다. 그러나 이후 “아무것도 안 해줬다”며 진료비를 내지 않겠다고 항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