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은 그런 경우가 있다. 어떤 사람이 내뱉은 단 한 마디에 그 사람의 가치관이 뚜렷하게 보이는 경우 말이다. 고작 그 말 한마디가 얼마나 강렬했으면 그 이후로는 굳이 입 아프게 더 얘기를 하지 않아도 그 사람의 생각을 대강 예측할 수 있을 정도다. 나도 손에 꼽지만 그런 경험이 있었는데 이제부터 할 이야기는 그중 하나다.
"실수령 월 400을 못 넘으면 인간이 아니죠."
이 말은 믿기지 않겠지만 정말 현실세계에서 내가 직접 들었던 말이다. 인물이 특정될 수 있으니 상세히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일단 일을 하다가 스몰토크로 들었던 말이라고만 일러두겠다. 이후부터는 그를 A라고 칭하겠다.
A는 자신보다 수입이 낮은 사람을 하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자신보다 수입이 높거나 자가가 있거나 자차가 있거나 셋 중 하나라도 충족해야지 그와 친분을 쌓을 자격이 주어졌다. 만약 상대방이 셋 다 충족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직접 알게 되거나 어림짐작할 수 있는 상황이 생기면 그때부터 그는 말수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상대방과 거리를 두곤 했다.
그는 명품 시계나 금목걸이 같은 치장품에 관심도 많은 편이었다. 시계를 보러 나갈 계획이 생기면 주변 사람들에게 그 사실을 반드시 알렸다. 어떤 브랜드의 어떤 시계를 살 예정인데 가격은 얼마 정도 하고 우리나라에서는 얼마나 구하기 힘든지에 대해서도 알렸다. 얼핏 보면 그는 그 시계 자체를 좋아한다기보다 그 시계를 살 만한 여유가 된다는 사실을 주변에 알리는 것을 더 좋아하는 듯했다.
A의 세상은 숫자로 가득 차 있었다. 숫자의 논리로 사람들을 배열하는, 그렇게 각자가 부여받은 번호의 크고 작음에 따라 사람들의 순서가 매겨지는 세상이다. 이 세상에서는 어느 누구도 자신의 수입 외의 다른 요소로 평가받을 수 없었다. 단지 통장에 찍힌 수입이 얼마인지를 확인받은 다음에야 어김없이 그 숫자의 크기대로 A의 앞에 줄을 섰다.
한 번은 A와의 대화 중에 그가 유독 화를 내며 반응하는 지점이 있었다.
A는 당연히 자신보다 못 벌 것이라 생각했던 동료가 투자에 성공하여 수익이 치솟았다는 말을 전해 들었을 때 유독 그 사실을 격렬히 거부했다. 그 동료가 그랬을 리가 없다며, 거짓말을 하는 것이거나 무언가 편법을 쓴 것임에 분명하다는 확신에 차 있었다. 물론 사람이라면 주변 사람이 갑자기 잘 풀렸을 때 간혹 질투의 감정을 느끼는 건 자연스럽겠지만, A의 반응은 조금 남달랐다.
투자에 성공했다는 동료의 성공담은 단순히 전 재산을 한 주식에 투자해 주가 상승을 노린 전형적인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전략에 불과했다. 굳이 편법이라고 믿을 만한 구석도 없었고 거짓말이라고 화를 낼 이유도 없었다. A는 돈으로 줄 세워진 계급 사회에서 자신이 더 뒤처진다는 사실을 믿을 수 없었을 뿐이었다.
만약 당신 주변의 누군가가 이런 가치관을 가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면 당신은 어떤 생각이 드는가?
잘 안 맞다고 생각할 수도 있고 잘 맞다고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어느 쪽이 되었든 결국 이 가치관 또한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니 그것이 틀렸다며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A에게는 수입이 '계급'으로 통하며, 그 사람은 자신보다 수입이 낮은 사람에게는 우월감을, 수입이 높은 사람에게는 열등감을 느낀다는 점이다.
난 이런 그를 보며, 내가 그와 대화하는 시점에 그보다 내 수입이 현저히 낮았을 경우를 상상해 보게 되었다. 그랬다면 나도 알게 모르게 무시를 받았을지 모른다.
여러분도 한 번 같이 상상해 보자. 우리보다 훨씬 높은 수입을 받고 있는 사람이 월급이 쥐꼬리만 하다며 우리를 무시하는 상황을 말이다. 물론 그 당시에는 기분이 잠깐 나쁠지 모른다. 그러나 돈에 크게 집착하는 편이 아닌 나에게는 별로 큰 타격이 없을 것 같다는 게 나만의 결론이다. 애초에 돈으로 남과 나를 비교해 본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럴지도 모른다. 돈 말고 브런치 구독자수라면 모를까.
그렇다고 이 말이 '나는 저 사람과 달리 돈에 집착을 안 하니까 내가 훨씬 낫지'라는 뜻은 아니다. 분명 내 세계에서도 그 사람에게 돈이 그랬던 것처럼 구독자수나 조회수 같은 척도가 역동적으로 꿈틀대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도 확실한 것은 적어도 A가 돈으로 남을 지나치게 질투할 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고, 반대로 내가 구독자수로 남을 지나치게 질투할 때 A는 그러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와 A는 한 하늘 아래 있지만 각자 전혀 다른 세계를 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걸 보면 여태 내가 받았던 스트레스들이 참으로 부질없었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나에게는 스트레스인 일이 누군가에게는 아무것도 아닐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나는 이 글의 조회수가 왜 이렇게 안 나오는지 답답해하며 머리를 쥐어 싸매고 있을 때 누구는 그게 뭐가 중요한지 이해도 못한 채 누워서 코나 파고 있을 것이다. 조회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알지도 못하면서.
우리나라와 프랑스의 중산층 척도를 비교한 자료가 한때 뜨거운 감자로 떠오른 적이 있다. 우리나라는 자가나 자차를 보유하고 있는지, 그 수준은 얼마나 되며 연봉은 얼마나 되는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반면, 프랑스는 악기를 하나쯤은 다룰 줄 알고 외국어도 하나쯤은 구사할 줄 아는지 등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둘 중에 무엇이 맞는 것인지 정답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여기서도 하나 확실한 것은, 우리나라 사람이 자가 보유를 위해 등골이 휠 때 프랑스 사람은 당최 거기에 왜 목숨을 거는지 이해를 못 할 것이라는 점.
그리고 프랑스 사람이 악기 연주가 잘 안 돼서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나라 사람은 왜 그런 사소한 걸로 스트레스를 받는지 이해를 못 할 것이라는 점.
난 그래서 요즘은 스트레스를 받을 때면 잠시 숨을 고르고 상상을 해본다.
누워서 나를 안쓰러운 듯이 쳐다보며 코나 파고 있는 누군가를 말이다. 내가 대체 이딴 걸로 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지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