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입추 매직이라는 말이 있다. 입추가 지나고 나면 여름이 한숨 저물고 가을이 다가온다. 실제로 한국에 있는 며칠 동안 갈비뼈를 묵직하게 짓누르던 공기가 선뜻 가벼워졌다. 여전히 햇빛은 뜨겁지만 이 온도도 언젠가 식을 거라는 믿음으로 버티다 보면 괜찮아진다. 나는 언제나 여름이 저무는 기준을 하지로 잡는데, 그게 무척 이르고 엉뚱한 축이라는 건 나도 알고 있다. 그렇지만 해가 조금씩 짧아지는 것만으로도 남은 여름을 꾹 참고 통과할 수 있는 마법이 되고 며칠 사이에 해가 짧아진 게 실감이 나서 기뻤다.
며칠 동안 이번 여름이 비교적 안정적이었던 것을 깨달았다. 겨울이 좋아서 북유럽이나 러시아에서 살고 싶다고 울었던 과거의 날들과 다르게 올해는 그 기다림이 여름을 보낼 좋은 동력이 되었다. 몇 번의 여름처럼 고통스럽지도 않았고 딱 한 번 반짝거렸던 시절처럼 근사하지도 않았다. 목메는 불안에 여러 번 울었지만 하루종일 소리 내어 웃기만 했던 날도 있었으며 해가 뜰 때까지 잠을 설치기와 눕자마자 잠들기를 반복했다. 양극단의 것들이 눈치싸움을 해가며 무게를 맞춰준 덕분에 여름의 시소가 수평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해를 거듭할수록 어떤 계절은 별 게 아니라는 것을 실감한다. 그리고 계절이 시작되기 몇 달 전부터 두려워했던 걱정과 고민도 막상 겪어보면 나의 상상만큼 집요하고 악독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상상만큼 집요하고 악독했다 하더라도 더 이상 나를 관통할 만큼의 힘을 갖고 있지 않는다. 그건 우연의 탓일까 나의 체념의 덕분일까 궁금했다. 나의 방패라고 믿었던 것은 금방 뚫려버렸고 멀리 두고 오고 싶었던 마음들이 빈번히 나를 구했다. 이번 여름을 완성한 건 로맨스 영화 같은 대단한 사랑이나 미친 듯이 빠져들었던 무언가가 아니라, 몇 개월 만에 마주친 눈동자에서 그리움을 읽어내는 일과 지하철을 기다리는 동안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땀방울 따위였다. 그렇게 나는 사소하고 일상적인 것들로부터 구원받는 방법을 어림짚을 수 있게 되었다. 뭉텅이로 손에 잡히는 것들에서 다음 해에는 모서리를 만질 수 있기를, 손가락 끝과 손바닥으로 직선과 곡선을 구별하고 마음 편히 쥘 수 있기를 바란다. 내년의 내가 올해의 나보다 나을 예정이기에 그럴 수 있다고 믿고 있다.
2. 나에게 있어 영화는 언제나 완벽한 도피처였다. 영화를 틀고 첫 장면이 나오면 하나뿐인 초대장을 받는 기분이 들었다. 몸에 힘을 빼고 감독이 연출한 대로 따라오기만 해도 나에게는 어떤 책임이 없고 영화의 마지막까지 나는 이방인으로 있을 수 있다. 두세 시간짜리 세계에 다녀오는 일은 종종 외롭지만 그럴 때마다 돌아올 현실이 있다는 것이 위로가 된다.
올해 들어 영화를 열심히 보고 있다. '열심히'라는 말을 붙이는 걸 보아 취미성이 아닌 강박적 행위일지도 모르겠다. 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치고는 영화를 너무 좋아해서 영화 공부를 해야 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다. 올해 약 30편의 영화를 봤고 연초에 목표한 50편을 채우려면 남은 4개월 반동안 분발해야 한다. 소설이 닿지 못한 부분을 영화가 어루만지는 걸 보고자면 글을 쓰는 입장에서 오히려 반갑게 느껴진다. 최근에는 친구와 고레에다 히로가즈의 영화 <괴물>에 대해 이야기하다가, 자기는 영화 속에서 이해되지 않는 장면이 어려운데 너는 그걸 좋아하는 것 같다는 말을 들었다. 그 말을 한참 곱씹다가 나를 정확하게 간파했다는 대답을 했다.
