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먼 바다는 예로부터 우주와 더불어 상상의 주된 대상이었다. 그 이유는 바다든 우주든 아무나 갈 수 없는 미지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그런 바다에 거처를 잡고 생활하는 항해사 또한 상상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우리가 일하는 모습은 아쿠아맨이나 캐리비안의 해적을 제외하고는 그 누구에게도 노출될 일이 없다.
우리의 일상은 이렇게 낯설고 흔치 않은 만큼 새롭기도 하다. 간호사나 경호원 같은 특정 직종을 제외하고는 당직제로 돌아가는 직업도 흔치 않고, 그와 동시에 일하는 위치가 매번 여기저기 바뀌는 직업은 더더욱 흔치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얼핏 보면 바다를 항해하는 동안에는 매번 미지의 세계를 탐험하는 즐거움이 넘쳐날 것만 같다.
하지만 오히려 항해사만큼 생활이 규칙적이고 단조로운 직업도 몇 없다. 앞에서 여러분께서 직접 보신 것처럼 항해사는, 자유로운 듯 자유롭지 않은, 동적이면서도 정적인 그런 직업이다. 항해사도 보통 직장인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 하진 않다. 여기도 사람 사는 세상이다. 단지 먹을 것과 인터넷이 좀 한정적일 뿐이다.
여기서 의아해하실 것이다. 분명 처음에는 항해사로서 경험한 새로운 세상을 보여주겠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해 놓고는 이제 와서 다를 게 없다니? 그럼 결국 새로운 세상이 아닌 거잖아?
그렇다. 분명 나는 항해사가 된 이후로 셀 수 없이 많은 새로운 경험을 쌓아왔다. 이 경험들 중 대부분은 육지에서만 지냈을 평행우주의 나한테는 상상하기 어려운 경험들이었을 게 분명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이란 것이 참 간사하게도 너무 쉽게 새로움에 물들어버린다. 바다 저 너머 수평선이 낯설고 설레기만 했던 그 어린 날들은 허망할 정도로 순식간에 사라지고야 말았다. 나에게는 오히려 바다가 육지보다 더 익숙한 일상이 되었다.
이것이 나에게 글쓰기가 의미 있었던 이유다. 글을 쓰기 위해 매일 글감을 찾으려 무던히 노력했다. 그 과정 속에서 평소와 같았으면 그냥 흘려보냈을 법한 자질구레한 사건들이 하나둘씩 나에게 꽤나 재미있고 의미 있는 에피소드가 되었다. 내 옆을 스리슬쩍 지나가는 그 사건들을 하나하나 꼼꼼히 붙잡아서 꾹꾹 글로 눌러 담았다. 그때부터 일상은 지루함이 아닌 새로움이자 설렘이 되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새로움은 바다나 항해사 같은 "신박해 보이는" 주제에서 오는 새로움이 아니다. 내가 말하는 새로움이란 반복되고 점철되고 추욱- 늘어지는 일상적인 삶이다. 내가 말하는 새로움이란 그런 삶 속에서 마치 진주를 솎아내는 것처럼, 내 안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또 다른 무언가다. 별 것 아닌 나의 이야기들이 이 책을 다양한 에피소드로 자리 잡게 된 것처럼, 우리 모두의 어떤 삶이든 손끝으로 하나-둘- 톺아보면 지루함으로 치부됐던 낡은 상자들이 어느새 새로움으로 둔갑해 있을 것이다.
무조건 글을 쓰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꼭 글감을 찾을 필요는 없다. 급박하게 굴러가는 삶의 굴레 속에서 10초만이라도 시간을 내어 내 주변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그 과정에서 하나 둘씩 안 보이던 무언가가 생길테다. 탕비실 문 옆에 적혀있던 제휴 렌터카 안내문이든, 책상 한 켠에 올려진 레모나 한 스틱이든, 손바닥에 언제부턴가 더 진해진 운명선이든. 이건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의지의 문제다. 내가 글감을 찾는 과정에서 어느 순간 지루함이 새로움이 된 것처럼 말이다.
새로움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만드는 것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