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 1등으로 등교하는 아이
아홉 살의 새 학기가 시작된 지 한 달이 지났다. 지난 달 나의 복직을 앞두고 ‘혼자하는 연습’도 시작했다. 혼자 등하교는 물론 중간에 학원도 다녀오는 ‘독립’의 첫발이다. 내가 7시 30분에 출근하면 아이는 아빠와 있다 등교한다. 남편이 최대한 늦게 출근할 수 있는 시간인 8시까지 있다가 출근한다. 아이 혼자 보내는 시간 15분. 아무도 없는 집에서 책을 읽거나 일찍 놀이터에 나가 친구를 기다리며 그네를 타다가 등교한다. 시간도, 시기도 너무 이른 게 아닌가 걱정이 앞섰다.
아이는 달랐다. 즐거워한다. 아파트 단지 아이들이 우르르 몰려 번잡한 등굣길 대신 호젓한 길을 혼자 걷는 게 기분이 좋다고 한다. 막힘없이 학교까지 질주하면 아직 문도 열리지 않은 교실 앞에서 잠시 기다리는 것도 아이에게는 재미다. 문을 열어주는 옆 반 선생님과 인사하고 짧은 대화를 나누고 텅 빈 교실에 1등으로 들어설 때 기분을 짜릿하다고 표현했다. 마치 밤새 소복하게 내린 눈에 첫 발자국을 찍는 기분. 이 넓은 교실이 온전히 내 것인듯한 충만함을 빈 교실에 가장 먼저 들어서며 느끼는 것이다. 학생일 때 내내 내가 가장 좋아했던 바로 그 감정을 아이도 느낀다니 신기하고 반가웠다.
하교 후 학원을 다녀오는 일정도 괜한 걱정이었다. 겨울 방학에 연습해두었지만, 집에서 가는 것과 하교 후 가는 것이 어쩐지 다르게 느껴져서 걱정이 앞섰다. 아이가 원해서 수학학원이 더해져 일주일에 두 번은 두 곳의 학원을 다녀오는 강행군이다. 아홉 살에게 이게 맞나 자꾸 되짚어 보면서도 수학학원 가는 날을 기다리는 아이에게 그만두라고 초를 칠 수도 없는 일이다.
떨어져서도 이어져 있으려고 휴대전화를 마련해줬다. 무슨 일이 생기면 전화로 연결된다. 1학년 때 다른 아이들을 보니 등하교 할 때나 학원 차를 기다리며 엄마와 영상통화를 하고 있었다. 우리 집 9세도 그러겠지 했는데, 이 아이는 정말이지 용건이 있지 않으면 전화를 하지 않는다. “놀이터 갔다가 갈게” “오늘은 그냥 집으로 갈게” 이게 끝이다. 그러니 내가 먼저 구간마다 전화해서 잘 갔느냐, 차 탔느냐 물어보는 게 영 어색한 일이 됐다. 아이에게 물어보았다. “엄마가 너 끝난 시간쯤에 전화할까?” 9세는 자기 다운 답을 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돼. 그런데 내가 친구랑 있거나 바쁜 일이 있으면 못 받고 빨리 끊을 수도 있으니까 이해해줘.”
아직도 아이는 커서 결혼하지 않고 엄마 아빠와 산다고 한다. 지금은 엄마에게 동조된 상태이니 이 세계를 떠나는 것은 종말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 막 부모가 만든 세계 밖을 궁금해하기 시작했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때’를 준비한다. 네가 나를 떠나서 너만의 세계를 향해 가더라도 나는 여기 ‘남겨진 것’이 아니라 나의 시간을 ‘사는’ 한 사람으로서 너를 기다리기 위한 마음의 준비. 설레고 기대된다. 아이가 온몸으로 부딪혀 가져올 세계에는 무엇이 있을까. 내가 보지 못한 세계를 아이의 눈으로 보고 싶은 그런 기대에 부푼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학교로 내달리는 아이의 등굣길이 그 시작 같아서 반갑다. 작아진 등에 대고 다짐한다. 네가 더 용기 내어 먼 세계로 나가도록 튼튼하고 편안한 돌아올 곳이 되어주겠노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