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어릴 때 산타를 믿었다. 이제 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내게 선물이나 보상 따위를 줄 존재가 필요했다기보다는 그냥 나를 지켜봐 주는 누군가가 필요했던 것 같다. 울면 산타 할아버지가 선물 안 주신대. 선물을 받기 위해서 동생과 싸우지 않고 방 청소를 잘하고 이를 열심히 닦던 유년기의 나는 그대로 성장하여 하루 일과를 채점하는 사람이 되었다. 중학교에 들어가기 전까지만 해도 매일 밤마다 그날 있었던 일을 나열하여 점수를 매기고 조금이라도 부족한 것이 있으면 그날은 행복하지 않은 날이라고 치부했다. 그러고는 내일은 조금만 더 완벽하게 해 주세요 나 내일은 더 행복하게 해 주세요 같은 걸 하늘에 빌고 잠에 들었다.
과거의 굴곡을 바탕으로 더 잘 살아 보려고 하는데 삶은 여전히 예기치 못한 지점에서 미끄러진다는 게 빡친다. 최근 일기에 이런 말을 적어두었다. 나이를 먹어갈수록 융통성이 늘어나고 좀 자유로운 어른이 될 줄 알았더니 오히려 평균적으로 내가 어느 시기에 방황하고 불안해하는지 미리 긴장하는 사람이 되었다. 이맘때는 자주 무기력해지니까 더 바짝 처신해야 해.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강박 주의를 못 고칠 것 같다고 생각했다. 잘 살다가도 미끄러지는 날들에 앞으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머리가 아팠다. 그런 때에 대처하기 위해 중심 잡기를 연습하고 좋아하는 것들을 단단히 쌓아 올려왔는데 스물하고 조금은 여전히 어설프다는 점이 실망스러웠다.
처음 H를 좋아했을 때 그가 스물한 살이었다. 보고 싶다고 말하게 되면 정말 못 볼까 봐 그렇게 말하는 게 싫었나 봐요. 보고 싶으면 보고 싶다고 말하지 않고는 못 배기던 열여섯의 나에게는 그런 그가 너무도 큰 어른 같았다. 그래서 그 같은 어른이 되고 싶었고 가장 유약했던 시기에 그를 보고 자라서 지금의 내가 이만할 수 있었다고 굳게 믿고 있다. 스물한 살의 그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을까? 열여섯에 스물한 살은 한참 어른 같았는데 막상 그 나이가 되고 보니 아무것도 아니거나 어려도 한참 어리다는 게 실감된다. 올해 스물일곱이 된 그는 다시 어른으로 여겨진다. 내가 다시 스물일곱이 되면 조금 더 이해할 수 있을까? 물어보고 싶은 게 많다. 영원히 내게 좋은 어른일 그가 조금은 보고 싶어졌다.
외계인은 지구의 과학 수준을 이미 능가했을 것이므로 지구에 대해 소개하기보다는 우리가 만든 이야기를 보여주는 편이 지구인을 이해하기에 훨씬 수월할 것이라는 글을 좋아한다. 무언가를 읽고 심장이 그렇게 빠르게 뛰기는 정말 오랜만이었다. 진정하기 위해 찬물을 두 컵이나 마셨다. 외계인이 지구에 온다면 아무래도 문창과의 전공 서고에 함께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미묘하게 텁텁한 공기와 빼곡한 소설과 시집들이 둘러싸인 곳에서 무엇이든 읽어도 좋다는 말이 혀끝에서 떨어질 줄을 몰랐다. 이 글을 읽은 날 외계인과 학교 전공 서고에 가는 꿈을 꾸었다. 나와 키가 비슷한 지구인의 모습이었다. 빛바랜 커튼 틈새로 햇빛이 몸을 비집고 들어오던 게 선명했다. 가슴이 닿지 않을 정도의 책장 사이에서 마주 보고 서 있던 잔상이 오래 남았다. 다시 한번 더 꿈속에서 만나고 싶었다.