소설과 영화 모두 서사 매체이지만 정보 제공 방식에서 차이를 가진다. 가령 소설은 생략되면 아주 조금도 알 수 없는 지점들이 생기지만, 영화는 서사의 일정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진행되는 경우가 존재한다. 다시 말해, 영화 속 공백 (관객이 의문을 갖는 지점) 마저 영화의 구성이라는 것이다. 영화 <마이 브로큰 마리코>에서 시이노가 읽은 편지의 내용을 알 수 없었고 <괴물>에서 미나토와 요리가 숲 속을 달려가 도착한 곳이 어딘지 모르는 것처럼 말이다. 영화 속 침묵은 어떤 의미나 역할 수행이 아니라 그냥 그런 거다. 공백과 침묵으로 하여금 관객이 영화 너머의 것을 상상하게 하고 짐작하게 만드는 것이 전부라고 믿고 있다. 그래서 영화가 좋았다. 특히 정적이고 숨기고 있는 게 많은 영화가 좋다.
소설이 첨예한 서술이 모여 문단이 되고 이미지가 될 때 영화는 몇 초의 날 것의 씬이 모여 장면과 이미지를 만든다. 어느 쪽이 대단하냐의 문제가 아니라 둘은 필연적으로 교집합에 있는 관계라는 게 크다. 영화의 이미지성에 대해 대학 친구와 새벽까지 토론한 날, 우리는 영화에서마저 문학적인 지점을 발굴해 내는 사람들이라며 웃었던 게 기억에 남는다. 그리고 소설은 그 모든 과정과 감수를 내가 감당해야 하지만 영화는 나만이 아닌 공동체가 책임진다. 그리고 비로소 관객들에게 상영되었을 때 영화가 영화로서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글을 쓸 때 조금 외로웠던 것 같아.
몇 년에 걸쳐 온 권태와 방황이 길을 찾았다. 내가 왜 그렇게 입시할 때마다 도망치고 싶었는지, 대학에 들어가서도 책상에 머리를 박고서 울었는지에 대한 해답이 문학이 아니라 영화에 있었던 거다. 이걸 찾으려고 영화를 그렇게 많이 봤나라는 생각도 조금 했다. 그러니까, 소설은 처음부터 끝까지 나밖에 없기 때문에 내가 내 손에서 소설을 떨어트리더라도 아무도 주워주지 않는다. 내가 다시 주워서 먼지를 털어내고, 정지되어 있던 등장인물들의 팔다리를 움직인다. 소설이란 원래 고독한 작업이었음을 실감한다. 그래도 되돌아간다면 나는 다시 문학을 선택할 것이다. 기회가 있다면 그러고 싶다.
일본 유학 입시를 하면서 문학부가 들어가서 깨나 고생하는 학부라고, 다섯 원서를 몽땅 문학부에 배팅하겠다는 나를 두고 다른 전공은 어떻냐는 소리를 몇 번 들었다. 실제로 진지하게 고민을 해봤지만 그래도 문학을 하고 싶다고 결론 내렸다. 첫 번째로 다른 전공을 한다고 한들 문학부 안에서 그다지 움직이지 않는 철학이나 언어학이었으며 (언젠가는 할 이야기지만, 영화는 업으로 삼고 싶지 않다. 몇 년 후에는 어떨지 모르겠다.) 두 번째로 전공을 바꿀 만큼 다른 전공이 간절하지 않다는 게 이유였다. 아직까지 문학에서 손을 떼지 못하는 데에는 어떤 관성이 작용하였는지 이제 조금 알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우연히 다시 이곳으로 이끌어 준 영화에게 고맙다. 그리고 영화만큼 문학의 힘도 자주 빌릴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기쁘겠다는 생각을 한다.
3. 한국에 돌아오기 전 며칠을 연속 내가 아무것도 아닌 사람인 것 같아서 몇 시간씩 울었던 적이 있다. 자신하던 유학 시험에서 완전히 미끄러져버린 것과 삶에 목표도 대책도 없이 대학을 가겠다고 나선 것 같아서 숨고 싶었다. 어느 날에는 신호등을 기다리다가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갈까라는 생각을 했다. 돌아가면? 나는 뭐 해야 하지? 나 정도의 일본어는 할 수 있는 사람이 넘쳐나고 문창과를 나온 주제에 써놓은 글도 없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대학을 가려고 한다는 평가가 어중간하게 박혀 몸을 움직일 때마다 아팠다. 그냥 비디오 게임처럼 인생도 리셋하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바람이 절실했다.
