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백

현상 유지

by 섬광


1. 홈 스위트 홈


도쿄에 도착했다. 방에 침대가 들어왔던 날 침대 옆에 우주 달력 포스터를 붙였다. 작년 겨울 한창 우주와 사랑에 빠졌을 때 이 포스터 하나만을 위해 책을 사가며 얻어낸 것이었다. 벽지를 헤치지 않을 정도로 테이프를 붙이면 포스터는 곧잘 벽에 붙어 있었다. 침대에서 눈을 뜨면 포스터 중앙에 그려진 검은 태양계가 보인다. 검은색에 가까운 남색 이불을 걷어내고 슬리퍼를 찾는다. Keshi의 summer을 크게 틀어놓은 채 곡물 음료를 마시며 잠을 깨는 것이 루틴이 되었다. 이곳에서의 하루는 그렇게 시작된다.

타지 생활과 함께 자취를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신세 지고 있던 지인이 이것저것 준비하는 것을 도와주었다. 부동산 계약부터 가전제품과 가구 구매, 휴대폰 개통과 재류 카드 주소지 등록 등 해외에서 1인 가구 가장으로 살아남기란 여간 쉽지 않은 일이 아니었다. 홀로 20세기쯤을 살고 있는 나라답게 일본의 사무 처리는 꽤나 느렸다. 통장을 만들기 위해 몇 번씩이고 은행을 왔다 갔다 하며 기다렸다. 한 번은 야마자키가 답답하다며 투덜거리는 것을 보았다. 일본의 일 처리가 느린 건 유명한 사실 아니었던가. 그때의 나는 내 통장이 언제 만들어지는지 보다도 당장의 빨래가 더 급했던 것도 사실이다.

알람이 울리면 이불을 정리하고 곡물 음료를 마시며 옷을 고른다. 집을 나오는 시간은 매일 일정하다. 집 앞의 강을 따라가다 보면 역이 나온다. 바람에 진 벚꽃 잎이 강의 가장자리에 울퉁불퉁하게 붙어 있다. 언뜻 보면 해변의 물거품 같기도 하다. 길지 않은 수업 후에는 역 앞 슈퍼에서 장을 보고 집에 돌아온다. 숙제를 하고 저녁밥을 지어먹고 다시 공부를 하다 일기를 쓴다. 창문 밖으로 나는 사이렌 소리와 음악 없이는 고요한 이곳에 나밖에 없다. 잠들기 전에는 방의 스탠드 등을 켜고 모든 문을 다 닫는다. 커튼을 치고 주방과의 미닫이문까지 닫아야 이곳이 안전하다는 걸 실감한다.

도쿄에 도착한 지 이 주가 넘어서야 비로소 우리 집이라는 걸 받아들였다. 그전까지는 집이 싫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세 차례의 도쿄 여행 끝에는 언제나 다시 오겠다는 인사를 남겼는데 더 이상 그 다짐이 필요 없다는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도쿄에 홀로 남겨진 날에는 우리 집이라는 게 안 믿겨서 뜬 눈으로 천장을 바라보았다. 나 한국 안 가도 되나? 여기가 진짜 내 집이야? 낯선 구조와 차가운 공기에 그런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트위터에서 홀로 되뇔 때마다 친구들이 대신 대답을 해주었다. 너 이제 안 와도 괜찮아. 거기가 네 집이야.

그 누구도 나를 침범할 수 없고 나는 나를 숨기지 않아도 된다.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곳에 놓아도 좋다. 언제나 나는 이곳으로 돌아온다. 집. 집. 우리 집. 이 도시에서 유일하게 남이 되지 않는 곳. 나의 첫 번째 안전지대가 생겼다는 것만으로도 숨통이 트이는 기분이 들었다. 도쿄에 도착해서 처음 숨 쉬기가 힘들었던 날에는 이 도시가 조금이라도 미워질까 봐 산책을 나갔고 돌아오는 길에 비행기 두 대를 봤다. 집 앞에서 태어나서 처음으로 떨어지는 벚꽃 잎을 잡아보았다. 끝이 말린 꽃잎 한 장을 위해 이곳에 온 것만 같은 기분이 들었다. 적어도 이 도시를 사랑하고 있는 동안은 숨 쉬는 법을 잊고 싶지 않다. 나의 집이, 집 앞의 강과 골목의 꽃집이, 그리고 하늘을 가로지르는 비행기가 이 도시에서 홀로 살아남을 용기가 되어주기를 바라고 있다.