막 학기 끝물에서야 나는 내가 문학을 사랑하고 있음을 인정하였고 이제는 그 관성이 더 이상 원망스럽지 않게 되었다. 여전히 글을 계속 쓰고 싶다고 생각한다. S를 만나러 나갔을 때 S는 나의 동화를 읽고 와 줬고 소설도 읽고 싶다는 말과 함께 글을 계속 써야 한다는 말을 거듭하였다. S가 고르는 단어 하나하나에서는 다정함이 묻어 나왔다. 아무래도 좋았다. 절필하겠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지만 이제는 내가 무엇이든 쓰는 사람이기를 바라고 있다. 작년 출판 팀플에서 자기소개에 그런 말을 적었다. 다른 걸 두고 자꾸만 문학으로 돌아오는 데에는 어떤 관성이 작용하였을지 아직 헤매는 중이라고 말이다. 이제는 조금은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당시의 나는 내가 왜 글을 놓지 못하는지 헤매었다기보다 내가 글을 놓지 못한다는 사실을 부정하고 글을 썼기에 놓친 것들에 대한 연민이 강했다. 이제는 그냥 단순하게 글이 좋고 언제나 예술로부터 구원을 받았으므로 앞으로도 예술과 글의 힘을 조금 더 빌리며 살아가고 싶다. 그게 전부다.
열아홉과 스무 살의 방황이 막을 내리고 있다는 점에서 조금은 큰 것 같아서 마음이 놓였다. 앞으로 얼마간은 어떤 세상을 말하고 싶은지에 대해 찾자고 혼자 다짐했다. 더 이상 나는 글을 쓰는 나를 미워하지 않으며 기록도 제법 꾸준히 하고 있고 여전히 책을 사랑한다. 조금은 우스꽝스럽지만 외계인을 마주하였을 때 내가 가장 보여주고 싶은 지구에 대해 고민하자는 게 올해의 목표가 되었다. 사랑스러운 UFO를 타고 자신의 행성으로 돌아갈 때 읽으라고 손에 쥐여주고 싶었다. 2004년 11월 스웨덴에서는 북유럽 시인들이 모여 외계인을 상대로 시 낭송을 하였는데 26억 광년이나 떨어진 곳이라 2054년에나 도착을 할 것이라고 그랬다. 그들의 답신을 기다리기 위해서라도 그때까지 글을 놓지 말아야겠다고 혼자 생각했다. 지구가 궁금해졌다면 또 놀러 와야 해! 보고 싶을 거야. 26억 광년 떨어진 곳에 다시 소리치기 위해서 말이다.
여전히 새벽에 자주 깬다. 나보다 일찍 아침을 맞이한 가족들의 발소리가 들린다. 이불을 끌어올리고 몸을 뒤척이다 보면 다시 잠에 들기도 한다. 알람 소리에 맞춰 커튼을 열면 흰빛이 쏟아져 내린다. 빛을 받은 흰색 침구에 눈이 조금 시리지만 견딜만하다. 일어나서는 마시멜로가 들어간 시리얼을 먹고 화병의 물을 간다. 파랗게 염색된 거베라가 조금만 더 늦게 시들기 바란다는 게 요새 가장 큰 희망 사항이다. 겨울에 듣고 싶어서 만들어둔 플레이리스트는 잘 들어가지 않지만 대신 다른 곡들을 자주 듣는다. 창문 밖으로 보이는 거리에는 눈이 녹았다 사라지기를 반복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하늘을 자주 올려다본다. 다시 한번 목성을 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으로 두리번거리다 보면 희미하게 별 두어 개 정도가 보인다. 잠시라도 눈을 돌리면 다시 찾기 어려울까 봐 별의 자리를 오래 기억하려 든다. 노래 두 곡이면 될 거리를 세 곡을 들으며 걷다 보면 집에 도착해 있다. 여전히 가로등에는 외계인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