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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항해사 어름 Feb 25. 2023

주말을 행복하고 즐겁게 보내려면

농부 이야기

 삶을 영화같이 꾸밀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 매일이 똑같다고요. 주중엔 회사에서 하루 내내 일하다가 퇴근하고 헬스장 갔다가 돌아오면 벌써 10시란 말이에요. 씻고 나면 바로 자기 아깝거든요. 유튜브 보다 보면 벌써 12시는 금방 넘겨요. 그러고 자면 다시 출근.. 주말이라고 다르지 않습니다. 오랜만에 늦잠 좀 자면 금방 점심 먹을 때가 돼요. 점심 먹고 나면 또 영화 한 편을 봅니다. 그러다 저녁에 친구와 같이 술을 먹어요. 그러다 보면 하루는 진짜 금방 지나가 있단 말이죠. 이걸 어떻게 영화처럼 만들 수 있단 말이에요?"



 독일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세상의 이야기에는 뱃사람 이야기와 농부 이야기가 있다고 합니다. 긴 항해를 마치고 돌아온 뱃사람의 앞에는 생경한 바깥의 이야깃거리를 듣기 위해 초롱초롱한 눈으로 한데 모인 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양을 지나다가 용을 마주쳐서 죽을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집채만 한 파도에 둘러싸여 간신히 목숨을 건졌다는 이야기도 있지요. 날카로운 이빨을 내세운 마귀의 습격으로 인해 동료를 잃게 된 이야기도 있습니다. 이것들은 매일이 크게 다르지 않은 마을 사람들에게는 시간 가는 줄 모를 블록버스터급 이야깃거리입니다.



 이와는 달리 그 마을의 농부는 매일매일이 똑같습니다. 그저 오늘도 어제처럼 밭을 갈고 밥을 먹었습니다. 저녁에는 노을빛 정자에 앉아 옆집 아줌마가 이웃 외간 남자와 바람을 피운 이야기를 숙덕거리며 마을 사람들과 막걸리 한 잔을 했을 뿐 그다지 신기해할 만한 이야기가 하나도 없습니다. 평화로운 일상이지만 일견 무척 지루해 보이죠.


 하지만 여기서 말하는 뱃사람과 농부의 이야기에는 각각 맹점이 있습니다. 하나는, 뱃사람의 이야기라고 해서 전혀 저렇게 화려하지 않다는 점입니다. 오히려 사방에 펼쳐진 드넓은 바다와 하늘은 배를 타는 많은 시간 동안 별로 달라지는 것이 없습니다. 세상에는 용 같은 것도 없고, 마귀 같은 것도 없습니다. 특별해 보이지만 특별하지 않습니다. 다른 이에겐 '뱃사람 이야기'일지 몰라도 뱃사람에게는 '농부 이야기'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농부의 평화로운 일상이 지루해 보이는 것은 그저 착각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평범함'과 '일상'이라는 인식 아래 우리는 지나쳐오는 많은 것들을 쉽게 파괴하고 폐기합니다. 그저 매일 봤던 편의점, 매일 지나치던 전봇대가 있을 뿐입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생이 바뀐 줄도 모르고, 물건 배치가 바뀌었는 줄도 모르며, 전봇대에 새로 전단지가 붙여 있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매일 출근 때 마주치던 아줌마의 헤어스타일이 바뀌었는지, 갓길 포장마차 메뉴판에 새로운 떡볶이 메뉴가 추가되었는지 눈치도 못 챕니다. 그저 매일 보던 것이니까요. 평상시에 안 보던 것들은 '지루함'이라는 정책 아래 저 낭떠러지로 폐기처분 당한 것입니다.



 자신의 이름을 50번 되뇌어 보세요. 갑자기 자신의 이름이 무척이나 낯설어지지 않으시나요? 누구나 이런 경험을 한 번쯤은 해봤을 것입니다. 평범한 것은 평범한 것이 아닙니다. 그저 평범하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우리의 삶에 꼭 특별한 이벤트가 있어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있으면 좋겠지만 없다고 나쁠 건 없습니다. 주변에 익숙해 보이지만 알고 보니 바뀌었던 아주 사소한 무언가라도 찾아내면 마치 숨은 그림 찾기를 하듯 그 재미가 쏠쏠할 것입니다. 매일같이 찾아 헤매던 백종원이 추천하는 맛집들이 아니라 핸드폰을 버리고 그저 발길 가는 대로 들른 식당이라면 그 또한 매우 신선할 것입니다.


 우리에겐 우리의 농부 이야기 속 뱃사람 이야기를 찾을 능력이 있습니다. 이는 누구나 타고난 능력입니다. 그러니 삶에 눈곱만큼의 변화를 주든, 내가 삶을 보는 관점을 살짝 바꾸어보든, 우리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보는 것만으로도 그날은 이미 매우 특별한 날일 수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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