4개월 타지 살이를 해본 결과, 더 이상 간판 속 쉽게 읽히는 일본어와 거리 풍경이 낯설지 않다는 점에서 이곳 생활의 특별함이 사라졌다. 지하철을 갈아타고 멀리 나가야만 여행객의 기분을 느낄 수 있다는 게 조금 슬펐으며 동시에 배 부른 소리나 하고 있다는 꾸중을 스스로에게 했다. 싱겁고 미적지근한 도시. 네모난 건물들이 빼곡한 미로를 이루고 있는 도시. 하루에도 수십만 명의 사람들이 도착하고 다시 떠나는 도시. 나의 친구들이 도쿄는 어떤 곳이길래 네가 그렇게도 사랑하는 곳이냐고 물을 때마다 그렇게 대답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는 과연 이곳에 있을 자격이 있는 사람인가? 사람의 성능보다 사유를 추궁하는 곳에서 나는 한 톨 빠짐없이 대답할 수 있는 사람인가. 만약 아니라면 나는 돌아가야 하는 건가. 이런 생각들이 밤마다 심장을 콕콕콕 찔러댔다. 그 와중에도 이 도시가 밉기보다는 자격 부족의 내가 원망스러웠다.
이제 와서 고백하자면 나의 한국 탈출기는 정말 말 그대로 한국을 탈출하고 싶은 게 컸다. 욕심을 못 따라가는 재능의 비굴함과 경쟁의식, 스스로에 대한 자격지심에 진절머리가 났다. 어쩌면 일본 유학을 결심한 것도 일종의 인생 리셋이었던 것이다. 나를 아는 사람이 없는 곳에서 내가 잘할 수 있는 걸 하자. 일단 해보자. 언제나 나의 삶의 태도는 일단 저질러놓고 수습하는 식이었으니 문제 될 건 없었다. 한국 오기 막바지에 가서는 차라리 빨리 한국에 도착해버리고 싶은 마음이었는데 막상 8조짜리 원룸의 불을 다 끄고 나니까 쉽사리 발길이 안 떨어졌다. 잠이 부족한 상태였음에도 공항에 가는 내내 창 밖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스카이 라이너를 타고 빠르게 지나가는 저층 건물들을 보고 있자니 도쿄에 처음 홀로 남겨진 날이 생각났다. 썰렁하고 고요했던 3월의 어느 밤, 매트리스 하나에 이불만 덮고 천장을 오랫동안 바라보고 있었다. 앞으로 돌아올 곳이 여기라니! 당장 몇 분 걸어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가야만 할 것 같은데 너무 멀리 와버렸다는 생각에 쉽게 잠이 오지 않았던 날이었다. 내가 그렇게나 이 도시를 사랑했다.
한국에 도착하고 만난 친구가 엽서에 이렇게 써 줬다. 맨날 한국 오기 싫어해서 가끔 슬펐는데 이번 여름의 기억들로 다음에는 꼭 설렘 가득하게 한국 오면 좋겠어. 정말로 나는 그러할 거라는 강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덕분에 더 이상 한국에 있는 것이 싫지 않다. 그러한 데에는 당연히 나를 맞이해 주는 사람들이 있었고, 도쿄 보다 한 템포 빠르게 숨 죽은 더위도 한몫을 했다고 생각한다. 내게 돌아갈 곳과 돌아올 곳이 모두 있다는 것이 벅찼다. 비록 내가 도쿄에 있어야만 하는지 당장 설명하지 못하더라도 도쿄에서 지내는 어느 날이 대신 대답해 줄 것이라 믿고 있고, 당분간 나의 집이 한국이 아니기 때문에 도리어 한국을 조금이나마 사랑할 수 있겠다. 돌아간다는 개념이 누군가에겐 초라해 보일지 모르지만, 적어도 나에게 두 선택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안도할 수 있다. 앞으로 얼마든지 도쿄를 만끽해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