2. 이방인으로 살아남기


오래전부터 이방인이 되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고 어느 곳을 가도 익숙한 곳이라는 게 싫었다. 나 스스로를 조금 고립시켜두고 싶었다. 그게 얼마나 자기 파괴적이며 위험한 발상인지는 알고 있다. 그렇지만 나를 자주 울게 했고 폭력적이었던 도시를 생각하면 차라리 나았다. 집에 혼자 남겨진 날에는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적막이 좋았다. 커튼 아래로 새어 나오는 도시의 불빛과 거슬리지 않을 만큼의 소음이면 딱 좋았다. 내가 소속될 집단은 나 하나면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이곳에 와서 J와 G를 만나는 꿈을 두 번이나 꾸었다. 두 번 다 비슷한 내용의 꿈이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 말을 걸었고 우리가 남으로 지내는 사이에 어떻게 지냈는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애인이 생겼어. 글을 계속 쓰고 있는 중이야. 아르바이트를 다시 시작했어. 서로를 향해 던졌던 모서리는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처럼 대화는 계속 이어졌고 눈을 뜨면 머리가 조금 아팠다.

도쿄에 도착해서 처음 기분이 가라앉았던 날 방명록을 읽었다. 각자를 닮은 글씨체와 당시를 선명하게 기억해 내는 문장들이 반가웠다. 그리고 J와 G의 글도 있었다. 계절이 두 번 돌기도 전에 헤어진 주제에 미래를 약속하는 말들이 미웠다. 그 시절에는 아마 정말 나를 언제까지나 사랑할 마음이었을지도 모른다. 나도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 역시 나를 사랑해 주었다는 걸 알아서 미웠다. 그들이 조금도 보고 싶지 않다는 건 거짓말일 것이다. 이방인이 되고 싶다는 말에 네가 너무 외롭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한 그들로부터 나는 조금 외로워졌고 여전히 같은 상태에 있다. 마음이 울컥 치밀어 오를 때마다 그들이라면 나에게 어떤 말을 해주었을지 궁금해지는 날이 있었다. 함부로 약속한 말들에 대해 나에게 조금이라도 미안한 마음은 있을지. 이따금 나의 안부를 궁금해하긴 할지.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할 수 있는 말은 아무것도 없다.


학교에서 여럿의 한국인을 만났다. 왜 해외에서 만나는 한국인들은 모두 스스럼없고 가끔은 무례하며 과하게 친절하고 정이 많은 걸까. 첫날부터 말을 걸어오거나 어깨를 작게 두드리는 그들이 불편했다. 나를 빤히 바라보는 눈동자와 아무 때나 부르는 나의 이름에 몇 번 움찔했다. 그럴 때마다 늘 멋쩍게 자리를 피했는데 어느 날은 옆 자리의 Y가 내일 보자는 인사를 했고 그때 처음으로 조심히 가라며 대답을 했다. 우리는 다음 날 대화를 나누지 않았고 그 인사가 전부였지만 그 인사가 전부여서 좋았다.

아무렇지도 않게 인사를 주고받고 쉬는 시간이면 1초가 아깝다는 듯이 모여 대화를 나눈다. 그리고 우리는 서로의 연락처를 모르며 학교 외의 공간에서 만나지 않는다. 울타리를 넘으면 우리는 남이 된다. 암묵적으로 시절 인연을 전제로 하는 관계는 미지근하다. 생일도, 좋아하는 음식도, 하다 못해 모국어 이름도 모르지만 그게 서운하지 않다. 그 누구도 공평하게 집단이 아닌 개인이라는 사실이 좋았다. 비겁하지만 내가 나를 방어하기 위해 힘을 들이기 위해 날이 서지 않아도 된다는 점에서 안도감이 들었다. 어느 날에는 일본에 함께 남자는 말에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약속이라는 말도, 같이 무언가를 하자는 말도 하지 않았다. 우리는 그게 아무것도 아닌 대답이라는 걸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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